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이 간직한 보따리에서 탄생한 고현주의 두 번째 4·3 사진집
4·3 사진집 '기억의 목소리Ⅱ' 작업 배경...사물 속에 살아 숨 쉬는 제주 여성의 역사
작가는 4·3 사진집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중앙뉴스=윤장섭 기자]고현주 사진작가의 두 번째 4·3 사진집 '기억의 목소리 II'(Voice of Memories II)가 발간됐다. 부제는 '제주 여성의 보따리를 통해 본 제주 4·3과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다.

고현주 사진작가의 두 번째 4·3 사진집 '기억의 목소리 II'(Voice of Memories II)가 발간됐다.
고현주 사진작가의 두 번째 4·3 사진집 '기억의 목소리 II'(Voice of Memories II)가 발간됐다.

2019년 출간된 '기억의 목소리 I' 사진집이 20여명의 4·3 유가족 유품 사진과 글로 구성됐다면, 이번 작업은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는 한 제주여성의 4·3 기억과 삶을 그녀가 간직하고 있던 보따리 속 사물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230페이지가 넘는 이번 사진집의 사진과 사연 글은 유족 안순실(1946∼) 씨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됐다.

# 유족이 간직한 보따리에서 탄생한 스토리

고현주 작가의 두 번째 4·3 사진집은 유족의 보따리에서 탄생했다.

과거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민들은 살기 위해 죽음의 바다를 건넜다. 그들이 향한 곳은 제주가 아니면 어디든 상관하지 않았다. 목숨을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보따리 하나만을 의지한 채 일본으로, 부산으로, 타지로 홀연히 수많은 제주인들은 그렇게 제주를 떠났다.

애초, 고현주 작가의 두 번째 4·3 사진집 '기억의 목소리Ⅱ'는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디아스포라(diaspora)로 살고 있는 제주인들의 삶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발 우환 폐렴(코로나19)이 전세계로 확산 되면서 무산되었다.

다행스럽게 고 작가는 부산 영도에 살고 있는 안순실 유족을 수소문 끝에 만났다. 고현주는 그 유족이 간직하고 있었고, 궤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수많은 보따리 속 물건들을 통해 4·3의 기억과 삶의 일상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고현주는 그 유족이 간직하고 있었고, 궤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수많은 보따리 속 물건들을 통해 4·3의 기억과 삶의 일상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고현주는 그 유족이 간직하고 있었고, 궤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수많은 보따리 속 물건들을 통해 4·3의 기억과 삶의 일상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비녀, 염주, 엽서, 아버지의 사진, 시집올 때 챙겨온 혼수품, 버선, 첫 아이의 삼신상 위에 놓았던 멩실, 등 사소하다면 사소한 물건들이 보따리에 담겨있다. 하나의 보따리는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졌다. 

# 4·3 사진집 '기억의 목소리Ⅱ' 작업 배경

고현주 작가는 이번 사진집에 대해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어머니-시어머니-나에게로 전해진 몇 대를 거쳐 간직하고 있는 사물들 안에서 한 제주 여성의 역사가 당당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현주 작가는 ‘기억의 목소리’를 통해 지난 3년 동안‘사물을 통한 기억의 환기’라는 사진작업에 꾸준히 천착했다.

고 작가는 이번 작업의 배경에 대해“개인의 서사가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이 역사와 문화가 되는 시대”에 “개인의 서사가 낱낱이 새겨져 있는 사물은 그래서 중요하다... 모든 기록물 속에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보따리는 한국인에게 있어 각별한 의미를 갖는 상징적인 오브제이다. 보따리를 오브제로 끌어들인 이유에 대해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밝혔다. “방랑과 유랑, 이동의 상징물인 보따리는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했다. 등 뒤에 부착하면 책보가 되고, 아기를 싸면 아기 포대기가 되고, 이불을 싸면 이불보가 된다. 귀중하면 귀중한 대로, 하찮으면 하찮은 대로 보따리는 그렇게 우리 삶의 기억들을 아로새긴 채 등에, 손에, 머리 위에 몸의 한 부분처럼 있었던 것"이 보따리라고 말이다.

보따리는 한국인에게 있어 각별한 의미를 갖는 상징적인 오브제이다.
보따리는 한국인에게 있어 각별한 의미를 갖는 상징적인 오브제이다.

고 작가의 이번 4·3 사진집은 보따리의 상징성을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보따리의 실재 천 재질을 표지로 사용했고, 노랑, 분홍, 보라 등, 보따리의 형형색색은 책 내지 색감으로 살려, 어두웠던 과거를 딛고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길 바라는 작가의 심정을 담았다.  

# 작가는 4·3 사진집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작가는 4·3 사진집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작가는 4·3 사진집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백영경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서문에서“4·3의 기억에 살아 있는 사람의 온기를 입히려는 작가의 안간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따리 속에 차곡차곡 접혀 있는 옷가지가 잠든 기억이라면, 이를 꺼내서 만져보고 냄새 맡고 추억하다보면 지나간 시간들은 현재의 일부가 된다”고 평했다.

백 교수는 이어 이번 작업이 유품이 없는 망자들의 목소리는 물론, 목소리가 없는 유족들의 목소리까지 담아내길 바란다고 했다. 덧붙여 “한 번도 제대로 애도 받지 못한 사람들, 지금도 불안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고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작업으로 이어지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편 이번 고현주 작가의 두 번째 사진집인 4·3 사진집은 지난해에 이어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아 (사)제주국제화센터(대표 송정희)가 발행했다. 유족 인터뷰진행과 글은 문봉순 제주섬문화연구소 실장과 허은실 시인이 참여했고, 디자인의 제작과 편찬은 디웍스가 맡았다. 또한 각종 자료와 정보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다.

고현주 작가는“2019년 사진집이 발간된 이후, 지난해 서울과 독일, 미국 등지에서 전시와 세미나 일정이 잡혀있었으나 코로나로 아쉽게 취소되었다”고 했다. 고 작가는 향후 기억의 목소리 사진집 작업을 국.내외 전시로도 연계할 계획이다. 또한, 이번 사진집은 한글뿐 아니라, 영문으로도 번역돼 4·3 사진집을 해외로 알리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진집은 북콘서트와 작가와의 대화 등을 통해 곧 선보이게 된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