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줍기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옛날에는 귀신도 떨고 간다는 육철 낫이 있었다. 이 낫을 지니고 농민들이 마을마다 벼나 보리를 베었다. 이때 마음씨 고운 주인이 담뱃대를 입에서 떼면서 한 마디 했다.

“자네들 인심 사납게 모조리 다 베지 말게나…….”
“뭐하게유?”
머슴이 말했다.
“아랫것들이 먹구 살어야 헐테니께…….”

주인 영감이 머슴을 향해 엄중하게 당부했다.참으로 멋진 장면이다. 구약성서 「룻기」에도 이삭줍기의 미담을 볼 수 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도 수확기가 끝나면 논에 떨어진 이삭을 그대로 놔두는 관습이 있었다.

직접 주지는 못하더라도 수확을 하다 남은 이삭들을 과부나 고아들이 주워가 연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룻이라는 여인은 시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에 살며 그곳에서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라는 밭의 주인의 눈에 든다. 그녀의 효심을 소문으로 들었던 터이지만, 직접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보게 된 보아스는 결국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살만한 세상의 이야기, 따뜻하고 가슴처린 이야기인가? 우리나라 농촌의 수확기 논이나 보리밭에도 이처럼 너그러운 부자의 하명 선행으로 이삭을 주울 수 있었다. 전쟁에 나가서 감감무소식인 부모를 둔 아이, 고아, 과부에게 농경사회란, 이처럼 여유와 너그러움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용어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부자는 이렇게 살아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는 사람이 먼저 노약자를 돌아보는 자세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미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졸부는 어쩌다 횡재하여 살만하면 이렇게 말한다.

" 인심 얻고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이 말 속에는 이기주의로 자기 뱃속을 챙기겠다는 파렴치의 극치가 담겨있다 하겠다. 새삼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전문-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는 일이다. 이것은 비단 손에 움켜진 재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나오미와 룻이 그러했듯이…,이들의 후손은 누구인가? 지금도 이러한 이들이 있어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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