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대기자

[중앙뉴스 칼럼=전대열 대기자]너무나 참담하고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씨(아직도 이름은 발표되지 않고 있음)는 동료 10여 명과 함께 어업지도선을 타고 연평도 근해에서 실종된 후 북한 해안에 이르렀으나 여섯 시간동안 물속에서 북한군의 심문을 받고 현장에서 사살된 후 기름을 붓고 40분 동안 불태웠다는 것이 우리 군의 상황보고다.

북한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어떠한 방법으로 그처럼 소상하게 실상을 알려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바 아니다. 다만 군에서 단정적으로 이씨가 월북했다고 발표한데 대해서는 얼른 수긍되지 않는다. 훤히 보이는 바닷길이라고 하지만 그가 헤엄을 쳐서 갔는지, 표류해서 갔는지도 애매하고 그 정도로 자세하게 상황을 전달할 수 있는 정보능력이라면 그가 어업지도선에서 어떻게 바다에 뛰어들었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동료들은 배 난간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바다에 빠졌을 것이고 결코 월북할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데 무슨 정보가 있기에 이미 북한에서 사망한 사람을 가리켜 ‘월북자’로 발표할 수 있었는지 설명해야만 한다.

47세의 대한민국 공무원이라면 산전수전 다 겪은 중진이다. 그의 가족들도 한결같이 “월북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이씨의 성향과 사상적 배경은 지금 논할 때가 아니며 좀 더 시간이 흘러가봐야 알겠지만 남북의 현실적 조건으로 말하면 일개 공무원이 조국을 버리고 북한 땅으로 귀순한다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현재 남북 상황은 북한과 미국의 톱다운 방식의 협상이 결렬된 후 경제제재가 계속되면서 북한 경제는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19는 세계경제를 옥죄면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북한 역시 폐쇄사회답게 일체의 코로나 침투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있어 그 진상은 모르겠으나 그럴수록 중국과의 간헐적인 거래마저 끊긴 상태에서 경제적인 궁핍은 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신주단지로 모시고 있는 것은 핵뿐이다. 인민들이야 굶어죽던 말던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수십 년 동안 공들여온 핵폭탄을 완성한 김정은 정권은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타결만 남겨놨다고 생각한다.

원래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외교제일의로 내세웠던 북한은 문재인정부를 이용하여 미국 트럼프와의 직접적인 면담에 성공한바 있다.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 등 트럼프와 김정은은 세 차례의 단독회담을 통하여 그들의 속내를 충분히 주고받고도 아무런 합의에도 실패했다. 그것은 뻔한 이치다. 북한은 핵을 내주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북핵폐기를 주장하는 미국과의 협상은 양보할 마음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질질 끌기만 하던 북미 간에는 11월 미국대선을 앞두고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김정은의 권한 일부를 양여 받았다는 제2인자 김여정의 일정이 안개 속에 파묻혀 있는 것과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의 전격적인 방한이 예정되어 있는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 문재인이 유엔 연설을 통해서 ‘종전선언’을 촉구한 배경도 가려봐야 한다. 이런 시점에 해수부 공무원이 설혹 사상과 이념이 북한에 동조한다고 해도 차분히 기다릴 일이지 자진 월북을 선택한다는 것은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보여지는 이유다.

그러나 일은 이미 저질러졌으며 북한의 변명대로 시신을 불태우지 않았더라도 그는 이미 사살되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뭘 하고 있었느냐 하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과는 정상끼리의 핫라인이 가동 중이다. 김정은이 이 사건에 대하여 신속하게 문재인에게 보낸 통지문에서 “문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데 대하여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사과문을 보냈다고 발표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두 정상이 지난 8일과 12일 코로나 방역 등과 관련한 친서를 주고받았다. 공무원 이씨가 북한군에게 잡혔을 때부터 사살되는 6시간 동안 대통령은 이미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였고 즉시 핫라인을 통해서 신병인도를 요구했다면 결코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박근혜는 사고 소식을 보고받고도 7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시간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끈질긴 추궁을 받아야 했다. 문재인 역시 국민을 구하는 일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정확하게 발표할 수 있는가? 또 김정은의 사과 한 마디에 여권은 북의 책임 추궁을 하던 분위기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길이 열린 양 반색하고 있다.

독재자는 여간해서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는 굴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김정은이 ‘미안’하다고 한 것은 의외요 이례적이다. 그러나 이씨의 시신수습과 공동조사 등 반드시 필요한 사항까지 용납해야만 진정성이 확인된다. 김정은 한 마디에 웃고 울 일이 아닌데 여권과 관료들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나가는 것은 진상파악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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