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1950년쯤에는 고을마다 술을 파는 주막이 있었다. 길 걷는 나그네가 목을 축이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숙박 시설이 바로 주막이었다. 초가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쳤지만 건성으로 만든, 울도 아니고 담도 아닌 그런 집이 주막이었다.

주막에서는 나그네들의 투전판이 벌어지거나 논다니들이 욕지걸이로 흥성한 밤이 이슥토록 시끄러웠다. 때로는 투전판에 소나 돼지 팔은 돈을 밑천으로 달려들었다가 눈깔이 뒤집어질 낭패도 여럿 연출되었던 곳이 바로 주막이다. 

주막에는 넉살좋은 주모가 술상을 들고 투기꾼 탄광덕대나 금광업자가 유숙하는 경우에는 술청에 퇴기로 물러난 여성들이 기방 여인처럼 짙은 얼굴을 한 채 나타나 눈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 눈웃음 속에 간사가 뻔히 숨겨져 있음에도 사내들은 부나방처럼 달려들곤 하였다.

한 순간의 정념에 아까운 재산을 단숨에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상이 요지경’이라는 말이 나온 것일 수도. 

주막은 이렇게 잡다한 여러 사람이 모여들었다. 길가에 속해 있으니 괴나리봇짐을 걸머진 삼남의 사내들이 오고갔다. 이 가운데 이름이 좋은 대흥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막이 하나 있었다. 과거를 보러 가는 호남의 길손이 임피, 군산 서천 보령 땅을 지나 예산에 이르러는 주막이었다.

예산 임존성(任存城)을 거치면 고귀한 임무를 맡게 된다는 소문에 근처 '연봉주막'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주막의 이름 또한 예사롭지 않았는데 봉, 연봉이란 대조(大朝, 100년을 산다는 새)를 뜻해, 입신양명의 꿈을 키워주었다. 주막거리에 나서면 사또, 대감, 현감의 송덕비와 추모비가 열지어 있어, 이 지역이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증명했다.

또한 이곳은 예산 대흥면과 광시면, 금마면 등 3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의 입구, 임존아문(任存衙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주막터는 사라졌고, 인걸(人傑)은 공직을 맡아 휘청대다가 유배를 떠났다. 그 중에는 당쟁의 끄나풀도 여럿이었다.

주막에서 알성급제(謁聖及第) 한 나그네가 묵었다던 연봉정은 동헌과 상거가 있었다. 관폐와 소문을 의식한 지혜이다. 동헌과 해우소는 멀수록 나그네 입은 벙글거린다. 주막이었지만 과거를 위해 떠나는 길손이 묵는 방에도 상서로운 입춘방이 붙어 있었다. 

건양다경(建陽多慶) ― 장원급제(壯元及第) ― 대대손손(代代孫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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