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대기자

[중앙뉴스 칼럼=전대열 대기자]온갖 비겁한 인간들과 마주칠 때에는 구역질나는 환멸을 느끼게 된다. 알만한 경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 때도 있다. 대부분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통하여 옳고 그름을 깨우칠 만도 한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

이번에 의사협회가 뜬금없이 ‘파업’을 선언하여 모든 국민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병원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어 많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의존하는 안식처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어지간히 아프지 않으면 병원 가기를 꺼렸지만 건강보험이 도입되고 해마다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환자들의 부담은 대폭 감소되었다.

특히 암과 같은 치명적인 병도 진료비 걱정 없이 새로운 기술로 새 생명을 얻는 수가 많아져 환자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제공한다. 의료진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존경심과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환자들에게는 언제나 신뢰의 대상자다. 우리나라에는 유독 ‘사’자가 붙은 직업이 많은데 대부분 일 사(事) 아니면 선비 사(士)를 쓰고 있지만 의사에게만은 최고의 예우를 붙여 스승 사(師)를 쓰는 것만 봐도 사회적 위상을 알게 한다.

몇 년에 한번 씩은 되풀이 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동안 메르스와 사스 같은 몹쓸 바이러스의 침범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어왔다. 대부분 외국에서 감염된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 감염시키는 것인데 그 때마다 보건당국과 전국 의료진의 희생적인 진료와 치료는 전 국민의 찬사를 받았다. 가장 센세이셔널했던 의료행위는 해적들에게 집중총격을 받고 아주의대로 이송되어 이국종외과의사의 헌신적인 수술과 치료로 살아난 석선장 사건이다.

그가 의식불명 상태로 있었던 기간에 모든 국민은 그의 회생을 기원했고 의식을 되찾았다는 기사가 신문 1면을 차지할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다. 이국종과 석선장은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었다. 이게 정상적이다. 환자와 의사 그리고 일반 국민들은 죽어가는 생명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는 것이며 마음껏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수백만 명의 환자와 수십만 명의 사망자라는 근래 보기 드문 대재앙을 맞이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의료계는 의료계대로 이를 극복하려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나마 발원지인 중국은 초장(初場)에 진정되어 의기양양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브라질과 유렵제국은 아직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번지고 있어 큰 낭패를 면치 못한다. 우리나라는 대구지역이 신천지 영향으로 기세를 떨치더니 이제는 안정권에 접어든 형세인데 느닷없이 수도권에서 1일 2~3백 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통에 제2차 대유행의 조짐이 있다. 지난 4.15총선 직전에는 재난 긴급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모두 나눠줘 ‘합법적 매표’가 되어 압도적 승리를 얻은 여당은 또 지원금 얘기를 꺼내고 있다.

나는 당시에도 선별적 지원을 제창했지만 지금도 그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코로나 진료에 여념이 없는 의료계에 눈치도, 코치도 없는 정부여당이 난데없는 칼을 던졌다. 코로나 급증으로 의료진의 피로도가 최고상승단계일 것임을 모르지 않을 사람들이 하필 이 시점을 택하여 그들의 민감 사항을 건드리고 나서는가?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의료진은 너나할 것 없이 전쟁에 뛰어든 장수요 병졸이다. 그들에게 격려와 지원은 못할망정 생뚱맞게 공공의대 신설문제를 왜 꺼내는가. 나 역시 공공의대를 대폭 신설하여 전국에 산재한 의료 취약지구에 안정적으로 의사가 배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지금 의료 현실은 대도시에 몰려있다. 전문의 지원도 외과는 기피대상이다. 3D를 마다하는 한국의 일자리는 모두 외국인 차지가 되어있듯이 의사도 힘들지 않고 돈 버는 쪽을 선호한다. 가뜩이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과연 이대로 가더라도 아무 탈이 나지 않을까 못내 조마조마하다. 역대급 긴 장마에 곳곳이 무너졌고 세종시 천도문제도 잠시 조용해졌지만 개헌과 함께 재등장할 것이 예견된다. 법무부는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검사들을 대폭 좌천시켜 줄사표를 내고 있다.

부정선거도, 뇌물형 돈 먹기도, 위안부 판 기부금으로 치부를 해도 그들이 ‘내 쪽’이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살풍경이 영화필름처럼 돌아간다. 이런 시점에는 설혹 공공의대 설립이 옳은 일일지라도 코로나19 후에 거론해도 결코 늦지 않다. 이에 맞서 의료계가 휴진이라는 이름으로 파업을 선택한 것은 국민의 존경을 외면하는 치졸함의 극치다.

밥 그릇 챙기기라는 비아냥을 변명할 말이 없지 않은가. 의사는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고 가운을 입는다. 선서의 기본은 환자중심에 있다. 요즘 성추행피해자 중심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의사들도 선서에서 약속한대로 환자중심을 앞세우고 의사이익을 뒤로하라. 모든 것은 코로나부터 해치운 다음이다.

전대열 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