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 2조원에 전격 합의…LG는 ‘2조원과 명분’ SK는 ‘실리’ 얻어
LG에너지 “지적재산 인정받았다”…SK이노 “투자 확대하게 됐다”

LG와 SK의 배터리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중앙뉴스DB)
LG와 SK의 배터리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중앙뉴스DB)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LG와 SK의 배터리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K배터리 위기감에 ‘전격 스톱’을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를 놓고 벌인 700여 일간의 전쟁이 종료됐다.

지난 11일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에서 2년간 벌여온 전기차 배터리 분쟁을 끝내기로 전격 합의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에 현금 1조원, 로열티 1조원 등 총액 2조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두 기업이 ‘배터리 전쟁’을 끝내는 데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막후에서 전격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이사회를 열고 양측의 합의안을 승인했다.

합의안은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배상금으로 현금 1조원과 로열티 1조원 등 모두 2조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애초 LG는 3조원대, SK는 1조원을 주장했으나 중간선인 2조원으로 결정됐다. 양사가 서로를 겨냥해 진행 중인 모든 분쟁과 소송도 종료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지식재산권 분쟁으로는 사상 최대인 2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지불하기로 한 것은 지난 2월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판결에 승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ITC가 내렸던 SK이노베이션에 대한 10년 수입금지 조치는 해제됐고,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됐다.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미국에서의 사업 불투명성이 제거되고, 폭스바겐과 포드 등 고객사에 배터리 공급 차질을 빚을 경우 예상되는 손해배상은 물론 조지아주 공장 건설 중단에 따른 매몰 비용과 설비 이전 부담에서도 벗어났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은 2조원이라는 막대한 합의금을 챙겼다. 자사가 ‘옳았다’는 명분도 얻었다. 그렇지 않아도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해 연내 상장을 추진하는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엄청난 ‘실탄’을 확보한 셈이다.

하지만 양사는 지난 2년간의 소송과 로비로 수 천 억 원을 날린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의 싸움은 세계 2위 전기차 업체인 독일의 폭스바겐의 지난달 중순 배터리 내재화 선언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폭스바겐의 배터리 내재화 발표가 있었던 1주일간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과 SK이노베이션의 시가총액은 13조원이 증발했다.

양사가 긴 분쟁 과정에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 배터리 공급체인 불안감을 일으키면서 신뢰성이 추락하고 중국 배터리의 공세적 시장 확대를 허용한 것도 큰 손실이다.

업계 안팎에 따르면, LG와 SK가 싸우는 사이 중국 배터리의 시장 지배력은 강화되고, 소송전에 물 쓰듯 뿌린 두 회사의 돈은 미국의 로비스트와 변호사의 배만 불렸다는 비평이다. 돈도, 고객도, 기업 이미지도 잃어 상처만 남은 배터리 전쟁이었다고 평가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양사의 분쟁은 결국 모두의 패배로 중국과 일본 등에 어부지리를 주는 것이다”라면서 “이번 합의를 K 배터리의 위상과 경쟁력을 더욱 높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배터리 전쟁을 끝낸 양사는 급속도로 바빠졌다. 세계 배터리 시장은 최대 수요처인 전기차 시장이 이제 태동기여서 반도체 시장과 같은 확실한 선두업체나 기술의 초격차가 아직 없다는 점과 기존 배터리 업체는 물론 자동차 업체들도 다투어 시장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의 CATL이 24%의 점유율로 4년째 1위를 지켰으나 LG에너지솔루션이 23.5%로 바짝 추격했다. 일본 파나소닉이 18.5%로 3위, BYD(중국)가 6.7%로 4위,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각각 5.8%와 5.4%로 5위와 6위를 달렸다.

국가별로 보면 한국과 중국이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올해 들어 1∼2월을 놓고 보면 CATL의 점유율은 31.7%로 치솟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19.2%로 떨어졌다.

여기에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유럽에 6곳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공급하겠다고 했다.

또 2023년부터는 현재의 파우치형 배터리 대신 각형 배터리를 탑재해 2030년까지 비중을 80%로 높이기로 했다. 협력 파트너로는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중국의 CATL을 선택했다.

이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해 지금까지 폭스바겐에 공급해온 LG 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등 우리나라 배터리업체에는 큰 악재다. 

글로벌 전기차 선두기업인 테슬라는 일찌감치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고, 도요타와 포드 GM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배터리 자체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이와 관련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최고경영자(CEO)들이 12일 일제히 전날 타결한 배터리 분쟁 합의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사업 성장 의지를 강조했다.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김종현 사장은 사내 메시지를 통해 “이번 합의는 숱한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도전·혁신을 포기하지 않은 모든 임직원들의 노력·가치가 정당하게 인정받은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지난 30여년 간 투자로 쌓아온 배터리 지식재산권을 인정받고, 법적으로 확실하게 보호받게 된 것도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소송을 계기로 회사는 기술력을 더욱 발전시켜 갈 것”이라며 “나아가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대규모로 배터리 공급을 확대하고 전기차 확산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역시 전날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번 합의를 통해 배터리 사업 성장과 미국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미국 조지아 공장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이어 “글로벌 전기차 산업 발전에 맞춰 추가 투자와 협력 확대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이제 불확실성이 사라졌으니 우리 기술과 제품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더 큰 성장을 통해 저력을 보여주자”고 말했다.

한편, 양사 CEO는 미국 대통령 거부권 시한 직전에 미국 정부와 무역대표부(USTR) 등의 적극적인 중재에 힘입어 지난 주말 화상회의를 통해 전격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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