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산, 아시아나 재실사 요구…제주항공처럼 인수 포기 수순 밟나
제주항공, 유상증자 일정 일주일 늦춰…“이스타항공 계약 해제 반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중앙뉴스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중앙뉴스DB)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국내 항공업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사들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재실사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채권단과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HDC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노딜(인수 무산) 명분 쌓기’로 보고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28일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구체적인 언급은 피한 채 채권단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HDC현산은 “가까운 시일 내 인수상황 재점검 절차에 착수하기 위해 다음달 중순부터 12주 정도 동안 아시아나항공 및 자회사들의 재실사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사진=중앙뉴스DB)
HDC현산은 “가까운 시일 내 인수상황 재점검 절차에 착수하기 위해 다음달 중순부터 12주 정도 동안 아시아나항공 및 자회사들의 재실사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사진=중앙뉴스DB)

@ HDC현산, 아시아나항공에 재실사 제안

HDC현산은 지난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14일 발송한 공문과 관련해, 계약상 진술 및 보장이 중요한 면에서 진실, 정확하지 않고 명백한 확약 위반 등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회신했다”고 말했다. 

이는 금호산업이 지난 14일 HDC현산 측에 M&A(기업 인수 합병)를 종결하자는 취지의 내용증명도 발송한 것에 대한 회신이다.

그러면서 HDC현산은 “가까운 시일 내 인수상황 재점검 절차에 착수하기 위해 다음달 중순부터 12주 정도 동안 아시아나항공 및 자회사들의 재실사에 나설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지연과 관련한 책임을 모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탓으로 돌린 것이다. 

이 때문에 향후 인수를 포기하더라도 계약금 2천500억원을 돌려받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HDC현산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을 언급하지 않고 금호산업과 아시아나의 책임만 지적한 것을 두고 금호산업이 보유한 구주 가격을 깎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재실사를 요구한 것도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는 변함이 없다”는 공식 입장은 되풀이 했다.

이런 가운데 산업은행은 이날 대책 회의를 하고 HDC현산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HDC현산의 인수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채권단과 금호산업이 HDC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실제로 채권단 내부에서 HDC현산의 재실사 요구와 관련해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 역시 한층 열악해진 만큼 HDC현산이 재실사를 통해 인수 가치를 재산정할 경우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사진=아시아나항공)
현재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 역시 한층 열악해진 만큼 HDC현산이 재실사를 통해 인수 가치를 재산정할 경우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사진=아시아나항공)

@ 아시아나항공, 코로나19로 직격탄 맞아 ‘불리’

현재 코로나19로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황 역시 한층 열악해진 만큼 HDC현산이 재실사를 통해 인수 가치를 재산정할 경우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올해 1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6천280%로, 전 분기(1천387%)의 4.5배에 달한다. 부채는 전 분기 12조5천951억원에서 13조2천41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자본 잠식도 심각한 상태다.

무엇보다 재협상을 위한 새로운 조건을 내놓으라는 채권단의 요구에 HDC현산이 응하지 않다가 재실사 카드를 꺼내 든 것에 내심 불편한 기색도 채권단 내부에 흐르고 있다.

해외 국가들의 기업결합심사 승인 등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됐다는 것이 채권단의 입장이기에 현산 측의 재실사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류도 감지된다.

HDC현산의 요구대로 다음달 중순부터 12주 동안 재실사에 돌입하면 구주 매각 대금으로 그룹 재건에 나서야 하는 금호산업이나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아시아나항공 모두 ‘희망고문’ 속에서 연말까지 버텨야 한다.

재실사 이후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선다면 다행이지만, 인수 대금을 깎거나 정부의 추가 지원을 받아내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재실사 후 끝내 발을 뺄 여지가 크다는 게 업계 안팎의 전망이다.

이에 따라 HDC현산의 재실사 요구도 결국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계약 무산시 예상되는 2천500억원 규모의 계약금 반환 소송을 대비한 명분을 쌓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산업은행도 이날 대책회을 열고 HDC현산의 요구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중앙뉴스DB)
산업은행도 이날 대책회을 열고 HDC현산의 요구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중앙뉴스DB)

@ “재실사 요구는 사실상 딜을 깨기 위한 명분 쌓기”

재계 관계자는 “HDC현산이 그동안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아시아나항공 본사에 상주시켰던 점을 고려하면 재실사 요구는 사실상 딜을 깨기 위한 명분 쌓기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재실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결국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채권단의 고민 지점이기도 하다.

HDC현산의 재실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HDC현산에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일단 협상 주체들과 대책을 모색하는 동시에 계약 파기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시야에 넣고 있다.

최대현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지난 6월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문제와 관련해 “협상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대비책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협의가 진전이 안 됐는데 ‘플랜B’는 언급하기는 어려우나 인수를 포기하면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모든 부분을 열어놓고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은 HDC현산이 보낸 공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도 이날 대책회을 열고 HDC현산의 요구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 체제 아래 놓일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의 영구채 8천억원을 출자 전환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한동안 채권단 관리 체제가 유지되다가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재매각이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통매각 대상이었던 자회사 에어부산과 에어서울 등의 분리 매각도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제주항공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 중인 유상증자 일정을 재차 늦춰 주목된다. (사진=제주항공)
제주항공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 중인 유상증자 일정을 재차 늦춰 주목된다. (사진=제주항공)

@ 제주항공, 유상증자 일정 재차 늦춰 ‘주목’

한편, 제주항공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 중인 유상증자 일정을 재차 늦춰 주목된다.

제주항공은 유상증자 일정을 당초 계획보다 1주가량 늦춘다고 지난 27일 공시했다. 지난달 4일 유상증자 일정을 종전보다 2∼3주 연기한 데 이어 다시 미룬 것이다.

구주주 청약은 다음달 5∼6일(우리사주조합 8월 12일)로, 일반 공모 청약은 다음달 18∼19일로 각각 일주일가량 연기됐으며, 납입일 역시 내달 21일로 변경됐다. 신주 배정기준일은 종전과 같은 6월 24일이다.

제주항공 측은 이와 관련 “이스타항공과의 주식매매계약(SPA)이 해제됨에 따라 투자설명서에서 이스타항공 인수 관련 계획이 변경됐기 때문에 투자자에게 충분히 숙지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항공은 변경된 증권신고서에서도 “이스타항공에 관한 주식매매계약 해제를 적법하게 통지했으므로 기업결합으로 인한 이스타항공의 재무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이나 이스타항공이 종속기업으로 편입될 경우 재무비율이 악화할 수 있는 위험은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스타항공이 주식매매계약에 따른 기업결합 의무를 이행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법원이 계약 해제의 효력을 부정하고 계약 이행을 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항공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1천585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 중 407억원은 운영자금으로, 1천178억원은 채무상환자금으로 각각 사용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