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전 의원 탈당
재심 5개월째 결론 못 내
생각이 다름 포용 못 해
내로남불 상시적
칼슈미트 인용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1일 아침 6시 금태섭 전 의원은 고심 끝에 페이스북을 통해 탈당 의사를 밝혔다. 사실 금 전 의원이 4.15 총선에서 공천 탈락을 하고 6월초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경고” 징계를 받았을 때부터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경고는 가벼운 징계 수위가 맞다. 하지만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표결에 기권표를 던졌다는 명분으로 경고 처분을 내렸다는 것은 앞으로 당내에서 공천 전망 등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금 전 의원은 거대 기득권이 된 민주당의 상시적 내로남불과 진영논리를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에서 소장파 그룹 및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등 당내 개혁 세력이 존재해왔다. 그들의 자리가 사라졌던 타이밍과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시점상 일치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엄혹한 민주당 기득권 시대에도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가 있었다. 하지만 금 전 의원은 떠났고 김해영 전 의원은 총선에서 낙선한 뒤 최고위원 임기까지 끝났다. 조응천 의원과 박용진 의원은 여전히 쓴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당원들의 강렬한 비난에 직면해 있고 뭔가 역부족이다.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한 금태섭 전 의원. (사진=연합뉴스)

금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며 “국민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서슴지 않는 것은 김대중이 이끌던 민주당, 노무현이 이끌던 민주당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이어 “다른 무엇보다 편 가르기로 국민들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나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는 오만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일갈했다.

그래서 금 전 의원은 “마지막 항의의 뜻으로 충정과 진심을 담아 탈당계를 낸다”고 결론을 맺었다. 

금 전 의원만 그런 위기의식을 느낀 것은 아니다. 총선 직전에 이철희·표창원 전 의원도 진영논리에 휩쓸려서 편에 따라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신물을 느껴 불출마를 선언했다. 

금 전 의원은 “우리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상대방에게는 가혹한 내로남불. 이전에 했던 주장을 아무런 해명이나 설명없이 뻔뻔스럽게 바꾸는 말 뒤집기의 행태가 나타난다”며 “우리는 항상 옳고 우리는 항상 이겨야 하기 때문에 원칙을 저버리고 일관성을 지키지 않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긴다”고 비판했다. 

글의 대부분은 이런 식의 진영논리 성토에 할애됐다.

금 전 의원은 “건강한 비판이나 자기 반성은 내부 총질로 몰리고 입을 막기 위한 문자 폭탄과 악플의 좌표가 찍힌다”며 “여야 대치의 와중에 격해지는 지지자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당의 지도적 위치에 계신 분들마저 양념이니 에너지니 하면서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눈치를 보고 정치적 유불리만을 계산하는 모습에는 절망했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나의 책임도 크다. 정치적 불리함과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비난을 감수하고 해야 할 말을 하면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당이 나아가는 방향을 승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민주당 의원총회에 금 전 의원이 참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 전 의원은 독일의 정치학자 칼 슈미트의 발언까지 인용하면서 민주당에 쓴소리를 했다.

금 전 의원은 “(칼 슈미트는)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얼핏 보기에 영리한 말을 했지만 그런 영리한 생각이 결국 약자에 대한 극단적 탄압인 홀로코스트와 다수의 횡포인 파시즘으로 이어졌다”며 “우리 사회가 그렇게까지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집권여당이 비판적인 국민들을 토착왜구로 취급한다면 민주주의와 공동체 의식이 훼손되고 정치에 대한 냉소가 더욱더 판을 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정치는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 아니다. 우리 편이 20년 집권하는 것 자체가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도 없다. 공공선을 추구하고 우리 사회를 한 단계씩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이 한 일이라도 옳은 것은 받아들이고 스스로 잘못한 것은 반성하면서 합의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나갈 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징계 처분에 재심을 청구한 것이 5개월 넘게 결론을 못 내고 있는 사실 자체에도 불만이 크다.

금 전 의원은 “공수처 당론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고 재심을 청구한지 5개월이 지났다. 당 지도부가 바뀐 지도 두 달이 지났다. 그간 윤리위 회의도 여러 차례 열렸다. 하지만 민주당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합리적인 토론도 없었다.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사실 친노무현계 좌장으로 불린 이해찬 전 대표는 강성 친문재인계 그룹의 에너지로 당을 이끌어왔기 때문에 금 전 의원 구제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문재인계 이낙연 대표까지 유력 대권주자의 지위로 금 전 의원 구제에 나서지 않은 것은 결정타가 됐을 거다. 금 전 의원은 더 이상 민주당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금 전 의원은 “1987년 대선 때 생애 첫 선거를 맞아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한 이래 계속 지지해왔고 6년 전 당원으로 가입해서 대변인과 전략기획위원장 등 당직을 맡아 나름 기여하려고 노력했던 당을 이렇게 떠나게 됐다”며 “민주당이 예전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활기를 되찾고 상식과 이성이 살아 숨 쉬는 좋은 정당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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