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금지 피해 업종과 취약계층 선별
기본소득 세력은 왜 선별론에 반대하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사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선되기 전부터 당정청의 기류는 선별 지급이었다. 물론 신천지발 코로나 대위기가 닥쳤던 지난 2~3월 처음 재난 기본소득 담론이 형성됐을 때에도 청와대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고려한 적 없다”는 수준이었다. 그러면 3월말 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한다고 선언했을까? 그때는 총선이 2주남았을 때였다. 그때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더 어렵다. 전국민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 시행으로 인해 카페와 식당에 가는 것이 어렵게 됐다. 

이에 국민의힘(구 미래통합당)은 폭우 피해가 가시화된 것을 계기삼아 4차 추경(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한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은 선별론이고 정의당과 기본소득당 등은 보편론을 내세우고 있다.

8월 초 야당에서 먼저 나온 4차 추경론에 대해 당정은 “방역과 피해 복구에 집중하겠다”며 선을 그었지만 이 대표가 당선된 8월29일 이후로는 4차 추경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중 지원을 하자는 선별론이 채택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1년 예산안 편성 당정협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2020.8.26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8월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1년 예산안 편성 당정 협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당정은 3일 오후 비공개 실무회의를 개최하고 2차 재난지원금을 비롯 지원책의 방향을 전국민 보편이 아닌 선별 지급으로 가닥을 잡았다. 4차 추경의 규모는 7조원을 기준으로 맥시멈 10조원 미만으로 편성한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에 따른 피해자들을 선별해서 집중적으로 현금성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대표는 2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망원시장에 방문해서 △자영업자 △고용취약계층 △양육 부모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수해 이재민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다양한 피해자들 등을 거론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바로 당정 협의를 열고 이번주 내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공언했었다. 

노컷뉴스와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실무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관계자 A씨는 “코로나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업종과 계층을 선별해서 얼마나 더 두텁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 최종적인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고 B씨는 “소득 기준으로 하위 몇 퍼센트를 주는 것이 아니라 타격이 큰 이들을 선별해서 맞춤형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당정이 공감대를 이뤘다. 특히 정부가 문을 닫으라고 해서 문을 닫은 곳을 지원하는 것에 컨센서스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정이 타겟팅하는 곳은 사회적 거리두기 2.5 단계 격상으로 타격을 받은 △노래방 △PC방 △실내체육시설(헬스장) △프랜차이즈 가맹점 카페 △식당 등이다. 이들에게 “휴업보상비” 개념으로 한 업체당 1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시나리오다. 사실 100만원은 큰 도움이 되지는 못 한다. 그래서 600만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니 경영자금 긴급대출 확대 등 별도의 금융 대책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여행사 △유원지 자영업자 △호텔 등도 고려되고 있다. 이 대표가 거론한 육아 문제와 관련해서는 유치원-어린이집-초등학교의 등교 수업이 중단됨에 따른 돌봄 공백을 겪고 있는 부모들이 지원 대상이다. 가족 돌봄을 위한 무급 휴가를 신청한 이들에게 일일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4일 재난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했던 국회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기본소득당)

C씨는 “추경을 3차례 거치면서 재정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이번에는 국채로 충당해야 할 상황이다. 2차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 대신 피해가 극심한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긴급지원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정의 기류와 달리 기본소득 세력(기본소득당·시대전환·녹색당·미래당·여성의당·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이 선별론의 단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속도’와 ‘연대’ 2가지다. 선별하느라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고 경계 지점에 있는 사람들의 소득 역전 현상이 우려된다. 무엇보다 세금을 내는 사람과 지원을 받는 사람의 불일치로 추후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증세에 도움이 안 된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 하고 세금만 내는 중상류층의 국민은 세금을 안 내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선별 시스템에 들기 위해 불행 경쟁을 해야 하는 사람들도 비극적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7월2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기본소득은 국민들이 증세에 동의할 수 있는 매력적 방안”이라며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세금이 올라도 국민 절대 다수가 순 수혜자가 되어 증세가 훨씬 수월해진다. 재정이 있어야 기본소득을 도입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기본소득을 도입함으로써 증세와 재정 확대를 할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4월29일 출고된 경향신물 칼럼을 통해 “진짜 불쌍한 사람에게만 지원하자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스캐너와 프린터가 없어 필요한 지원을 포기한 적이 없을 것”이라며 “정부 정책을 잘 알 것이고 모르면 검색을 통해 정보를 취득할 능력도 있다. 선별복지를 신청할 필요가 없으니 주민센터의 아비규환을 알 리 없다”고 환기했다.

이어 “반면 생활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공고문을 읽는 것 자체가 벽일 수 있다”며 “디지털 중심의 복지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전통적인 문해력과 정보 격차의 문제를 넘어 디지털 문해력과 디지털 불평등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어떤 이들은 오전 9시와 오후 6시 사이에 관공서를 드나들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관련해서 기본소득당·미래당·녹색당은 4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향후 스케줄과 관련 당정은 4일 실무회의와 고위회의를 연달아 개최한 뒤 이번주 안에 최종 방침을 정하고, 다음주 내로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추석(9월30일~10월4일) 직전에 재난지원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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