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수 년 간 석탄 광산에 다녔던 할아버지의 진폐증 있는 기침 소리에 가슴 졸이며 참외를 사러 간 기억이 있다. 참외는 속절없이 달고 맛이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는 쿨럭쿨럭 우리의 가슴을 떨게 했다.

광부가 되었다는 시인의 기이한 사연을 듣고자 수수엿 사들고 그를 찾았던 국어선생님은 부엉이 우는 밤 사이에 하나님 곁으로 승천했다는 목사님의 전언만을 쥐고 돌아온 일도 있었다.

증기기관차가 괴성을 내지르며 지나가는 길목, 그곳에는 원두막이 있었고 우리는 원두막 근처 밭둑에서 연날리기를 했더랬다. 원두막이 있는 마을에 화가도 찾아왔고 여인으로서 시조를 쓴다는 국어 선생님도 오셨다. 그래서 원두막은 마을의 등대처럼 밤에도 불을 환히 비췄다.

동네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던 그곳, 이제는 비닐하우스가 밀고 들어와 원두막 옆에 하얗게 눈을 흘기더니, 자리를 빼앗았다.

원두막이 없어지고 난 후, 의성 참외나 무등산 수박이 등장했다. 마치 원두막이 주는 마지막 선물처럼, 원두막이 없어진 이후에도 고장의 이름을 달고 달디 단 과일들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사라진 원두막 터에 무궁화 꽃을 심은 마을 이장님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 추억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산속마을 뻐꾸기 우는 골짜기에
원두막은 있다.
등불에 내걸린 꿈이 그대로 익는 여름
달디 단 황금알이 뱃가죽을 드러낸다.
요놈들은 로맨틱하다.
원두막을 배경으로 물구나무 선 원두막 가에
미루나무 몇 그루
호수에 발을 담근 오후
참외 수박밭에는 꿈이 익고
전설이 잉태한다.

어린 시절, 원두막은 과수원이나 참외밭에 목을 길게 빼고 서 있었다. 넓은 수박밭에도 서서 외로이 밭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밀짚 나래를 엮어 만든 원두막이 사라졌다.

 볏짚으로 지붕을 이은 원두막도 없어졌다. 원두막을 지키던 노인도 소식 없이 사라졌다. 그 원두막의 천정에 매달린 등불이 고물상 한 구석에서 외롭게 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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