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 신진도 고가 인근 추가조사 계획
人閑桂花落, 사람은 한가하고 계수나무 꽃이 떨어진다
夜靜春山空, 밤은 깊은데 봄의 산도 적막하다

黃麥打麥羊  出家家(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하여 거두어 가다) (사진=문화재청)
黃麥打麥羊 出家家(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하여 거두어 가다) (사진=문화재청)

[중앙뉴스=신현지 기자] 충남 태안 섬마을 버려진 고가에서 조선시대 수군 군적부가 발견된데 이어 폐가 벽지 밑에서 수군진촌의 서정을 담은 한시가 추가로 발견되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6월 태안 신진도 고가(古家)에서 수군 군적부(軍籍簿)와 한시(漢詩)를 발견한 이후 수거된 벽지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군진촌(水軍鎭村)의 역사와 서정을 느낄 수 있는 다수의 한시 등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24일 밝혔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이번에 한시가 추가로 발견된 태안 신진도 고가는 상량문에 적힌 ‘도광(道光) 23년’이라는 명문으로 1843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고가에 거주했던 후손 최인복 씨의 증언에 의하면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ㅁ’자형 건물 배치이며 260평의 대지에 방 5칸, 광 6칸, 부엌 3칸, 소 외양간 1칸, 말(馬) 우리 등을 갖추고 있었다.

신진도 폐가 (사진=문화재청)
신진도 폐가 (사진=문화재청)

실측결과, 현재는 ‘ㄷ’자형 구조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광 6칸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안흥진 수군을 관리했던 관가의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새롭게 발견된 한시「聞新設開宴四方賢士多歸之」(문신설개연사방현사다귀지: 새로 짓고 잔치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사방에서 선비들이 모였다)는 1843년 7월 16일 태안 신진도 안흥진 수군의 관가로 사용될 집을 짓고 다음 해 안흥진 첨사 조진달의 재임 기간인 1844년에 잔치를 베풀어 사방의 손님을 맞이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한시의 제목은 「黃麥打麥羊  出家家」(황맥타양출가가: 집집마다 찰보리를 타작하여 거두어 가다)인데, 내용에는 ‘군포를 내라는 조칙이 있는데도, 갑자기 지난밤 보리를 보내어 왔구나’(布詔行令曾如此 忽然昨夜麥秋至)라는 문장이 있어 이 가옥이 안흥진 수군을 관리하기 위해 군포(軍布)나 곡식을 거두어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915년 지형도 (사진=문화재청)
1915년 지형도 (사진=문화재청)

이 외에 안흥진 수군의 중요 임무 중 하나였던 조운선의 안흥량 통과를 위한 호송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의 희생과 이를 비유한 한시도 발견됐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오언절구 한시 「조명간」(鳥鳴澗, 새가 시냇가에서 울다)의 형식을 빌려 능숙한 초서체(草書體)로 ‘사람이 계수나무꽃 떨어지듯 하여, 밤은 깊은데 춘산도 적막하다’(人間桂花落 夜靜春山空, 인간계화락 야정춘산공)라고 하여 수많은 인명이 안흥량 앞바다에 빠져 희생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안흥량(태안 앞바다 일대 신진도, 마도, 관장목을 연결하는 물길이 험한 구역)을 왕래하는 선박 중 뒤집혀 침몰하는 것이 10척 중 7~8척에 이르고, 1년에 침몰하는 것이 적어도 20척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바람을 만나 사고가 많으면 40~50척에 이른다’(1667년인 현종 8년 윤 4월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사고가 많은 해역의 특성으로 인하여 수군과 조운선을 관리하는 이 고가(古家)에서는 ‘無量壽閣’(무량수각: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건물)’이라는 문구도 발견되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이번 태안 신진도 수군진 유물 발견을 계기로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안흥진 수군과 관련한 개인문집과 문학작품을 찾아 번역할 예정이다. 관련된 주요 문집으로는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의『백곡집, 栢谷集』, 김규오(金奎五, 1729-1791)의『최와집, 最窩集』,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은송당집, 恩誦堂集』등이며, 수군진의 문학과 역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앞서 지난 6월에 발견된 수군 군적부는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안흥진 소속 60여명의 군역 의무자를 전투 군인인 수군과 보조적 역할을 하는 보인으로 나눠 이름, 주소, 출생연도, 나이, 신장을 부친의 이름과 함께 적어둔 문서다.

군적부에 적힌 수군의 출신지는 모두 당진현으로, 당시의 당진 현감 직인과 수결(자필로 서명을 하는 결재 방식)이 확인됐으며, 수군 1인에 보인 1인으로 편성된 체제로 16세기 이후 수군편성 체계를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태안 신진도 고가 인근 초등학교 주변으로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조선시대의 건물로 추정되는 전통 기와집이 다수 남아있었다.”며“해당 지역이 수군진과 관계되는 관리와 수군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판단돼 이 지역의 추가조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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