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기소’
삼성 미전실 주도 ‘프로젝트 G’로 승계 계획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다시 서게 된 이재용
투자 위축과 대외신인도 하락 가능성 우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무역 갈등 등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총수가 국정농단 재판 외에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따른 또 하나의 재판을 받게 됐다. (사진=중앙뉴스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무역 갈등 등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총수가 국정농단 재판 외에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따른 또 하나의 재판을 받게 됐다. (사진=중앙뉴스DB)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일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기소되면서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이와 함께 삼성 내부에는 투자 위축 및 대외신인도 하락 가능성 등 경영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무역 갈등 등 대외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총수가 국정농단 재판 외에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에 따른 또 하나의 재판을 받게 됐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이 경영에만 오롯이 전념하기가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날 “최근 4년 반 동안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수사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했다”며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재판이 진행되면서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은 검찰이 이 부회장을 기소한 것과 관련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까지 뒤집은 ‘끼워맞추기식 수사’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삼성은 검찰이 문제 삼은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시장에서 정해지는 주가를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임의로 이해당사자가 정하거나 합의해서 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도 이날 검찰이 이 부회장 등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자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기소를 목표로 정해 놓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민들의 뜻에 어긋나고, 사법부의 합리적 판단마저 무시한 기소는 법적 형평에 반할 뿐만 아니라,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검찰의 공정한 의사결정 절차를 믿고 그 과정에서 권리를 지키려 했던 피고인들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고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삼성물산 합병은 경영상 필요에 의해 이뤄진 합법적인 경영 활동”이라며 “합병 과정에서의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등에서) 확인됐다”고 했다. 또 “재판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검찰의 이번 기소가 왜 부당한 것인지 법정에서 하나하나 밝혀 나가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특히 이 부회장의 경영 동력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했다.  (사진=중앙뉴스DB)
삼성은 특히 이 부회장의 경영 동력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했다.  (사진=중앙뉴스DB)

@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동력 위축 우려

삼성은 특히 이 부회장의 경영 동력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했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2017년 2월 구속됐다가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이후 이 부회장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국내외 현장 경영을 통해 경영 보폭을 넓혀왔다. 

올해 5월에는 ‘대국민 사과’를 통해 잘못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 거듭나겠다는 미래 비전을 밝혔다.

하지만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한 구속영장실질심사 등으로 법정에 서야 했고, 이번 기소로 인해 법정 출두는 당분간 이어지게 됐다.

삼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016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열 차례 검찰에 소환되고, 세 번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았으며, 70회 이상 재판에 출석했다. 

이번 기소로 이 부회장은 다시 법정을 들락날락해야 하고 또 다시 영어의 몸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삼성이 중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대규모 투자를 하기 힘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삼성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앞서 권오현 삼성전자 전 회장이 최근 사내 인터뷰에서 “위기 속에서 전문경영인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에 최고층의 결단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또한, 삼성은 대외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번 경영권 승계 의혹의 직접적 대상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망업종인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대표 기업으로 현재 4공장 증설 예정이지만 신인도 하락으로 대규모 외부 자금 조달 등에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도 나온다.

한편, 삼성물산 역시 해외 공사 프로젝트에서 회사나 경영진에 대한 문제를 입찰 요건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이 부회장 등 경영진 기소로 해외 건설 프로젝트에서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

2일 재계안팎에서도 이 부회장 기소가 삼성의 경영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위기 극복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이 부회장과 삼성의 사법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오히려 최고조에 달했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자칫 기회를 놓쳐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불구속 상태로 다시 재판장에 서야 되는 묶인 몸이 됐다. (사진=연합)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불구속 상태로 다시 재판장에 서야 되는 묶인 몸이 됐다. (사진=연합)

@ 불구속 상태로 다시 재판장에 서야 되는 이재용 

이 부회장이 불구속 상태로 다시 재판장에 서야 되는 묶인 몸이 됐다.

검찰은 이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 이재용 부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앞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고 재판에 넘기지 말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의 최종 책임자이자 수혜자라며 법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날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지성(69) 옛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64) 옛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 삼성 관계자 10명도 함께 재판에 넘겼다.

2018년 11월 20일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지 1년 9개월 만이다.

검찰은 우선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로 치밀하게 계획됐다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이 부회장도 단계마다 중요 보고를 받고 승인했다고 보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부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 주가는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해 ▲ 거짓 정보 유포 ▲ 중요 정보 은폐 ▲ 허위 호재 공표 ▲ 주요 주주 매수 ▲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 각종 부정 거래를 일삼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삼성물산은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물산 투자자들은 주주가치의 증대 기회를 상실하는 손해를 봤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 부분에 이 부회장의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또한 검찰은 수사의 출발점이 된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사기 의혹 역시 고의적 분식회계로 판단하고 이 부회장 등에게 주식회사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도 적용했다.

삼성바이오는 당초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미국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을 회계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가 2015년 합병 이후 1조8천억원의 부채로 잡으면서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4조5천억원 상당의 자산을 과다 계상했다.

검찰은 이런 식으로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삼성바이오로서는 자본 잠식 위기를 피하고, 나아가 불공정 합병 논란을 잠재웠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삼성은 ‘최소 비용에 의한 승계와 지배력 강화’라는 총수의 사익을 위해 미래전략실 지시로 합병을 실행하고 투자자의 이익은 무시하고 기망했다”며 “이는 명백한 배임 행위이자 자본시장법의 입법 취지를 몰각한 조직적인 자본시장질서 교란행위로서 중대한 범죄”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를 따르지 않은 데 대해선 “사안이 중대하고 객관적 증거가 명백한 데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으로서 사법적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1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한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진=중앙뉴스DB)
검찰은 1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한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진=중앙뉴스DB)

@ 검찰, 삼성그룹 미전실 주도 ‘프로젝트 G’로 승계 계획

이처럼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한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2015년 5~9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주도로 승계계획안 ‘프로젝트 G’에 따라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결정·추진됐다고 판단했다.

‘프로젝트 G’는 이미 2012년 12월께 수립됐고, 2013년부터 이 계획대로 승계작업이 진행되던 중 이 회장의 와병으로 상황이 급변하면서 제일모직(옛 에버랜드) 상장 등이 추진됐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검찰은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와병 이후 승계 계획에 따라 같은 해 12월 제일모직이 상장됐고, 이듬해 3~4월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해 제일모직에 유리해지자 다음 단계인 합병이 추진됐다고 본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탄생한 (통합)삼성물산의 지분 16.4%를 확보한 최대주주가 됐고, 그 결과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06%에 대한 지배력까지 확보함으로써 삼성전자와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 결론을 놓고 시민단체에서는 “표적으로 삼고 짜서 맞춘 검찰 수사의 희생물”이라며 유감을 표시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애초부터 기소했어야 하는데 시간 끌기를 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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