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프우물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인간을 비롯한 산천초목에게도 물은 생명이다. 노자는 물의 중요성에 대해 도덕경 8장을 통해 말하고 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물은 맛을 지니지 않았지만 수평, 공평을 유지한다고 보았다. 지혜의 말씀이다.

물은 또한 아주 작은 구덩이라도 채우고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래서 완전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물은 상황에 따라 변하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은유하고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아래로 흐르면서 낮은 곳을 적셔준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낮은 데로 조용히 흐른다. 결국 인간 세상에 위대한 선은 물과 같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삶을 추구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리라.

내가 어릴 때는 땅을 30m만 파면 물이 나왔다. 펌프를 땅에 박으면 시원하고 깨끗한 물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사는 자연 속에 물이 사라지고 있다. 시냇물 하상에도 시멘트를 깔아놓은 때문이라 본다. 그러니 땅으로 물이 스미지 않아 물이 나지 않는다고...

더군다나 농민들이 너도나도 농사에 댈 물을 구하기 위해 지하수를 파대면서, 솟아날 물이 없게 되었다. 오죽하면 선조들은 우리한테 이런 속담을 남겼나. “물 쓰듯 한다.” 그렇다. 우리는 변명할 여지가 없다. 수맥을 뚫으면 물이 퐁퐁 솟겠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1950년대, 동네 공동 우물에서 발전되어 집집마다 마당에 펌프를 설치하면서, 물을 쉽게 끌어다 썼다. 그래서인지 물의 귀중함을 크게 느끼지 않고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 농촌에도 비 내리는 여름을 제외하곤 논밭에 줄 물이 부족한 상황이다.

물은 최고의 선이었다고 노자가 갈파한 교훈이 이제사 새삼 되새겨진다. 사라진 펌프를 시골집에서 발견하면 잃었던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어린 날, 마을의 개구쟁이들과 발가벗고 시냇가에서 헤엄치던 그 시절의 그곳은 이제, 가축의 분뇨와 주방의 세척물이 여과 없이 흐르는 곳이 되었다.

그 물은 흐르고 흘러 강으로 바다로, 점점 세상에 번져갔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바르게 흘러가고 있을까? 인간이 자연 속에 잘 사는 방법은 노자 선생의 말씀대로 ‘상선약수’인 것이 아닐까? 오늘따라 문득 젊은 시절에 습작한 시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가보고 싶다
물의 시원을
초롱산 옹달샘에서 발원했는데

흐르고 흘러 구절양장 되었구나
산천을 적시고 적시면서
흐르고 흐르면서 젖줄이 되었구려

이제는 비단강이라는 예당에 모여
이생과 저 생 가족들 다 모였구먼
여름날 사돈네 팔촌까지 모여
천렵하던 그때의 기억
아담과 이브처럼 홀딱 벗었지
상선약수 이렇게 살기로 했지
아아, 무한천 비단 호수라네

해마다 물이 줄어든다. 돌샘을 빼놓곤 개울이나 시냇물이 자꾸자꾸 줄어든다. 이제는 물 부족 국가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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