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유병욱

 

그는 시간을 제작하여 침전시킨다

배회와 고요의 동등성이 깊이 습득되었다

당신은 그의 골목을 지나가고,

그는 어슬렁거리며 당신 눈동자의 끄트머리를 스친다

그를 중심으로 갈리는 두 영역의 의미가 전환된다

당신에게 사소한 장애물인 그는 꿈을 꾼다

바닥만큼 낮거나, 천장만큼 높아지는,

그것이 꿈으로만 머물러 그는 당신을 배반하지 못한다

당신은 영원히 그를 빗겨 간다

 

--------------------

  안방의 문턱이 있는 줄 모르고도 오늘도 수십 번 눈을 감고도 넘나들던 하루다. 당신과 나에게 놓여진 문턱 또한 적절하게 아무렇지 않게 넘나들었기에 이 하루도 안녕할 수 있었다. 문턱! 그것이 장애물로 작용했을 때 비로소 우린 턱의 존재가 있었음을 후회하며 인지한다. 문턱이라는 것은 자칫 경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실은 세상을 균등하게 지탱해주기도 하는 저울의 중앙 눈금이 아닐까? 경계, 위계가 무너져 내리고 위아래 옆도 뒤도 없는 세상이라면 어찌될까? 평등이라는 미명하에 도의나 예의 혹은 최소한의 양식마저 얼버무려 먹어버리는 무질서의 관계는 상상할 수 없는 아수라다.

한편, 살아가는 모든 일상이 내 맘대로 다 승승장구한다면 그 또한 무미건조한 세상일게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크고 작은 형형색색의 턱들을 넘는 운전이다.  때론 불평등하고 힘이 들어도 그 턱들을 뛰어 넘으며  혹은  턱으로 분리된 영역을 인정하기도 하며 공존, 성장하는 우리가 있는 것이다. 몇 미터 전방에 턱이 있다고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이 인생에도 달려 있다면 재미 없지만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혜’라는 신의 선물이 있다. 턱이라는 것을 치우는 기술보다 뛰이넘는 기술을 터득하는 지혜말이다. 슬기로운 당신과 나의 삶을 위하여 시 한 수에 인생의 지혜를 배운다. [최한나]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