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나 시인
최한나 시인

 

겨울을 지우다

최한나


겨우내 깔고 자던 담요
세탁기에 돌린다
때리고 회오리치고 비틀어대며
물과의 악연을 미친 듯 부벼댄다
고단했던 긴 겨울이 하얗게 스러진다
추운 기억들이 거품 속에 지워진다
혈색 되찾은 하늘이
포근히 내려앉는 앞마당
회춘한 담요 한 장
말갛게 웃는다

---------------

열병같은 1년이 어찌 지났는지... 멍들고 상처가 남아도, 그래도 봄은 오나보다. 아니 옆에 와서 손 잡아주며 '봄이야'라며 속삭인다.

아, 춘삼월이다. 겨울 이부자리 성급히 꺼내 세탁기에 신나게 돌리고 창문 열고 먼지 털어내고 볼륨 한껏 높인 봄 왈츠곡에 걸레질도 새롭다.

살아야지, 이 봄도 반겨야지. 다시 일어나 꽃들의 노래에 귀 좀 열어야지. 겨우내 움츠린 새들은 어디 갔나? 이제 날아오려니.

코로나19쯤이야 세탁기에 돌려버리자. 세탁기 소리가 흥겨워지는 오늘, 오늘 여기에 집중한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