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길
[중앙뉴스=이재인] 예산은 사과로 유명했다. 아니 지금도 더러더러 과수원이 눈에 띈다.1960년대에서 1970년대의 예산 지방은 대구에 이어 사과단지로 유명한 지방이었다.
마을 여기저기 과수원이 흔했다. 그 과수원에 사과, 배꽃이 지고나면 아카시아 나무 울타리에는 하얀 꽃이 눈송이처럼 날렸다.
운치 있고 낭만적인 산책길이었다. 아카시아 향기는 나팔꽃 다음으로 향이 깊고 그윽하게 퍼졌다.
아카시아 핀 과수원 길에 단발이거나 쌍갈래 머리의 여학생, 그녀들의 세라복 백색 칼라에는 순수와 순결의 상징이었다.
가뜩이나 가난한 시대에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의 교복 입은 모습은 문자 그대로 벼랑 위에 핀 진달래였다.당시 예산은 사과 수확으로 인해 타 지방에 비해 고소득을 올렸다. 과수원을 경영하여 목돈을 마련한 부자들이 많기에, 학생들의 진학률도 높았다.
많이 배우고 넉넉한 마음이었으니 자연 출세한 인물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예산 여자들은 사과를 많이 먹어서 피부도 좋고 인물도 뛰어나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런 이들의 주장에 과학적 측정기까지 들이댈 필요는 없을 일이다.
아무튼 지금은 과수원이 폐원이 되고 고구마나 들깨 밭으로 변해버린 실정이다. 그곳은 낭만이 사라진, 벌도 나비도 찾지 않는 곳이 되었다. 예산에 과수원이 점차 줄어든 데에는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사과를 키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워야만 사과의 당도가 높아지는데, 지금의 예산 기후는 그렇지 못하다.사과에게 적정온도는 이제 강원도 철원 지방 정도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하얀 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과수원을 잊지 못한다. 빨간 사과를 잉태하는 그곳은 민족의 저력이었고, 예산의 자랑이었다.
과수원이 사라지고 들깨가 차지한 밭에, 강아지를 안고 산책하는 여인들을 더러 보게 된다. 문득 강아지를 안은 여인들이 아기 낳는 일을 포기한다면, 우리의 국력은 마치 과수원 없어지듯 사위어질 것만 같다.
어쩌면 청와대 근위병조차 수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싶은 웃기고 슬픈 생각이 번지면서, 예산 과수원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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