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 펴낸 권애숙 시인

사진 / 권애숙 시인 제공
사진 / 권애숙 시인 제공

 

유쾌한 골짜기

권애숙

 

꽃들이 우르르르르 쏟아지네

 

와,

꽃눈이다

꽃비다

사라지는 꽃청춘이다

 

사람들이 지는 꽃들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흐른다

 

올 때도 갈 때도 세상을 흔드는 꽃이란 이름

 

꽃 같은 인연으로 꽃자리에 들어

물든 당신

물들이는 당신

 

사랑도 이별도 찬란한 꽃능선이네

 

생사의 골짜기 젖은 그림자의 안쪽까지

유쾌한 꽃관이네

 

                                                 - 권애숙 시집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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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 캐롤송 하나 들리지 않는다. 루돌프도, 스크루우지 영감도, 종소리도 없는, 다만 폰에서 재난 알림음만 무성한 날이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어떤 지점을 지나가는 중일까? 나, 어느 시절 어느 골짜기 향기롭던 날 있었던가? 세상이 온통 꽃이던, 그 유쾌한 꽃관, 꽃자리에 물들던 그런 한 때가 내게도 있어 어쩌면 꽃다운 그 추억의 힘으로 예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꿈속처럼 꽃비 쏟아지는 황홀경의 어느 꽃능선에 나도 따라가 서본다. 문자로 묘사해낸 완벽한 그림이다. 독자로 하여금 꽃빛으로 물들게 하는 매력적인 시다. 이런 그림 한 장 가슴에 두고 사는 이, 결코 건조한 삶이 아닐 것이다. 시는 꽃이구나! 그 내음 맡을수록 물씬물씬 향기로워 시가 꽃이라는 것을 재삼 확인한다. 눈부신 꽃! 꽃이면 된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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