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울산 롯데정밀화학 공장 찾은 신동빈의 속내
전기차 배터리 등 모빌리티 관련 미래 먹거리에 초미의 관심
“지속가능 성장 위한 경쟁력 강화·적극적 투자” 주문
경영행보 재개하면서 불확실성 타파하는 쇄신인사 단행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롯데그룹)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장고에 빠졌던 신동빈 회장이 기지개를 펴며 경영행보를 재개했다. 

지난 25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비공개 회동 후 다음날인 오늘 불확실성을 타파하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를 위한 쇄신인사를 단행했다.

@ 귀국 후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 내 롯데정밀화학 공장 찾아

신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등으로 인한 불확성을 타파하고 미래와 지속가능한경영을 위해 사업체질 개선과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신 회장이 지난달 중순 일본에서 귀국 후 첫 현장경영으로 찾은 곳은 울산에 있는 석유화학공업단지 내 롯데정밀화학 공장이다. 

이는 유통, 호텔, 식품 등이 주력인 롯데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친환경 고부가가치 소재 분야에 대한 개발과 투자에 속도를 내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지난 19일 롯데지주에 따르면 신 회장은 전날 18일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 내 롯데정밀화학 공장을 방문해 공장 현황을 보고받고 생산 설비를 둘러봤다.

이번 방문에는 김교현 롯데그룹 화학BU장, 정경문 롯데정밀화학 대표 등이 동행했다.

신 회장은 롯데정밀화학 공장을 방문해 울산 공장 현황을 보고 받고 생산 설비를 직접 둘러봤다. 신 회장의 이번 울산 현장 시찰을 지난달 중순 귀국한 이후 첫 공식 행보다.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은 126만㎡ 규모 부지 내 10개 공장에서 에폭시수지원료(ECH), 메셀로스 등 37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 제품의 전체 생산량 중 90%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신 회장이 롯데정밀화학의 생산현장을 방문한 것은 2016년 삼성그룹의 화학부문(삼성SDI 케미칼 사업부문,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3조원에 인수한 이후 처음이다. 당시 롯데의 삼성화학 부문 인수는 국내 화학업계 최대 빅딜이었다. 롯데그룹으로서도 창립 이래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롯데정밀화학은 친환경 소재인 셀룰로스 계열 제품 생산 공장 증설을 잇달아 추진하고, 디젤 차량 배기가스 저감제인 유록스 개발 및 판매를 강화하는 등 친환경 고부가가치 소재 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전지박 제조사인 두산솔루스 지분 인수에 나섰다.

신 회장은 이번 방문 때 “코로나19와 기후변화 등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쟁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며 친환경적인 고부가가치 소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선제적인 안전관리를 당부했다.

신 회장은 지난 19일 석유화학공업단지 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공장과 설비를 증설하고 있는 롯데케미칼과 롯데BP화학 생산 현장을 둘러봤다. 또 롯데백화점 울산점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코로나19로 지친 직원들을 격려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 현장경영 행보 (사진=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정밀화학 울산공장 현장경영 행보 (사진=롯데그룹)

@ 모빌리티 관련 미래 먹거리에 초미의 관심

신 회장이 롯데정밀화학에 관심 두는 이유는 전기차 배터리 등 모빌리티 관련 미래 먹거리확보를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정밀화학은 그린소재인 셀룰로스 계열 제품에 18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1150억원 규모의 건축용 첨가제 메셀로스 공장을 증설하고, 239억원 규모의 식의약용 제품 ‘애니코트’ 공장(인천) 증설을 완료한다. 

2022년 상반기에는 370억원 규모의 식의약용 제품 추가 증설을 완료할 계획이다.

친환경 촉매제인 요소수 브랜드 ‘유록스’ 개발도 강화하고 있다. 요소수는 디젤차의 SCR(선택적 촉매 환원) 시스템에 쓰이는 촉매제로 배기가스의 미세먼지 원인 물질 중 하나인 질소산화물(NOx)을 제거해 대기환경 개선에 큰 도움을 준다. 

