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집의 독단인가?
대전협 결국 소통 과정에서 배제되어서?
왜 의료 소비자인 국민은 뒷전?
대한간호사협회도 비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분명 법정단체인 의협(대한의사협회)이 당정과 합의를 했다. 그렇지만 전공의와 전임의(진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의사)는 아직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있고 파업 스탠스를 유지 중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토요일(5일) 서울 노원구 한국전력 인재개발원에 위치한 <서울시 생활치료센터>를 찾아 “정부여당과 의협이 어제 오랜 진통 끝에 합의해 늦었지만 참 다행”이라면서도 “전공의와 전임의들은 조속히 진료 현장에 완전 복귀해 수도권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의협은 4대 의료정책(의대정원 확대/공공의대 설립/한방첩약 급여화/비대면진료 육성) 문제를 놓고 당정과 합의문에 서명을 했고 이에 따라 모든 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현장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아직 그러지 않고 있다. 

대전협(대한전공의협의회)은 의협보다 덜 강경했고 지난 8월23일 의료계 일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정 총리와 만나 뭔가 절충점을 찾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왜 그럴까.

대전협은 현재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인데 4일 17시 즈음 입장문을 내고 “(대전협 비대위는) 젊은의사 비대위의 구성원으로서 이번 의협 최대집 회장의 독단적인 협상 진행 과정에 절차적 문제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바”라면서 의협과의 소통 과정을 나열했다.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서울특별시의사회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지성 전임의 비상대책위 위원장. 2020.9.1
박지현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시의사회에서 열린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전협이 정리한 스케줄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과정이 있었다.

①9월2일 19시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 차원의 협상 단일안 도출을 위한 회동(단일안 마련 실패) 
②젊은의사 비대위가 의협에 근본적인 사태 해결을 위한 요구안 전달
③9월3일 13시반 최종 협상안 마련을 위한 범투위 3차 회의 개최(더불어민주당과 보건복지부 양쪽에 전달 예정인 2가지 협상안 초안 마련)
④범투위 협상단은 최종 협상안이 마련되면 젊은의사 비대위 측에 사전 회람 약속
⑤범투위 협상단은 협상단에 젊은의사 비대위 구성원을 포함시킬 것이라 약속
⑥범투위 협상단은 당정과의 협상이 타결되면 박지현 대전협 비대위원장도 같이 서명하기로 약속하고 이 부분에서 만장일치로 의결
⑦9월3일 23시 민주당과의 1차 협상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고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소속 조원준 전문위원과 1시간 반 동안 교섭했으나 최종 합의된 바 없음
⑧9월4일 새벽 4시 민주당이 제시한 협상안을 카톡으로 전달받고 초안에 비해 상당 부분이 누락되어 있어서 문제제기하고 이를 반영해달라고 요청
⑨복지부와의 협상 일정을 문의했으나 아직 미정이라는 답변을 받음
⑩약속과 달리 최종 협상안 2가지가 젊은의사 비대위에게 사전 회람된 바 없음
⑪9월4일 새벽 언론을 통해 당정과의 최종 타결 소식을 속보로 들었지만 의협은 오보라고 해명했고 결국 그날 오전 정책협약 서명식이 진행됐음 
⑫의협 이사들도 잘 모르는 채로 최 회장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여짐

박 위원장은 4일 오후 SNS 라이브를 통해 절차적 하자를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대전협은 “현재까지의 협상 및 합의 과정에서 일어난 절차적 문제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하고 최 회장 및 범투위 협상단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최대집 의협 회장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협과 민주당이 도출한 합의문 5개항은 아래와 같다.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협의한다. 의협과 민주당은 의정협의체의 논의 결과를 존중한다. 또한 의대정원 통보 등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

Ⓑ지역 수가와 같은 지역의료 지원책 개발,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전공의 수련환경의 실질적 개선, 건정심(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 개선 논의,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 주요 의료 현안을 의제로 하는 의정협의체를 구성한다. 복지부는 협의체의 논의 결과를 보건의료발전계획에 적극 반영하고 실행한다.

Ⓒ복지부와 의료계는 의협이 문제제기하는 4대 정책(의대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진료)의 발전적 방안에 대해 협의체에서 논의한다.

Ⓓ코로나19 위기의 극복을 위하여 의협과 복지부는 긴밀하게 상호 공조하며 의료인 보호와 의료기관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여 시행한다.

Ⓔ의협은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진료 현장에 복귀한다.

대전협은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합의문에) 전공의나 의대생 보호에 대한 언급이 없는 상태로 전공의와 의대생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단체 행동을 멈출 수 없다”며 “조속히 올바른 의료를 위해 싸워온 전공의와 의대생에 대한 보호 대책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누구보다 분하지만 현재의 합의문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최 회장은 복지부와의 서명식을 위해 이동하는 중에 몇몇 전공의들의 강한 항의를 받은 바 있는데 기자들에게 “(4대 의료정책) 철회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냥 하나의 의견이다. 내가 최종적으로 결단내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신뢰 문제다.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는 4일 방송된 <8시 뉴스>에서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게 지난 2000년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나도 인턴이었고 의약 분업 문제로 집단행동을 했었다. 당시 병원에 복귀하면서 정부로부터 구두 약속을 받았던 게 수가 정상화다. 이게 2년도 안 돼 깨졌던 경험이 의사들에게 있다”며 “이번에 집착하는 것처럼 명문화를 강조한 건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전협의 향후 스탠스와 관련) 여러 대학 교수들과 봉직의협회에서 전공의가 어떤 결정을 하든 즉 파업을 계속해도 지지하겠다고 했다. 다만 전공의들이 파업 중에도 (일부) 진료에 참여하고 있지만 공백을 메우는 교수들의 체력이 고갈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복합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대전협은 주말 동안 의견을 모아서 다음주 월요일(7일)에 (최종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고 정리했다. 

한편으로는 중대한 의료정책이 추진될 때 △정부 △의사 △간호사 △의대생 △의료 소비자 등이 폭넓게 소통을 해야 하는데 정부와 의사만 깜깜이 합의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 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175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4일 합의 소식이 타전된 직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175개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초유의 감염병 사태로 시민의 안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고 의료 인력 확대와 공공의료 개혁이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상황에서 공공의료 개혁을 한 발자국도 진전시키지 못 한 채 백기투항에 가까운 합의를 해버린 정부여당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시민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된 공공의료 정책을 논의하면서 정작 시민을 배제하고 이익단체인 의사 단체의 요구대로 사실상 공공의료 포기 선언한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피력했다. 
  
이어 “의사 단체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내려놓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집단 휴진이라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의료 공공성 확대의 발목을 잡고 개혁 논의를 좌초시킨 의협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 자리에 모인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오늘의 밀실 야합을 단호히 거부하고 주권자인 시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공공의료 개혁과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해 더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대한간호사협회도 성명서를 내고 “의정협의체(Ⓐ)를 폐기하고 범국민 논의기구를 구성해 보건 의료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간 의료인 수급 불균형 문제를 단지 의사단체와 협상으로 마무리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질 높은 의료 및 간호 혜택을 원하는 지역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대표 25명 중에 의사 13만여명, 치과의사 3만여명, 한의사 2만여명 등 의사단체 대표는 5명이고 7만명의 약사 대표는 2명인데 반해 44만명을 대표하는 간호사 대표는 고작 1명에 불과하다”며 “이런 대표성으로는 제대로 된 간호 수가를 만들거나 질 높은 간호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기 어렵다. 정부와 의사만의 협의기구로 이뤄진 의정협의체에선 제대로 된 보건의료정책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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