왜 이재명은 입장을 바꿨나?
주장과 의견이 다르다니
이해찬 한 마디에
진중권의 일갈
다른 민주당 인사들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엄중’ 이낙연 의원과 달리 ‘화끈’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매 사안마다 선명한 입장을 피력해왔다. 최근 법적 굴레에서 벗어난 뒤 명실상부 차기 대권 주자 2위로 더욱더 치고 나가는 분위기가 있었고 굵직한 현안들에 대한 자기 소신을 밝히는 것도 거침이 없어졌다. 

그런 이 지사가 내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무공천해야 한다는 문제와 관련 ‘의견’과 ‘주장’이 다르다면서 궁색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대권 주자로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당원들의 눈치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지사는 2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민주당의 서울시장 부산시장 공천 여부를 놓고 많은 논란과 내 입장에 대한 오보들이 있다”며 “국민에게 한 약속 더구나 집권여당이 당규로 명시하여 한 약속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치는 생물이고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국회에서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확하게는 오보가 아니라 오보라고 주장하고 싶어졌다. 

이 지사는 20일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 정치는 어떤가. 안 믿는다. 또 거짓말하는구나. 그런데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렇게 말도 아니고 규정(당헌당규)으로 무슨 중대한 비리 혐의로 이렇게 될 경우에는 공천하지 않겠다고 써놨지 않는가”라며 “그러면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이걸(성범죄) 중대 비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나는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공천하지 않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같은 날 저녁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고위전략회의에 참석해 “이 지사가 저렇게 말해버리면 일주일 내내 시끄러울 것이다. 지금 저렇게 모두 답변할 필요가 뭐가 있냐. 이 지사가 (앵커의 질문에) 답변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지사 입장에서 △이 대표의 경고가 언론 보도로 알려졌고 △2017년 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친문재인계 여론에 밀려 3위로 고배를 마셨던 경험 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지사는 평소 성향과 달리 스타일을 구기더라도 입장을 바꿨다.

이 지사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故 김대중 대통령의 발언 거론 △현실적으로 당헌당규상 약속 파기가 불가피할 때는 형식 원칙에 매달려선 안 됨 △석고대죄 수준의 대국민 사과와 당규 개정(당원 의견수렴) 선행 △주장≠의견 △예정되지 않은 생방송 질문에 ‘답변 회피-거짓말-사실대로’ 중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음 △이상과 현실 2가지 취지의 발언을 다 했는데 전자만 부각되어 보도 △적폐 세력이 두 시장직을 담당하게 되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고려해야 △맨날 약속을 어긴 세력이 이 문제를 지적할 자격 없음 등의 내용을 피력했다.

특히 이 지사는 “서울·부산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가 없다. 어떤 현상에 대한 의견을 가지는 것과 이를 관철하기 위한 주장은 다르다. 국민의 한 사람이자 민주당의 책임있는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의견이 있지만 이를 주장하고 관철하려고 적극적 노력을 기울일 의사는 없다”고 강변했다.

이런 이 지사의 입장 변화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장난하냐?”라고 힐난했다. 

최근 당권 도전에 나선 박주민 최고위원(재선)은 오히려 후보를 내는 것이 책임지는 자세라고 주장했는데 진 전 교수는 이에 대해서도 “유권자가 거의 1500만명이나 되는 지자체장에 고작 성추행 비리를 저지른 이들을 공천한 책임을 지는 방안으로 자기들이 스스로 내놓은 게 무공천 원칙인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라며 “그러니까 책임을 지지 않는 게 곧 책임지는 거란 얘기인가? 양자역학을 하셨어야 할 분이 의원 하시느라 고생이 많다”고 비꼬았다.

사실 자기 의견을 공개적인 공간에서 드러내는 것 자체가 곧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의견이 있더라도 말하지 않거나 자기 일기장에만 적어놓는다면 그것은 주장이 아닌 의견이 맞다. 즉 의견, 주장, 행동 이렇게 3단계가 있다면 이 지사는 행동하지 않겠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주장도 안 했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사가 말장난을 할 정도로 당권 및 당원 눈치를 보고 있고 구차해진 것이다.

이 지사는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경기도 주관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도지사이기 때문에 도 행정을 말하고 싶은데 정치 이야기를 물어봐서 입장이 아주 난감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지사는 자신이 선명하게 말하고 싶은 정치 이야기에 대해서는 자기 견해를 적극적으로 피력해왔다.

현재 이 지사는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도저히 정치적으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면 당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고 그 다음에나 겨우 규정 바꾸고 그건 당연히 내부적으로 당연한 일이고 규정 바꿔준다고 될 일은 아니고 국민한테 석고대죄하는 정도의 사죄를 해야 한다”고 발언했던 대목을 부각하는 분위기다. 

이 지사 외에도 민주당 내에서 무공천론을 밀었던 몇몇 인사들도 입을 다물거나 입장을 바꾸는 추세다.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인 전재수 의원은 확고한 무공천론자였지만 23일 방송된 BBS <박경수의 아침 저널>에서 “저희 당내에서는 한 번 새로운 지도부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고 보궐 선거 국면으로 들어서면 그때 가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서 당원들께도 의견을 묻고 국민들께도 묻고 하는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인 것 같다”며 수위를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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