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반려
재신임
주요 경제정책에 왜 흥분
스스로는 무기력했을 듯
처음부터 정책 결정권은 선출직에
재정적 어드바이스만 해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정권의 성공 여부는 결국 경제에 달렸다. 경제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입장에서 매일 매일 어깨에 벽돌을 얹고 있는 기분으로 근무했을 것이다. 그런 중압감과 부담감이 컸는지 홍 부총리가 사의를 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반려했다. 청와대는 재신임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가 3일 오후 문 대통령에게 사표를 냈으나 수리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14시45분 즈음 속보로 타전됐는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홍 부총리가 직접 알렸다. 문 대통령은 오전 국무회의를 끝내고 홍 부총리와 독대했고 사표를 반려하기로 결정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3일 사의를 표명했다. (사진=연합뉴스)

기재위 회의에서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이 반려했다는 소식을 들었냐”고 질문했고 홍 부총리는 “국회에 오느라 듣지 못 했다”며 “후임자가 올 때까지 마지막 날까지 책임을 다해 직을 수행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4일 새벽에 출고된 민주당 핵심 관계자발 중앙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하면서 이런 사실을 공개해도 좋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홍 부총리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다. 문 대통령이 홍 부총리를 신뢰한다”는 설명이다.

코로나 시국 11개월차 일반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거시경제 지표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즉 “코로나19로 어려운 국면에서 홍 부총리가 경제 지표 반등을 이끌었는데 그러면 이걸 계속 이어나가야 되지 않느냐는 차원에서 (문 대통령이) 앞으로의 역할을 종합해서 재신임을 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정부부처 18개 중에서 기획재정부를 담당하는 경제부총리는 가장 중요하다. 경제정책 집행권을 갖고 있는 경제 컨트롤타워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홍 부총리는 재정건전성을 골자로 보수적인 경제 가치관을 고수해왔다. 당정청이 있다면 관료 출신이 가장 많이 포진돼 있는 ‘정’이 제일 보수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 면에서 개혁적이라고 볼 수 없으나 정무직 인사들은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홍 부총리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34년간 정통 경제관료로 살아왔다. 문재인 정부 안에서 내적 갈등이 극심했을 것이다. 전임자였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정통 경제관료로서 마찬가지였다.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그동안 혼선을 일으켜서 송구스럽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는 홍 부총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직접적으로 홍 부총리는 주식 양도소득세 강화 문제에서 또 다시 자기 소신이 꺾이는 것에 대해 무력감을 드러냈다. 기재부는 대주주 여부 판단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춰서 좀 더 강화하자는 입장이지만 청와대와 민주당은 현행 10억원을 유지하길 원한다. 

이와 관련 기재위에서 정일영 민주당 의원이 질문을 하자 홍 부총리는 “나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일단 현행 10억원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최근 2개월간 갑론을박이 있었던 상황에서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싶어서 내가 오늘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돈쓸 일이 많은 상황이다. 홍 부총리는 조금이라도 세수를 늘리기 위해 3억원 대원칙을 고수했지만 당청의 입김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당정청 회의에서 10억원이 결정됐음에도 홍 부총리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을 정치적인 액션으로 해석하자 홍 부총리는 “나한테는 정치라는 단어가 접목될 수 없다. (기준 강화 방침을 세웠던 기재부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10억원으로 갑니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현행 유지에 대해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내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며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사표를 내는 것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굉장히 숙고해서 그런 입장을 얘기했고 내가 그냥 지나가기에는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오히려 책임있는 자태라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결국 수리되지도 않았고 경기 회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면피용 각본 아니냐는 식으로 따졌고 홍 부총리는 “그렇게 말씀하는 것은 나에 대한 지나친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사진=연합뉴스)
홍 부총리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무력감을 느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어떻게 보면 경제정책으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은 대통령과 여당에 있는 것이 맞다. 국민의 의사로 선출된 자리이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곳간지기로서 이런 정책을 추진했을 때는 예산이 얼마가 들고 저런 정책을 추진했을 때는 재정건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계산기를 두드려서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그동안 △긴급재난지원금 전국민 100% 지급 끈질기게 반대 △보편적인 현금 지원으로 대표되는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조차 섣부르다고 발언 △재정건전성 논리에 따라 매번 추경(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회의적인 입장 △여야의 부정적인 입장에도 재정준칙 마련 등 나름의 소신을 피력해왔고 그때마다 당청과 갈등관계를 형성했다. 궁극적으로 홍 부총리의 뜻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홍 부총리 입장에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민주당에 주요 결정권이 집중돼 있어서 홍 부총리가 반발할 수밖에 없고 그런 것이 문제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경제관료는 선출된 정무직의 방침을 받들어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적합하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6월2일 기자와 만나 “우리 복지 예산이 얼마가 됐든 그걸 보편적 복지에 사용하든 기본소득으로 사용하든 그 부분에 대한 결정은 홍 부총리의 관할 영역이 아니다. 근데 우리가 자꾸 헷갈려 한다”며 “(기재부 수장으로서) 재정건전성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재정건전성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하면 될 문제지 지출을 어떻게 할 것이냐 즉 기본소득으로 갈 것이냐 보편적 복지로 갈 것이냐 선별적 복지로 갈 것이냐는 경제부총리의 영역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 부총리의 태도만 봐도) 한국이 관료 국가라는 것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건데 국민과 언론이 좀 문제가 있다. 네가 뭔데? 이런 반응이 있어야 한다. 당신(홍 부총리)은 이런 복지 정책을 펼치면 곳간이 몇 년안에 몇 퍼센트 소요된다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며 “그런 관점에서의 대책은 있어야 한다. 다만 복지 정책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홍 부총리가 뭐라고 언급할 게 아니라 선출직 책임자인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조정훈 의원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두고 보편이냐 선별이냐 논란이 거세다가 보편쪽으로 기울었을 때 홍 부총리는 끈질기게 선별론을 고수했는데 오죽하면 정세균 국무총리는 “여기가 기재부의 나라냐?”(4월22일 국정현안조정회의)고 질책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예산권을 청와대로 가져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최고 선출 권력이고 임명된 권력은 선출 권력을 절대 넘어설 수 없다. 그게 민주주의”라며 “지금의 체계에서 예산권이 좀 더 선출 권력으로 가야 한다. 왜냐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처음부터 예산권을 백악관이 쥐고 있지 않았다. 관료 집단이 대통령의 뜻에 맞지 않게 너무 저항하니까 하루 아침에 백악관으로 갖고 왔는데 다들 미국 망한다고 했다. 미국 안 망했다. 의회주의와 중앙은행이 버티고 조정자 역할을 한다”고 환기했다. 

조 의원이 봤을 때 홍 부총리의 역할은 문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서를 올리고, 조언을 하고, 집행을 하는 역할에 국한돼야 한다. 

실제 국가재정법 11조1항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은 “예산과 결산 및 기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나아가 각 부처 장관이나 자치단체장이 얼마 이상의 재정 지출이 들어가는 공공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재부 장관에게 사전 보고를 해야 하고 협의도 해야 한다. 그래서 국정 최고책임자는 대통령이지만 숨은 실세는 부총리라는 말이 있다. 

홍 부총리가 고뇌를 거듭하다가 사표를 낸 것은 어찌보면 경제관료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어차피 이런 상황까지 온 마당에 곧 후임자가 물색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홍 부총리가 남은 시간동안 경제정책 결정권에는 관심을 끊고 재정적 어드바이스만 해주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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