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의 역사...남겨진 벽화나 기록에 의해 짐작할 뿐
고조선 때 제천의식을 통해 술이 빚어졌던 것으로 추측
삼국시대 곡물을 사용해 술을 빚는 방법이 완성

최근들어 전통주에 관심을 두고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시장에 출시되는 우리술이라고 불리우는 전통주들은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를 주면서 애주가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있다. 특히 우리술은 단순히 전통만 고집하거나 ‘오래된 것’만을 두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전통주를 지키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어 이번 시간은 우리술의 역사에 대해 들여다 보기로 한다.

<중앙뉴스>는 윤경옥 소믈리에(Sommelier)가알려주는 '와인'이야기에 이어 윤경옥의 전통주이야기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다섯번째 편에 소개할 전통주 이야기는 우리술의 역사와 탄생, 그리고 발전에 대해 알아보자.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 소유자인 윤경옥 전통주 소믈리에(Sommelier)는 (사)한국소믈리에협회 와인강사이자 식음료협회 와인 Sommelier 심사위원이다.

윤경옥 전통주 소믈리에(sommelier)
윤경옥 전통주 소믈리에(sommelier)

어떤 카테고리를 연구하거나 공부할 때 가장 먼저 그 분야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아주 좋은 경험일 것이다. 우리 술의 역사를 되집어 보면서 제 자신도 다시한번 우리술의 현재를 생각하게 된다.

술:Alcohol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고 언제부터 음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할 순 없다. 다만 남겨진 벽화나 기록에 의해서 어느 시대부터 애용되었는지 짐작할 뿐이다.

술(Alcohol)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고 언제부터 음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할 순 없다.
술(Alcohol)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고 언제부터 음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할 순 없다.

추측하기는 아마도 정확한 언어도, 문자도 없던 시절부터 땅으로 떨어진 곡물이나 과실이 비나 안개에 의해 야생 효모와 만나 발효가 되면서 술이 되었고, 목이 마른 사람들이 이 무엇인지 모를 액체를 마시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용기가 생기는 마법의 액체를 즐겨서 마셨으리라 예상해본다.

우리나라의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술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아서 명확하게 그 시작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고조선 때 제천의식을 통해서 술이 빚어졌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우리 술이 기록에 등장하는 때는 삼국시대부터다. 술집과 양조장의 모습이 벽화로 남아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벽화로 남겨진 기록은 매우 상세히 당 시대의 술의 문화를 전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곡물을 사용해서 술을 빚는 방법이 완성되었다.

고구려의 '지주'(旨酒)는 외적을 물리친 술로 유명하고, 신라의 '신라주'(新羅酒)는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알려졌으며, 백제의 '수수보리 양조주'(须须許理)는 일본으로 건너가 양조 기술을 전해 줄 만큼 우리의 술 문화는 숙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에 대해 쓴 이규보의 <동명왕 편 東明王篇>, <삼국지>, <위서 동이전> 등에서 술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면서 이 기록들을 통해 한반도 일대에서 고대국가들이 제천 기간 동안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는 우리 술이 발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양조기술이 발달하면서 △'녹파주', △'황금주'등 다양한 명주들이 등장한 시기이며 증류식 소주가 전래된 시기로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형 대가 완성된 시기다.

고려 사람들은 술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양 온서'라는 관청에서는 궁중의 술을 관리했고, 사찰에서 대규모로 술을 빚어 누룩과 술이 판매되기도 했다.

한림별곡(翰林別曲)에 등장하는 다양한 술의 이름들은 그 재료와 특징을 잘 살려낸 멋진 명칭으로 고려 사람들의 술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고, 술뿐만 아니라 위에서 등장하는 '앵무 잔'이라는 기물이 등장하는 것으로 술을 즐기기 위한 다양한 물품들이 만들어졌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양쪽의 손잡이가 특징으로 술을 데워서 먹거나, 격실을 차리면서 술을 마셨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양쪽의 손잡이가 특징으로 술을 데워서 먹거나, 격실을 차리면서 술을 마셨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양쪽의 손잡이가 특징으로 술을 데워서 먹거나, 격실을 차리면서 술을 마셨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 등장하는 또 다른 독특한 술이 있다. 익제 이제현(1286-1367)이 술 마시는 풍경을 기록한 내용에서는 '맥주(보리로 만든 술)를 마신다. 마시는 방법은 용수를 박거나 눌러짜지 않는다.

대나무통을 항아리 속에 꽂는다. 둘러앉은 손님들이 차례차례 빨아서 마신다. 옆에는 물 잔을 놓아두었다가 술을 마신만큼 항아리 속에 물을 붓는다. 술이 바닥나지 않는다면 그 맛이 달라지지 않는다'라며 이 독특한 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술의 형태가 지금은 볼 수 없다고 생각을 했으나 우리나라가 아닌 베트남의 전통주중에 아직도 그 형태가 남아있는 '지오깐'이라는 베트남 막걸리를 배웠던 기억이 났다. 어떤 나라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문화와 문화의 교류에서 영향을 주었던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제현이 남긴 기록과 '지오깐'의 형태에서 알 수 있듯이 대나무 빨대로 술을 마셨다는 것은 술이 완전히 발효되면 그 찌꺼기(쌀이나 보리 등)가 가라앉기 때문에 완전 발효되지 않도록 도정이 잘 되지 않은 곡물을 사용하여 쌀이나 보리 등이 액체 위로 떠서 형성이 되는 형태로 만들어졌음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술의 형태는 중국 윈난 성 동파족의 상형문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확실히 동아시아권에서 이러한 형태가 과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빚어졌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은 이렇게 우리의 전통주가 탄생하고 술의 형태가 발전되기까지의 기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다음 편은 우리 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조선시대 술 이야기와 암흑기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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