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보궐선거 공천 결정
친문재인계 그룹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
약속 파기 비판 수습
31일 당헌 개정 투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사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생각은 답정너였던 것 같다. 민심에 예민하고 정파적 이익이 노출되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이 이 대표지만 보궐선거 공천 문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낙연 대표는 내년 보궐선거에서 공천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대표는 지난 7월 당권 출마를 공식화할 때부터 보궐선거(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무공천 여부를 고민해왔다. 기자들이 반복해서 질문하거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무공천 당헌을 지켜야 한다(7월20일)는 취지로 발언했을 때도 벌써부터 긁어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데드라인을 걸어놓은 노코멘트였다. 그러나 이 지사가 호기롭게 무공천 주장을 했다가 거세게 비판을 받는 모습을 보며 이 대표는 일찌감치 생각을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 정치는 어떤가. 안 믿는다. 또 거짓말하는구나. 그런데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그렇게 말도 아니고 규정으로 무슨 중대한 비리 혐의로 이렇게 될 경우에는 공천하지 않겠다고 써놨지 않는가”라며 “그러면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이걸(성범죄) 중대 비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나는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공천하지 않는 게 맞다”고 밝혔었다.

이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이 지사는 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오해가 있다”면서 생각과 주장을 분리해야 한다는 괴상한 논리로 친문재인계 지지그룹의 열을 달래려고 노력했다. 결국 대권에 성공하려면 1차적으로 민주당 당원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2022년 대선 민주당 경선이 가장 중요하다.

이 지사는 7월24일 방송된 딴지방송국 <다스뵈이다>에 출연해서 친문 총사령관으로 평가받는 김어준 총수가 시키는대로 “(무공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 잘못했다”를 연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무공천론을 주장했다가 거둬들였다. (캡처사진=딴지방송국)

이 대표와 이 지사는 마치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민주당 내에서 대권 선두를 놓고 치열하게 겨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전체 대권 주자 레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전체 대권 레이스(여론조사 흐름)에서 압도적인 선두 주자다. 그렇기 때문에 대권 경선에서 이기려면 친문 정서가 강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미움을 사지 않아야 한다. 

국민의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부산시장 선거는 민주당이 차지하기 어렵다는 것이 객관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서울시장은 다르다. 민주당은 보수정당이 차지하고 있던 서울시를 2011년 보궐선거에서 교체시킨 뒤부터 지금의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믿고 있다. 반대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실패로 사퇴를 한 직후부터 보수의 몰락이 앞당겨졌다. 민주당은 박원순 서울시정 9년 이후에도 서울시장을 절대 놓칠 수 없다. 방심할 수도 없다. 

이미 보수 야권에서는 서울시장 하마평이 매우 활발해지고 있는데 민주당에서는 무공천 당헌 문제가 미정 상태라 스스로 도전하고 싶은 인물들(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우상호 의원/박주민 의원)은 아직까지 타이밍만 보고 있다. 그래서 이 대표는 11월부터 보궐선거 경쟁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당헌 개정을 밀어붙이는 것으로 읽혀진다.

민주당의 당헌은 자당의 귀책 사유로 보궐선거가 치러졌을 경우 무공천을 해야 한다(당헌 96조 2항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하지만 당헌은 바꾸면 그만이다. 다만 욕을 먹어야 한다. 국힘의 맹비난은 상수이고 언론과 일반 국민들의 쓴소리도 감수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공천을 위해 전당원투표를 선택한 이 대표. (사진=연합뉴스)

그 비난 여론을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29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글을 올리고 “동료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정정순 의원), 제명(김홍걸 의원), 탈당(이상직 의원), 당원권 정지에 이어 또... 착잡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책임 정치의 구현은 그렇게 아프고 어렵다”며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관련한 당헌 개정 여부를 전당원투표에 부쳐 결정하기로 했다. 후보를 내려면 당헌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후보를 내고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있는 공당의 도리라고 판단하게 됐다”며 “서울·부산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 특히 피해 여성께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날 13시에 열린 정책 의원총회에서 좀 더 자세하게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낼 것인지에 대해 당 안팎의 의견을 들어 늦기 전에 책임 있게 결정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 그 결정의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다”며 “서울과 부산은 저희 당 소속 시장의 잘못으로 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됐다. 당헌에 따르면 그 두 곳의 시장 보궐선거에 저희 당은 후보를 내기 어렵다. 그에 대해 오랫동안 당 안팎의 의견을 폭넓게 들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 결과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있는 선택은 아니”라며 “당헌에 그런 규정을 도입한 순수한 의도와 달리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유권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오전 최고위원회의의 동의를 얻어 후보 추천의 길을 열 수 있는 당헌 개정 여부를 전당원투표에 붙여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진행될 전당원투표 기간은 31일 10시부터 11월1일 18시까지다. 당헌 96조 2항에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하는 설문조사를 한다고 보면 된다. 그 뒤로는 권리당원·대의원 온라인투표를 진행하고, 당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에서 의결하고, 11월 내에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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