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대표의 시혜적 태도 
선별론은 왜 문제인가
맞춤형과 긴급은 안 맞아
재정건전성과 소비 침체
연대의식 약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이낙연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5선)는 전당대회 기간 중에 “도와드린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어떻게 지급하면 좋을지에 대해 경쟁자인 김부겸 전 의원(4선)과 박주민 의원(재선)은 모두에게 보편 지급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표는 힘들고 어려운 국민들을 골라내서 더 두둑히 도와줘야 한다는 핀셋 철학을 설파했다.

대한민국 헌법상 국민은 주권자지만 이 대표는 그들을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4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본소득당·녹색당·미래당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기본소득당)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6월23일 출고된 오마이뉴스 칼럼을 통해 “지금 복지제도의 핵심적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며 “주권자들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것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만 도와주자는 주장의 문제다. 사회의 짐이라는 부채의식, 나도 모르는 사이 부정수급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 신청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은 인간의 영혼을 갉아 먹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감정과 존엄을 계산하지도 고려하지도 않은 채 그들을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할 사회적 비용으로 기껏해야 도와줘야 할 시혜적 존재로 분류할 뿐”이라며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최근의 기본소득론 담론의 문제 역시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을 주체적 인간이 아니라 기술에 따라 밀려나는 수동적인 피해자이자 구제의 대상으로만 그린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기본소득 운동이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주권자가 존엄할 권리가 있으며 생존 때문에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국민들을 방치해서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행정 비용을 줄이거나 경제성장 정책으로만 기본소득이 설명되면서 본래의 정신들이 훼손되고 있다.”

(사진=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당정의 선별론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했다. (사진=기본소득당)

4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기본소득당·녹색당·미래당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3당은 당정의 선별론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보편 지급을 촉구했다. 기본소득당은 기자회견 직후 청와대 국민 청원 사이트에 보편 지급을 촉구하는 글을 올리며 서명운동을 개시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마이크를 잡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찔끔 지원금 및 핀셋 지원금을 지급하면 경기 회복은 더 느리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의 시간은 더 길어진다”고 주장했다. 

사실 전당대회 결과는 어대낙(어차피 대통령은 이낙연)이라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만큼 선별론이 예고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는 8월29일 당선되자마자 곧바로 당정 협의를 진행해서 2차 재난지원금에 대한 방침을 확정하고 4차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겠다고 공언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당정은 목요일(3일)에 비공개로 협의했고 언론을 통해 선별 방침을 흘렸다. 단순히 소득 하위 몇 퍼센트에 얼마를 지급하겠다는 수준이 아니었다. 코로나발 피해를 많이 입은 대상을 가리고 또 가려서 초핀셋 지원을 하겠다는 식이다.

이를테면 △자영업자(노래방·PC방·실내체육시설·카페 가맹점주·식당)에게 휴업보상비 명목으로 100만원을 지급하고 △고용취약계층 △양육 부모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수해 이재민 △이밖에도 코로나 방역으로 인한 다양한 피해자들을 골라내서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을 정한 배경이 있다.

용 의원은 “(선별 지급의) 명분은 국가 재정이 어렵고, 어려운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고, 소모적 논쟁을 피해 추석 전에 빨리 지급하기 위해서라고 한다”고 정리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①상위계층과 달리 하위계층은 기초생활수급 데이터 등 기존 통계들이 많아 선별하느라 시간이 많이 소모되지 않을 것이고 ②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오프라인 소비가 늘어나면 코로나 방역에 도움이 안 된다며 선별론을 고수했다. 

(사진=기본소득당)
오태양 공동대표는 선별적으로 지급하면 재난지원금이 분열지원금이 된다고 주장했다. (사진=미래당)

①과 관련해서 당정은 분명 소득 하위 기준을 설정해서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로 정말 어려워진 대상을 구체적으로 선별하겠다고 했다. 벌써 코로나 피해 통계를 확보하고 있어서 이 대표의 주장처럼 선별하는 데에 시간이 별로 안 걸릴까?

오태양 미래당 공동대표는 “맞춤형과 긴급 지원은 어울리지 않는다. 추석 전까지 언제 기준잡고, 신청받고, 선별하고, 추경 통과시키고, 지급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내년 4월 예정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낸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긴급한 상황에 맞춤형으로 지급한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들 입장에서 재난지원금 신청할 때도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라며 “말 그대로 긴급재난지원금이지만 이름과 달리 조건에 맞는지 선별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매번 나오는 재정건전성 문제에 대해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의 삶이 붕괴된 나라에서 국가만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경제는 곧 소비다. 누군가 물건을 사줘야, 누군가는 돈을 벌고 다시 물건을 생산해낼 수 있다. 코로나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오프라인 골목 상권이 붕괴되고 있다. 소비 침체가 핵심이다. 돈이 돌게 만들어야 한다. 

