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결선 
양자 구도 각각 단일화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
어떤 계파
정책 공약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프랑스 대선에서는 결선 투표가 일반적이다. 1차 투표에서 1·2등을 차지한 후보는 3·4등 후보의 지지세를 얻어야 최종 당선될 수 있기 때문에 정책 연대 등의 형태로 구애 전략을 펼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3·4등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낙선한 후보의 의사대로 결선 투표를 할 가능성이 높다. 정의당 6기 당권 선거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김종철 정의당 당대표 후보는 4일 15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김종철과 김종민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 대표 선거다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며 “(1차 투표 결과) 당원들은 천천히가 아니라 과감하게 안주보다는 변화를 선택해주셨다. 김종철과 김종민은 공동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여 정의당이 더욱 과감하고 선명하게 진보정당으로서의 길을 가는 데 힘을 합쳐나갈 것”이라고 공식화했다. 

1차 투표에서 4등을 한 김종민 전 후보가 김 후보와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공동선본을 구성하기로 한 김종철 후보와 김종민 전 후보. (사진=김종철 후보 페이스북)

하루 전(3일) 배진교 후보는 3등을 차지한 박창진 전 후보와 연대를 선언했다. 

배 후보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정의당은 총선 이후 닥친 위기 극복을 위해 과감하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차이를 넘어 통합적으로 당을 운영하며 과거에 멈춘 이념을 넘어 다원적 가치가 존중되는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들어갈 지도부가 절실하다”며 “결선을 앞두고 배진교와 박창진 두 사람은 당의 미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눴고 국민과 당원들의 관심과 열정을 모아내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배진교 후보와 박창진 전 후보가 연대하기로 했다. (사진=박창진 전 후보의 페이스북)

지난 9월27일 집계된 1차 투표 결과는 △김종철 후보 29.79%(4006표) △배진교 후보 27.68%(3723표) △박창진 후보 21.86%(2940표) △김종민 후보 20.67%(2780표) 등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결선에서 김 후보가 50.46%를 얻게 되고 배 후보가 49.54%를 얻게 된다. 6786표 대 6663표로 딱 123표 차이다. 123명만 변심하면 결과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무엇보다 1차 투표의 투표율이 51.15%(1만3733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선 투표에서는 누군가를 당선시키거나 막기 위해 침묵했던 당원들이 적극적으로 표를 행사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포스트 심상정의 정의당을 누가 맡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선 투표는 5일부터 시작(온라인+ARS)되고 결과는 9일에 발표된다. 

두 후보를 △계파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 설정 △정책 등으로 비교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 후보는 인천연합 출신이다. (사진=연합뉴스)

배 후보는 당내 최대 계파로 평가받고 있는 인천연합 출신이다. 인천연합은 NL 민족주의 성향이 짙고 참여계(국민참여당)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흩어지자 당내 최대 계파가 됐다. 과거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을 거치면서 가장 강경한 민족주의 계파(진보당)가 빠져나갔지만 그나마 정의당 내부에서 인천연합이 가장 민족주의적이다. 이정미 전 4기 대표도 인천연합 출신이다. 단순하게 볼 수는 없으나 북한과의 협력 강조, 미국에 대한 반감, 친일반민족 행위에 대한 원칙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배 후보가 지난 8.15 광복절 때 김원웅 광복회장의 발언에 반발하는 국민의힘에 대해 맹비판을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된다. 

배 후보는 당시 “(김 회장의 광복절 기념사에 대해) 무엇 하나 틀린 말 없는 기념사가 이토록 논쟁이 되는 것조차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며 “친일 청산을 하자는데 발끈하는 집단은 대한민국에 미래통합당(국힘) 뿐이다. 안익태, 박정희, 백선엽은 모두 명백한 친일행위가 확인된 반민족행위자들이다. 친일이 확인된 사람들의 파묘를 다룬 국립묘지법 개정안과 서훈 취소를 다룬 상훈법 개정안을 모두 처리해 입법으로 말하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진보진영이나 정의당 일부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정적 탄압용으로 친일 청산에 집착하고 있고 소위 “토착왜구” 프레임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최근 정의당은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 심상정 대표 주도로 남북관계 보다는 우리 국민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이게 대북 강경론으로 퉁쳐질 수는 없지만 북한에 할 말 하는 진보정당의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다.

