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발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충청도에서는 사기 밥사발을 주발이라 일컫는다. 우리의 주식을 담는 그릇이었다. 주발은 따뜻한 밥을 품어 아이들을 키워내는, 마치 어머니의 ‘하늘 같은 정성과 사랑과 은혜’가 담긴 그릇이었다.

사기만이 아니라 놋으로 된 주발도 있었는데, 이는 주상전하나 고관대작 벼슬아치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5.16 군사혁명 이후에 스덴(스테인레스) 밥그릇, 그리고 양은 주발로 바뀌었다.

여기에 도자기의 발전으로 유행이라면 유행일 수 있는 ‘본차이나’ 제품도 등장했다. 그때부터 밥주발이 가볍게 바뀌었다. 주발 소재에 양의 뼛가루를 합성해서 튼튼하고 가볍되, 잘 깨지지 않도록 했다. 자칫 떨어뜨리는 실수에도 발등을 다치는 일이 없었다. 송유하 시인은 「주발」을 이렇게 노래했다.

-주발-

나의 주발에는 하늘을 담자. 하늘같이 어진 은혜를 담자. 나의 주발에는 기린같이 목을 늘이고 서서 산을 바라보는. 산을 바라보며 언제나 착한 아들이 되나 착한 아들이 되나 하고 염려하는 눈빛을 담자.

어르고 달래서 보다 의젓하고 튼튼한 재목을 만들자고 사시사철 모진 시련을 가해오는 눈보라나 비바람 같은 늘 찢겨 푸른 구름 사이의 하늘같은 것들로 도타운 씨앗이 자라고, 가엽은 바다 어느 구비진 물목에서 노도에 쫓기는 두려움만큼은 가난한 생활을 용하게 끌어올려 주시는 어머니의 까실까실한 입술을 담자.

효성이 모자라서 심장은 대견하니까 따뜻한 품자리에 묻힌 혈온, 저녁마다 등잔 아래에서 떡을 빚고 손가락이 굽도록 떡을 빚고 날만 새면 시장으로 나가 어린것들을 길러주시는 어머니의 그윽한 눈길을 담자.

‘언제 커서 아들 노릇을 하나, 어느 세월에 자식 덕 보며 살게 되나’ 어머니는 잠시라도 푸념인가 애정인가 바다같이 엄숙하게 계절이 나의 안에서 나를 키우고.

그윽한 눈길에 비치는 것, 날마다 새벽마다 맑은 물 떠놓고 아들을 빌어주시는 그윽한 눈길에 비치는 것. 그것은 달처럼 무거운 피로이실까, 별같이 숱하게 쪼개져 달아나는 먼 기억 속에서 저미어 오는 아픔일까.

나의 주발에는 언제나 간절한 숨이 배어 있고, 너무 값지고 무거운 사랑이 담겨 나와서 목을 메이게 하는 혈연의 소용돌이 속에 가엾이 울고플리야, 울어서 노을처럼 타오르는 숲이 되고플리야.

요즘은 이런 ‘주발’을 찾을 수가 없다. 양은, 스뎅, 유리 등등 재질은 다양해도 어머니가 도탑게 복을 담아주는 사기 밥그릇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정성도, 자식의 효성도 없다. 종종 예전에 쓰던 사기 밥주발을 발견하게 된다.

유명 박물관에서 말이다. 주발은 이제 박물관에나 가야 찾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다. 박물관 부엌 한 켠에 전시된 사기 주발은 정화수가 담긴 그릇, 어머니의 기도와 정성이 깃든 깨끗한 영혼의 식기였다. 아버지와 자식들의 사기 주발에 고봉으로 밥을 얹던 그 하이얀 손, 넘치는 사랑……. 마치 멀리 전학 간 친구처럼 그리운 추억의 산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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