용 의원은 “(선별 지급은) 경기 회복이 크게 느려져 어려운 분들의 고통을 연장한다”며 “자영업자 한 명에게 100만원을 주면 한 달을 빈 가게에서 버틸 뿐이지만 그 동네 주민 100명에게 20만원씩 주면 가게 매출이 늘고 부가가치와 고용이 창출된다. 동네 경기가 같이 살아야 가게 주인도 산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 재정이 어렵다고? 정부가 아끼면 국민이 빚을 지게 된다”며 “정부가 돈을 안 쓰면 경제가 위축되고 GDP가 줄어들어 GDP 대비 부채 비중이 커지지만 정부가 돈을 써서 국민의 주머니를 채워주면 경제 활력이 생겨나 GDP가 커지고 부채 비중은 오히려 줄어든다. 정부가 대신 빚을 져야 국민도 살고 나라도 산다”고 역설했다.

오 대표도 “코로나 경기 불황의 핵심은 소비 침체에 있기 때문에 유동성 자금을 늘려 경기 순환 흐름을 지속시켜야 한다”며 “소상공인들이 1차 재난지원금 효과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숨통이 틔었다는 것이다. 추석은 대한민국에서 일년 중 가장 공급과 수요가 넘치는 때다. 파는 사람도 창고를 채워야 하지만 동시에 사는 사람도 주머니가 두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 의원은 선별 지급이 소비 진작없는 일시적 효과만 낼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기본소득당)

나아가 오 대표는 재정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오 대표는 “올해 예산 중 약 200조가 아직 남아 있다. 불용 예산, 낭비 예산, 미집행 예산 등을 조정하면 15조 가량의 긴급 재정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올해 F35 신형 전투기를 도입하는데 약 2조5000억이 배정되어 있는데 이런 예산들을 전용한다면 국채 발행을 최소화해서 전국민에게 충분히 지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선별은 필히 선택받은 자와 못 받은 자를 양산한다. 조건에 미치지 못 하여 못 받은 자는 선택받은 자보다 소득이 더 적어질 수도 있다. 소득 역진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용 의원은 “가령 소득 하위 50% 국민을 선별해 가구당 100만원을 준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소득 역전이 매우 크게 발생한다”며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50% 가구는 평균 월소득이 349만원이고 61%는 442만원이다. 2차 재난지원금이 50%까지만 지급되면 51~61%에 해당하는 220만 가구 약 528만명의 월소득이 그 아래 분위 가구보다 적어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위소득보다 약간 더 버는 이 가구들도 코로나발 경제위기로 소득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그런 국민 500만명이 선별 지급으로 배제되고 차별받게 되면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500만 국민의 분노를 정부여당은 감당할 수 있는가”라고 경고했다. 

무엇보다 선별론은 연대의식을 약화시킨다. 세금을 내는 자와 복지 수혜자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증세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오 대표는 “코로나 재난은 전쟁처럼 그 위기와 피해가 무차별적”이라며 “재난지원금을 차등적으로 선별하기 시작하면 같은 가족, 회사, 상가, 학교, 공장 안에서도 지원금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 한 사람으로 갈라질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국가 재정의 확장성과 건정성을 동시에 잡으려면 증세가 필연적인데 국론은 갈라지고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난은 무차별적인데 지원은 차등 선별한다면 재난지원금은 사회 갈등과 국론 분열의 2차 재난을 불러올 것”이라며 “재난지원금이 분열지원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진=기본소득당)
신지혜 상임대표는 선별론을 줄세우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사진=기본소득당)

용 의원은 선별론을 인형뽑기에 비유했다. 

용 의원은 “국민은 인형뽑기 기계 속에서 뽑히기를 기다리는 인형이 아니”라며 “지금 국가는 인형뽑기 하듯 국민들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면서도 국가 경제를 살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낙연 대표님 결단하셔야 한다. 나쁜 선택과 더 나쁜 선택 가운데 망설이지 말고 최선의 선택을 해달라. 2차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게 모두 지급해달라”고 요구했다. 

신 대표는 불행 경쟁을 시키는 “줄세우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신 대표는 “피해 정도에 따라 선별 지급하겠다는 것은 국민에게 코로나 재난으로 누가 얼마나 더 고통스러운지 묻는 것과 다름없다”며 “제각각의 사연으로 재난을 견디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을 줄세우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 전체 취업자 중에서 자영업자(약 600만명) 비율이 4분의 1이나 된다. 콕 집어 몇몇 업종의 업주들만 지원한다면 코로나 여파로 생활이 쪼들린 수많은 국민들의 억울함과 박탈감은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라며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역시 방역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심리적 방역이라 이야기했다. 모든 국민이 감내하고 있는 이 방역시스템 속에서 국민 사이에 균열을 내고 연대의식을 붕괴시키는 정책 방향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