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차․SK․LG․한화․한진 등 줄이어…‘여성 이사 모시기’ 개정법까지 
‘여성 등기임원’ 내년 7월까지 둬야…CEO스코어, 한국 4.5%, 미국 30%
‘발등의 불’ 떨어진 기업들…자산 2조원 이상 기업 69% 여성 이사 없어

대기업 이사회에 여성 이사 1명 이상을 포함하도록 하는 개정 자본시장법 내년 8월 시행을 앞두고 주요 기업들이 앞 다퉈 '여성 이사 모시기'에 몰입하고 있다. (사진=김상미 기자)
대기업 이사회에 여성 이사 1명 이상을 포함하도록 하는 개정 자본시장법 내년 8월 시행을 앞두고 주요 기업들이 앞 다퉈 '여성 이사 모시기'에 몰입하고 있다. (사진=김상미 기자)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대기업 이사회에 여성 이사 1명 이상을 포함하도록 하는 개정 자본시장법 내년 8월 시행을 앞두고 주요 기업들이 앞 다퉈 ‘여성 이사 모시기’에 몰입하고 있다. 남성 중심이던 대기업 이사회에 최근 여풍(女風)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이다.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여성 이사가 1명도 없는 100여개 기업들이 올해 또는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여성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실제 올해 주총을 앞두고 기업들에 여성 이사 선임이 줄을 잇고 있다. 이미 올해 주주총회에서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한화그룹 지주사와 계열사 등 다수의 기업이 여성 사외이사를 등기임원 후보로 추천해놓은 상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들이 처음으로 올해 주총에서 여성 이사 선임안을 결의할 예정이다.

LG그룹도 지주사인 ㈜LG를 비롯해 LG전자, LG유플러스, LG하우시스 등 5개 상장 계열사가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다.

지난 26일에는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한화그룹 계열이 여성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한 주총 안건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오는 17일 주총에서 법제처장과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선욱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사외이사(감사위원)로 재선임하고, SK텔레콤도 오는 25일 주총에서 윤영민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할 계획이다. 이 밖에 한진그룹 등도 여성 이사 선임에 줄을 잇고 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아무래도 현재 기업 사내이사를 여성이 맡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개정법 시행 전까지 상당수 기업이 사외이사를 통해 성비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5.1%인 여성 등기임원 비중이 올해까지 10% 선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여성 이사 수요 증가로 여성 인재들이 말 그대로 ‘귀한 몸’이 되면서 기업들은 여성 교수·법조인·관료 등 인재풀을 찾느라 애를 먹고 있다.

일찌감치 여성이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도 사외이사를 재선임(6년)까지만 가능하게 한 현행법 때문에 끊임없이 또 다른 새 인물을 찾아야 한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오르면서 여성 이사를 확대하려는 분위기로 인해 여성 인재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기업들이 보유한 인재풀이 적다보니 최근 여성 전문 인력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대학가에서는 최근 여성 사외이사 수요 증가에 대비해 여성 사외이사 전문가 과정도 신설하고 있다.

여성 인재풀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1명이 2개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중복해서 맡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그간 남성 중심으로 이사회를 운영하던 기업들이 가뜩이나 적은 여성 인재풀 내에서 한꺼번에 사외이사를 영입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며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여성 인력 확보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CEO스코어가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국내 500대 기업 중 상위 200대 상장사의 등기임원 1천441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지난 7일 발표했다. 이들 기업의 여성 등기임원은 65명으로 전체의 4.5%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 39명에 비해 67% 늘고, 비중도 2019년 2.7%에서 1.8%포인트 증가했다.

상장사들의 여성 등기임원이 늘어난 것은 2019년 12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이사회 구성을 특성 성(性)으로 구성하지 못하게 한 자본시장법 개정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상장사들은 내년 7월까지 반드시 여성 등기임원을 최소 1명 이상 둬야 한다.

여성임원이 늘었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컸다.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200대 기업의 여성 등기임원 수는 전체 2천435명중 730명으로 30%에 달했다.

국내 200대 상장사 중 여성 등기임원이 단 1명도 없는 기업은 146곳으로 전체의 73%나 됐다. 전년도 168곳(84%)에 비해서는 감소한 것이지만 미국 200대 기업 전체가 여성 등기임원을 1명 이상 두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등기임원중 여성 대표이사 수도 미국은 19개 업종에서 11명에 달했으나 한국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김선희 매일유업 사장, 한성숙 네이버 사장, 조희선 한세실업 대표 등 4명에 그쳤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독일 등도 ‘여성임원할당제’ 등을 도입하는 등 이사회의 여성 비중을 높이는 추세다.

201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4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이 이사회의 성별 구성을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고, 30개국에서는 할당제나 자발적인 목표를 설정해 여성임원 비율을 높이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도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라 내년까지 지속적으로 여성 임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가 국내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성 이사 비중도 전체 441명중 35명으로 7.9%에 그쳤고, 이들 기업중 여성 이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기업이 7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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