배 후보와 김 후보는 마지막 결선을 치르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배 후보는 분명 더 이상의 민주대연합은 없다면서 민주당 2중대론을 탈피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김 후보나 김 전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협조해야 한다는 정서가 있는 편이다. 예컨대 △조국 사태(조국 전 법무부장관) △비례 위성정당 △故 박원순 서울시장 조문 정국 등과 같은 첨예한 이슈들이 또 불거지게 된다면 민주당에 각을 덜 세울 가능성이 있다. 박 전 후보의 캠프에서 일했던 한창민 전 부대표만 하더라도 위성정당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었고, 박 전 후보가 내세웠던 특별 복당 기간 도입도 박 시장 조문 논란으로 탈당한 당원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더구나 박 전 후보는 대놓고 참여계의 지지를 받았었고 선거 기간 내내 진보적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대중 정당으로 나아가자고 강조한 바 있다. 진보적 이념에 입각해서 문재인 정부를 너무 가혹하게 비판하지만 말고 때에 따라서는 실용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사실 노심(故 노회찬과 심상정)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입장이 달랐다. 노회찬 의원은 협력하자는 쪽이었고 심상정 대표는 견제하자는 쪽이었다. 다만 6석이라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원외 진보정당들처럼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자는 나이브한 정치인은 정의당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에 협력하자는 프레임인지, 문재인 정부도 보수 기득권 세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9월17일 방송된 SBS 토론회에서 김 후보는 배 후보에게 “이번에 민주대연합은 끝났다면서 차별화를 강조하는데 2018년 (지방선거 인천 남동구청장 후보로서)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중이고 (경쟁자로) 민주당 후보가 있음에도 이런 구호(문 대통령과 나란히 서있는 이미지)를 썼다”며 “정의당이 민주당보다 더 나은 지방자치를 위해 나아가겠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선거에서 이런 구호를 쓴 것은 문재인 마케팅을 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배 후보는 “21대 총선을 계기로 민주대연합이 끝났다고 얘기하는 것이고 이제는 민주당과의 개혁 공조가 아니라 개혁을 선도하는 시대가 됐다는 뜻”이라며 “(그때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세력이 커졌고 진보개혁 진영이 위축돼 있었기에 민주대연합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선거도 개혁 공조 범위 안에 있었다. 현수막은 선거 마케팅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했다.

17일 SBS 목동사옥에서 열린 정의당 당대표 후보자 방송 토론회에 앞서 후보들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민, 김종철, 배진교, 박창진 후보. 2020.9.17
9월17일 SBS를 통해 진행된 1차 토론 당시의 모습. 4명의 전현직 후보가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배 후보는 박 전 후보와의 공동 공약 및 개인 공약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을 제시했다. 

①‘제2창당의 길’ 돌입[진보적 다원주의를 내세운 가치 중심의 대중정당]
②당내 민주주의 확립 위해 당의 주요 사안들에 대한 당원 총투표 실시 등 당원 결정권 강화
③올해 탈당한 당원들에 대한 ‘특별 복당 기간’ 도입
④과거의 낡은 당내 정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당의 공적 의사결정’ 강화
⑤기본소득 정책을 당의 첫 당원 총투표 의제로 추진
⑥2022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선거법 개정 주도[당대표 직함을 들고 정개특위에 들어가기/선거구 쪼개기 금지/광역비례 정수 확대/광역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⑦청년 정의당이 당의 미래가 되도록 뒷받침
⑧이미 한 약속 굳건히 이행[차별금지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전국민 고용소득보장법·그린뉴딜 특별법·비동의 강간죄 등 5대 입법 정책 실현/상병수당 의무화 등 코로나 복지 3법/자영업 보호 3법]

