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예나 지금이나 집을 떠나 밖에서 먹게 되는 도시락은 맛이 있다. 어머니가 정성들여 만들어주신 도시락이기 때문이다.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의 가난…….

가난 속에서도 소풍날의 도시락 꼭대기에 앉혀 주셨던 계란 부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맛이었다.  또한 장항선 기차에서 팔던 ‘뜨끈뜨끈한 도시락’은 차게 식기 일쑤였지만, 신김치와 노란 다꾸앙(단무지) 몇 조각이 반찬의 전부였지만 그게 그렇게 맛있는 도시락밥이었다.

하지만 플라스틱 보온밥통이 등장하고 인기를 휩쓸게 되자, 보온밥통보다 빨리 식어버리는 도시락은 우리 주변에서 차츰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 더욱더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콩자반 한 가지라도/ 도시락밥은 맛있고/ 훌훌 국물 없어도/ 도시락밥은 맛있고…

이 동시는 우리 고장 예산에서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셨던 흰 모래 이희철 선생의 작품이다. 이런 도시락을 사용한 우리 세대에게는 그리운 추억이 있다. 양은 사각 도시락이 그것이다. 당시 학교에 갈 때는 도시락을 지참해야 했다.

따뜻한 도시락도 금방 식어버리곤 하는 추운 겨울이면 교실 난로에는 도시락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당시 우리는 조개탄 난로를 땠는데, 나무 불쏘시개를 넣고 불을 지펴야 했다. 처음 불을 붙이면 시커먼 연기가 마치 전쟁터의 연막탄 포화처럼 진동했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소매에 문지른 우리들… 그때 100℃가까운 무쇠난로에 두부모 같은 사각 도시락이 사십에서 많게는 오십 개가 덤블링 하듯 난로 위에 쌓이곤 했다.

이 같은 모습은 추운 겨울 교실 점심시간의 진풍경이었다. 밑에서 데웠던 도시락을 서둘러 꺼내지 못하면 누렇게 된 누룽지 도시락이 되거나 너무 타는 경우에는 점심을 굶는 사례도 왕왕 있었다.

지금처럼 편리한 집게나 손 장갑이 있었다면 속히 도시락을 꺼낼 수가 있었을 것이지만, 당시 그때 그 시절 목장갑 조차도 어디 있었겠는가…….맨손에 덜렁대고 인내심을 뽐내던 개구쟁이가 도시락을 꺼내다가 폭삭 엎어뜨리는 것 또한 실수였지만 우리들은 하하… 교실 안이 떠나갈 듯 웃어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락 통에 보온 기능이 추가되고, 더 좋은 소재의 도시락이 발달하면서 멀리까지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한숨 줄게 되었다.

물론 빈 도시락을 책보에 싸 어깨에 메고 피고 지는 들꽃이 풍년이었던 소로길을 내달릴 때마다 함께 덜그럭 거렸던 소리가 없어졌지만 말이다. 이제는 그 모든 게 그립고도 정겨운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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