유록스는 요소수 시장점유율 50%를 유지하며, 12년 연속 국내 판매 1위(환경부 집계 자료 기준)를 지키고 있다.

최근 들어선 글로벌 스페셜티 케미칼 전문기업을 목표로 관련 투자를 확대해나가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되는 동박·전지박 제조사인 두산솔루스 지분 인수를 위해 사모투자합자회사에 2900억원을 출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생산성을 제고하고 공정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도 적극 추진 중이다. 

무선 통신 기반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 원격제어 및 안전관리가 가능한 사업장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드론, 로봇, 증강현실(AR) 글래스, 인공지능(AI), 지능형 CCTV 등을 도입해 업무·제어·설비의 자동화를 이룰 예정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케미칼, 롯데BP화학도 생산설비 증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화학 3사간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말 울산공장 PIA(고순도이소프탈산) 설비 증설에 500억원을 투자하며 고부가 제품 일류화를 추진하고 있다. 

PIA 는 PET, 도료, 불포화 수지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고부가 제품이다. 롯데케미칼의 PIA연간 생산량은 52만톤으로 글로벌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롯데BP화학 또한 1800억원을 투자해 초산과 초산비닐 생산공장을 증설했다.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생산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  (사진=연합)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 (사진=연합)

@ 신동빈-정의선, 롯데케미칼서 비공개 회동…차 신소재 둘러봐

신 회장이 지난 25일 롯데케미칼의왕사업장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전격적으로 만났다.

신 회장과 정 회장의 만남은 지난해 6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부총리와 합동 간담회 이후 5개월 만이다. 정 회장이 롯데케미칼 사업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회장과 정 회장은 이날 오후 4시경 롯데케미칼 의왕사업장에 도착해 40여 분간 회동을 가졌다. 이영준 롯데케미칼 첨단소재사업 대표가 두 총수를 맞았다. 이들은 제품 전시관에 이어 소재 디자인 연구센터를 둘러봤다.

업계에선 롯데케미칼이 첨단 소재개발을 신성장 동력으로 두고 있는 만큼, 양사가 미래 차 관련 분야에 대한 협력을 논의했을 거란 추측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와 수소차의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선 배터리 외에도 내·외장재 경량화를 통해 차량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데, 정 회장이 이 부분에 역량이 있는 롯데케미칼에 첨단 플라스틱 소재 협력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미래 차 분야를 신성장 동력으로 두고 모빌리티 소재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고부가합성수지(ABS)와 폴리프로필렌(PP) 제품, 폴리카보네이트(PC) 등 고기능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비롯해 분리막 소재 설비 강화 등 배터리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월엔 모빌리티 사업 육성을 위해 현대차를 포함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현장경영 (사진=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현장경영 (사진=롯데그룹)

@ 불확실성 타파하기 위한 쇄신 인사 단행

한편, 롯데는 글로벌 환경이나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성을 타파하기 위해 최근 기업들이 한 달가량 앞선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신 회장이 지난 8월 ‘깜짝 인사’에 이은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인적 쇄신에 나섰다. 혁신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란 게 재계의 평가다. 이번 인사로 50대 초반의 최고경영자(CEO)가 롯데그룹 전면에 대거 배치됐다.

롯데그룹은 26일 롯데지주를 비롯해 유통·식품·화학·호텔 부문 35개 계열사의 2021년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임원인사는 예년보다 약 한달 가량 앞당겨 실시됐다.

코로나19 등으로 국내외 경영환경 불확실성 확대 속 내년도 경영계획을 조기 확정하고 실천하기 위한 조치라고 롯데그룹은 전했다.

이번 인사로 그룹의 4개 사업 부분(BU·비즈니스유닛) 중 식품 BU장이 교체됐다. 롯데그룹의 식품 분야를 이끈 이영호 사장이 후배들을 위해 일선에서 용퇴했다. 신임 식품BU장에는 이영구 롯데칠성음료 대표가 사장으로 승진하며 보임했다.

