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로는 대포를 이기지 못해...잉카제국 몰락의 교훈
힘이없는 국방은 평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윤장섭 기자
윤장섭 기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비대칭 상황에 놓여있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엇그저께 자정, 북한은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을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한 연출로 전세계를 우롱했다.

이날 북한 열병식은 이례적으로 심야에 개최했다. 왜그랬을까? 전력사정조차 넉넉지 않은 北이 대낮이 아닌 10일 자정에 열병식을 개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시각적인 효과와 이벤트적인 노림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무게감이 있어야할 행사가 이벤트성 행사로 기획된 것을 바라보면서 필자도 30대의 젊은 독재자 김정은의 연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날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이벤트(열병식)의 하일라이트는 단연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김정은의 눈물이다.

우리는 지금 핵을 보유한 北과 대치하고 있다. 필자가 시작 말머리에서 언급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를 두고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곳은 정부이어야 하고 그 다음이 국민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평화라는 두 글자에만 매달리고 있고 국민들은 북한보다 44배의 경제력 우위에 있는 우리에게 제까짓 것들이 뭘 어쩔건데 하는 생각을 갖고 스스로 최면(催眠)에 걸려있다. 전쟁(戰爭)도 쩐이 많아야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경제력은 한 나라의 군사력을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자산인 것 만은 틀림이 없다. 그렇다고 경제력이 군사력과 정비례한다고 믿어서도 안된다. 경제력을 믿었다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례는 세계사를 통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국민들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가장대표적인 사례가 잉카제국의 몰락이다.

16세기 중반 스페인의 정복자인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남미의 황금제국 잉카를 정복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당시 잉카는 무방비 상태였고 태평성대(太平聖代)였다. 피사로는 180명의 아주 작은 병사를 거느렸지만 대포와 총으로 무장했고 잉카제국의 병사들은 피사로의 병사 숫자가 적음을 알고 별로 두려워 하지 않았다. 수천명으로 전장(戰場)에 나선 잉카의 병사에게 들려진 것은 고작 활이 전부였다. 그러나 피사로의 병사들이 비대칭 무기인 대포와 총으로 불을 뿜어대자 활로 무장한 잉카의 병사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모두 도망을 갔고 전장은 아주 싱겁게 끝나버렸다.

소수의 병력을 앞세운 피사로가 잉카의 왕을 죽이고 황금제국을 해체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힘의 논리다.

이번에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이 선보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이 장착이 될 경우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자탄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진 살상무기가 된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戰爭)을 준비하라고 일갈했던 어느 노(老)장군의 말이 열병식을 바라보는 필자의 심장을 비수로 찌르듯 등골이 오싹했다. 힘이없는 자는 강자 앞에서 한없이 비굴해진다. 그러나 힘이있는 자는 자신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는 상대에게는 오만불손(傲慢不遜)하기 마련이다.

경제력이 수십배 높은 우리가 북한의 기침소리에도 오금을 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전술 핵이 없기 때문이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하고 핵에는 핵으로만 견제와 균형이 맞추어지게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쩐'은 일을지언정 '핵'이없다. 북한은 '쩐'은 없지만 '핵'을 보유했다. 대포로 무장한 피사로의 병사를 활로 대응했던 잉카의 병사들이 상대가 안되었던 것처럼 '핵'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계속 젊은 독재자 김정은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에 기가막힌 연기로 그네들이 국민이라 부르는 인민들의 마음을 훔쳤다. 바로 눈물의 고백이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우리 인민 모두가 무병 무탈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언제 그래냐는 듯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세인이 경탄할 이 화폭 자체가 우리를 괴롭히고 막아 나섰던 온갖 재앙들이 제압되고 우리가 내세웠던 정의로운 투쟁 목표들이 빛나게 달성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라고 연설했다. 마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말로 들렸다.

김정은의 웃음뒤에 감춰진 힘있는자의 오만불손(傲慢不遜)함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북한과 균형을 맞추고 있었던 것은 바로 한미동맹으로 맺어진 안전판의 구축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미간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는 않다.

실금이 보이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균열이 오고 결국 산산 조각이 난다. 만일 북한 김정은의 핵 위협 협박이 임계점에 이르면 우리가 그렇게 자랑하던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도 무너지게 된다. 외국계 바이어들과 자본가들은 불안한 나라에서 더이상 금고를 열지 않을 것이고 모두 제 3국으로 자금을 이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 여파는 국내 모든 기업들에게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경제대국이라 자랑하던 한국은 결국 패닉상태에 놓이게 되고 한강의 기적으로 이루어 놓았던 경제 대국의 지위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비록 이 모든 과정이 추측이라고 할지라도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것에 조심스럽지만 필자의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은 왜일까.

결국 평화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 말의 성찬(盛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힘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병정노란(丙丁虜亂)이자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우리 역사에서 치욕적이면서 굴욕의 역사다. 필자가 병자호란의 예를 들면서 글을 마무리 하려는 것도 힘이없는 국방은 평화를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1636년 병자년 12월, 스스로 지킬 힘이 없어 청나라에게 항복을 택한 인조의 눈물은 피눈물이 었다. 인조는 청태종앞에 무룹을 꿇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바닥에 이마를 찧었지만 이마에 피가 보이지 않는다 하여 선혈이 낭자할 때까지 돌계단에 머리가 부스러져라 이마를 찧고는 치욕적인 항복의 예를 올렸다.

올해가 6.25발발 70주년의 해다. 우리의 할아버지가, 또 우리의 아버지들이 목숨걸고 피흘려 공산정권과 싸워서 지켜온 대한민국이지만 김일성 일가가 꿈꾸는 무력통일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김정은이 유학파이고 민주주의를 경험했다고 그꿈이 사라졌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더 견고하고 촘촘한 계획으로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이루지 못한 무력 통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발톱을 잠시 숨기고 있을 뿐이다.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이 모든 것들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결코 역사는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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