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펴낸 권지영 시인

사진 제공 / 권지영 시인
사진 제공 / 권지영 시인

 

펜데믹

권지영

 

마스크를 줄 서서 산다

요일별로 산다

나눠서 산다

사지 않는다

 

영화에도 없던 장면이다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밥을 따로 먹고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마침내 재난영화가 현실이 되고

공상과학영화가 다가오고 있다

아무도 미래를 믿지 않는다

볕 좋은 날

누구도 꽃구경을 가지 못한다

 

봄날의 축제가 바이러스로 죽고

구원받으려는 자들은

자비 없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헌금으로 지은 궁전에는 늙은 여우 하나

무심한 세월을 쌓아올렸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공작원처럼 곳곳에 퍼진 바이러스

 

오랑시에서 건너온 쥐들이

십자가로 몰려들었다는 소문은

감염병처럼 퍼졌다

잡고 뿌리고 잡고 뿌리고

쥐들이 숨을 데가 없어 손을 들었다

구원은 가장 낮은 데서부터 온다

아직도 착한 사람에게 용이하다

                                           - 권지영 시집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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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울해서 더 화끈거리는 여름을 관통하고 있다. 모기들마저 입맛이 상실되었는지 힘을 잃은 여름밤들이지만 감사하지도 않다. 가을이 온다 해도 덥다, 아니 오싹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미물들의 영역에까지 탐욕의 손을 뻗쳐 온 인류의 업보 때문인가? 이제 우린 반드시 싸워서 이겨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다. 바이러스가 창궐할수록 기도의 불은 더욱 불타오른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들은 고통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과 희생자들을 애도한다. 그리고 우리의 가족, 이웃들, 연약한 자들을 위하여 아니 지구촌을 위하여 하루 속히 백신을 개발하게 해 달라고 두 손을 모은다. 하지만 기도의 방향이 뒤틀려 공멸하는 방향으로 치달리고 있는 부류들도 있어 참담하다. 그 어떤 종교도 이념도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들이 몰라서도 아닐 터인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자는 한탄만 하고 있지는 않다. 희망의 한 줄을 던진다. ‘구원은 낮은 데서부터 온다 / 아직도 착한 사람에게 용이하다’ 라고 ... 이 마지막 두 줄에 희망을 걸어본다. 모든 헌신의 착한 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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