 
배 후보는 4일 페이스북에서 “나는 감사하게도 10년전 수도권 최초의 진보 구청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당 정책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지금은 6명 소수 정당의 국회의원 중 1명으로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며 “오늘의 배진교를 만들어준 이 당에 모든 것을 걸겠다. 다시 집권을 꿈꾸는 정의당으로 축적과 혁신의 2년을 준비하는 대표, 보궐선거-대선-지방선거로 이어지는 권력 재편기에 모든 경험과 역량을 총동원하는 대표가 되겠다”고 공언했다. 

9월20일 정의당 당사에서 열린 2차 토론회. (사진=연합뉴스)

김 후보는 2015년 말 노동당을 탈당해서 정의당에 입당했다. 김 후보는 5기 당대표 선거에 나섰던 양경규 전 민주노총 공공연맹위원장(당 사회연대임금특별위원장)과 일찍 단일화를 이뤄낸 만큼 선명한 진보 이념을 주창하고 있다. 양 전 위원장은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김 후보는 서울 동작을에서 오래 활동해왔는데 이번 총선까지 7차례의 선거 낙선 경험이 있다. 2012년 총선과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엄청난 단일화 압박에 시달렸지만 출마를 밀어붙였다. 그런 김 후보가 노동당을 탈당한 이유는 뭘까.

김 후보는 9월19일 방송된 MBN 토론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오게 된 것은 진보정당이 좀 더 커져야 된다고 생각해서 노당당과 정의당이 합쳐서 노동자, 자영업자, 시민들을 위한 더 큰 진보정당을 만들기를 원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깝게 부결됐다. 그렇다면 지금은 정의당에 좀 더 힘을 실어줘야 겠다고 생각해서 노동당 분들에게 죄송하지만 탈당했다”면서 “(왜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노 의원과 단일화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당시에는 내가 노동당 동작을에 있었고 노 의원은 노원병에 있었는데 동작을로 온 것이라 아쉽게 단일화를 못 했다”고 피력했다.

이어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이후에 노회찬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을 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다른 정당에 있음에도 그 정도의 관계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김 후보는 전면적인 당 혁신을 예고했다. (사진=연합뉴스)

김 후보는 선임 대변인직을 맡고 있던 7월3일 정의당 출입기자 단톡방(마크맨방)에서 “정의당 관련 보도에서 범여권 정의당 표현은 가급적 피해주길 부탁한다”며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도 여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거부했다. 최근에 보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추미애 장관의 행보(윤석열 검찰총장과의 갈등), 졸속 추경 심사(3차)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부여당의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고 어필했다. 

김 전 후보도 김 후보와 같이 조국 사태 당시 명확하게 데스노트 수록을 주장한 당내 소수파였다. 김 전 후보는 서울 좌파 조직인 ‘함께 서울’의 지원을 받고 당권 선거에 나섰다.

김 후보와 김 전 후보의 공동 공약은 아래와 같다. 

①정의당 전체를 진보씽크탱크로 전면 전환[국민에게 스며드는 정책 브랜딩/청년 정의당이 독립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강력 지원]
②‘거대한 소수전략’ 구현[당 차별금지법운동본부·비상구·사이다·코로나차별신고센터·지방자치위원회·세입자주거본부 등 원내외 정의당과 시민사회 적극 연대]
③지역정치와 부문정치 강화를 위해 중앙당 전면 개편 
④온라인 정당화를 위해 플랫폼 홈페이지로의 전면 개편 및 온라인 미디어 강화


김 후보는 4일 페이스북을 통해 “당대표가 원내인가 원외인가의 문제는 상황과 조건의 문제이지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나는) 노회찬·윤소하 전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으로서 원내 활동의 전략과 정책 그리고 대국민 메시지를 만들어왔다. 그 누구보다 원내 활동에 대한 비전을 경험을 통해 준비했고 구체적인 방안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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