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전환과 기본소득당의 관계
액수와 증세 여부 등 내용적 차이
법안에 대한 찬반 투표화 경계
서초구의 기본소득 실험만으로는 부족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기본소득론자라고 해서 무조건 반갑게 여기던 시기는 지나갔다. 이미 기본소득은 대세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본소득이냐에 따라 입장이 나뉘고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국민 기본소득법에 동참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국민 고용보험을 밀고 있는 정의당 소속 류호정 의원이 서명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중앙뉴스>는 6일 저녁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에서 개최된 <4당4색 기본소득 도입 방안 토론회>가 끝난 뒤 용 의원을 만나 이 점에 대해 물어봤다. 

용 의원은 “여러 가지 고민이 좀 있었다”면서 “기본소득 관련된 법안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당명부터 기본소득당이기 때문에 그냥 발의 자체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남다른) 의미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시대전환의 모델에 대해 의미있는 안이라고 본다. 사실 증세가 없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각종 공제를 없애는 게 증세”라며 “이런 것도 그렇고 많은 고민을 하던 중에 먼저 발의를 하셨다. 저희도 모델을 믿고 관련 법안을 준비할 수 있는데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조정훈 의원과 조금 다르다”고 밝혔다.

용혜인 의원은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의 기본소득법에 서명하지 않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시대전환은 △증세없이 각종 공제 혜택을 없애거나 낭비되는 지방 복지 예산을 조정해서 재원을 마련하고 △매달 30만원을 국민 개개인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 모델을 갖고 있다. 법안에서는 18조 4항과 5항을 통해 △2022년 월 30만원 이상 △2024년 월 35만원 이상 △2029년 월 50만원 이상 △2029년 이후에는 전년도 GDP의 10%를 인구수로 나눈 금액 이상 등으로 명시해놨다.

기본소득당은 일찍이 △증세(전국민 보편 소득세/토지 보유세/탄소세/핵 발전 위험세)를 전제로 △매달 60만원을 국민 개개인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 모델을 공식화 한 바 있다. 다만 원내외 기본소득 세력들이 단일안을 도출하지 못 한 상황에서 법안만 내고 찬반 투표로 마무리짓는 것처럼 되는 흐름을 경계하고 있다. 

용 의원은 “각 모델들이 경합하면서 물론 국회에 가면 대안으로 논의가 되겠지만 그렇게 각 안들에 대한 가부를 묻는 방식으로는 절대 합의를 볼 수 없다”며 “(그런 식으로 진행되면) 기본소득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공론화위원회 같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액수를 특정하거나 모델링으로서의 법안 발의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론화위원회법과 청년 기본소득법을 좀 준비를 했는데 여전히 고민 중이다. (각 주체들이 법안 발의를 하기 전에 공론장에서) 책임있게 모델을 가지고 합의를 만들 수 있는 논의를 하자는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재원 마련 등등에 대해 가부 끝? 가부 끝? 이렇게 하면 어쨌든 과반을 넘겨야 통과되는데 그 어떤 안도 과반을 넘기 힘든 상황일 것이라서 그렇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기본소득당이 주도하는 4당 기본소득 연석회의가 이날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최시은 미래당 정책국장)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은 올초 창당됐다. 두 당은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연합정당(더불어시민당)을 통해 나란히 원내 1석을 보유하게 됐다. 시대전환은 창당 이전부터 기본소득당과 규제개혁당(창당을 포기하고 관련 시민단체 창립)의 장점을 융합하기 위해 활동해왔고 3월4일에는 박주현 전 의원(민생당)과 시대전환·기본소득당·녹색당·미래당·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시적 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본소득당이 주도하는 기본소득 연석회의(기본소득당·녹색당·미래당·여성의당)에는 시대전환이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지난 7월 4당과 함께 시대전환도 포함되어 비공개 티타임을 가졌다. 그 이후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의 연대 흐름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분위기다.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는 국내 정당들 중에 시대전환만 연석회의에 초대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용 의원이 직접 밝혔듯이 △액수와 증세 여부 등에 대한 철학 차이 △단일안 마련없이 공식 법안들에 대해 찬반 투표화되는 것 경계 등 2가지 명분이 있지만 당론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는 원내 유이한 두 당이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않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은 기본소득 전선에서 긍적적이지 않다.

물론 용 의원은 현재 발의된 다른 기본소득 관련 법안 2건(소병훈 의원의 기본소득법/성일종 의원의 기본소득도입연구법)에도 서명을 하지 않았다.

조 의원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5일 한국경제 단독 보도에 따르면 조은희 서초구청장(서울시)은 서초구에 1년 이상 거주한 청년 300명(만 24~29세)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구의회에 관련 조례를 제출했는데 구체적으로 △1인당 매월 52만원씩 △2년간 총 1250만원을 지급하는 것을 모델로 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37억5000만원이 소요된다.

이에 대해 용 의원은 지자체 차원의 실험도 나쁘지 않지만 “경기도도 그렇고 성남시도 그렇고 사실 한계 연령으로 시작해서 더 이상 확대가 안 된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청년 기본소득이든 뭐든 확대하거나 전면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사실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논의하고 실험을 하더라도 국가적 규모로 해보는 것이 필요할 때가 됐다는 설명이다.

용 의원은 “경기도, 성남, 서초 다 마찬가진데 다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자체다.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실험이든 뭐든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당 공식 논평은) 아직 안 나왔다. 좀 논의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조은희 서초구청장의 모습. (사진=서초구청)

용혜인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는 기본소득 전문가 오준호 작가는 서초구의 실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 작가는 5일 20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이건 꽤 대단하다. 생계급여 수준의 기본소득을 실험이나마 지급하기로 한 건 처음”이라며 “해외 실험도 종종 소득이나 구직 노력 등의 조건을 거는데 비해 서초구는 기본소득 원칙에도 가까이 갔다. 부자 동네가 왜 기본소득을 주냐고 할지 모르나 보편 복지에 대한 저항을 그만큼 누그러뜨릴 기회이기도 하다. 앞으로가 궁금하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범주형 기본소득이 인정되고는 있지만 굳이 무작위로 뽑는 지급 대상을 청년으로 국한할 필요가 있을까. 서초구민 전체로 대상을 확대해서 300명을 선정하면 전국민 보편성을 특징으로 하는 기본소득의 취지에 더 부합한다.

그러나 용 의원은 “(청년으로 국한하지 않는 실험 대상 선정도) 뭐 나쁘지 않다. 다만 사회통념상 청년이 취약계층이 아니었다가 2015년 전후로 청년이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등장해서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돈을 주는 것은 납득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농민이나 청년, 아동, 노인 이런 범주형 기본소득은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고 그랬을 때 좀 그런 (일반 기본소득 실험을 했을 때의) 논란들을 피하기 위해서 범주형 기본소득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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