이영구 사장은 1987년 롯데칠성음료에 입사해 롯데알미늄, 그룹 감사실 등을 거쳤다. 2009년부터 롯데칠성음료 전략부문장과 마케팅부문장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롯데칠성음료 대표를, 2020년에는 음료와 주류 부문을 통합해 대표를 맡았다.

롯데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지주사 롯데지주의 실장도 일부 변화가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실장으로 롯데건설의 고수찬 부사장이 승진 보임했다. 

준법경영실장으로는 컴플라이언스 강화를 위해 검사 출신 박은재 변호사를 부사장 직급으로 영입했다. 롯데지주는 최근 2년 사이 6개실 수장을 모두 교체하게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롯데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중앙뉴스DB)

@ 50대 초반 젊은 임원들 대표이사로 대거 등용

이번 임원인사에서는 50대 초반의 젊은 임원들을 대표이사로 대거 등용했다. 시장 수요를 빠르게 파악하고, 신성장동력을 적극적으로 발굴해낼 수 있는 젊은 경영자를 전진 배치해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롯데칠성음료의 신임 대표로는 50세의 박윤기 경영전략부문장이 전무로 승진하며 내정됐다. 롯데네슬레 대표였던 강성현 전무는 50세로 롯데마트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롯데푸드 대표에는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을 역임한 51세 이진성 부사장이 배치됐다.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이사에는 LC USA 대표이사였던 52세 황진구 부사장이 승진 내정됐다.

신임 롯데지알에스 대표이사에 내정된 롯데지주 경영개선팀장 차우철 전무와 롯데정보통신 대표이사로 보임하는 DT사업본부장 노준형 전무도 52세다. 

롯데미래전략연구소에는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대표 임병연 부사장이, 부산롯데호텔 대표에는 호텔롯데 국내영업본부장 서정곤 전무가 내정됐다. 

LC USA 대표이사에는 손태운 전무가 내부 승진했고, LC 타이탄 대표이사에는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생산본부장 박현철 전무, 롯데베르살리스 대표이사에는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안전환경부문장 황대식 상무가 각각 내정됐다. 롯데네슬레 대표이사에는 롯데칠성음료 글로벌본부장 김태현 상무가 내정됐다.

글로벌 임원 확대도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롯데제과 파키스탄 콜손 법인의 카얌 라즈풋 법인장을 신규 임원으로 선임했다. 

롯데그룹은 이번 임원인사로 임원 직제 슬림화도 단행했다. 철저한 성과주의에 입각한 인사를 실시, 승진 및 신임 임원 수를 지난해 대비 80% 수준으로 대폭 줄였다는 설명이다. 

임원 직급단계는 기존 6단계에서 5단계로 줄였다. 직급별 승진 연한도 축소 또는 폐지했다. 이는 젊고 우수한 인재들을 조기에 CEO로 적극 배치하기 위한 조치라고 롯데그룹은 전했다. 

이번 조치로 부사장 직급의 승진 연한이 폐지돼 1년 만에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게 됐다. 기존 상무보A와 상무보B 2개 직급은 ‘상무보’ 직급으로 통합했다. 신임 임원이 사장으로 승진하기까지는 그동안 13년이 걸렸지만, 이번 직제 개편을 통해 승진 가능 시기가 대폭 앞당겨졌다.

앞서 롯데그룹은 지난 8월 창사 이후 처음으로 비정기 인사를 단행하며 변화를 위한 의지를 보인바 있다. 당시 황각규 부회장이 용퇴하고 롯데지주 경영혁신실 임원이 전체 교체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계 5대그룹 중에서 롯데그룹은 코로나19 직격탄을 입었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인사를 통해 그동안 쇄신 의지를 다시 한 번 피력하고 조직에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불확실성을 타파하기 위해 쇄신 인사를 단행한 신 회장은 1955년 2월14일 일본 도쿄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일본 롯데상사 이사로 입사했다.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국 롯데그룹에 발을 내디뎠다.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과 부회장을 거쳐 회장으로 취임했다. 예절을 중시하며 인간미 넘치는 성격의 소유자며, 임직원들의 신망이 두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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