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둘러싼 세계열강들의 패권 전쟁…‘K반도체’ 위기냐 기회냐
美‧中, 반도체 내재화와 공급 압박…세계 각국의 반도체 경쟁력 확보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열강들의 패권 전쟁이 치열하다.  (사진=SK텔레콤)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열강들의 패권 전쟁이 치열하다. (사진=SK텔레콤)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열강들의 패권 전쟁이 치열하다. 반도체 전쟁인가, 미래 선점 전쟁인가. 안보 전쟁인가. 겉으로는 반도체지만 모두를 포함하는 ‘이제는 패권이다’라는 세계열강들의 공격적이고 노골적인 야심이 서려 있다. 

이는 미래로 향한 속도에 가속도가 붙은 데다 기후변화와 코로나,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탐구와 확신을 가져다 줄 가장 큰 소재 중의 하나가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미래 선점을 향한 패권의 유인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에 반도체 품귀현상도 왔다. 미국 중국 유럽의 열강이 모두 국가 주요 정책 사안으로 반도체 생산에 대한 풀무질을 가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 중에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내재화)과 공급에 대해 좀 더 노골적이다.

그러면서 K반도체에 대한 위상과 입지가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품귀와 반도체 전쟁 사이에서 K반도체는 위기와 기회를 한꺼번에 맞닥뜨리게 됐다. 

‘K반도체’가 위기와 기회를 한꺼번에 맞는 것은 분명히 ‘기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 앞당겨지면서 디지털 혁명의 쓰나미 속에서 반도체 품귀 현상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올해 들어 반도체 품귀로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생산라인이 멈추면서 반도체 민족주의가 민낯을 드러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에서 표면화했듯 반도체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반도체 칩 없인 시민의 일상생활이나 공공인프라, 서비스나 첨단 제품 생산, 무기시스템의 운용은 불가능하다. 국가의 생존 필수품이자 포기할 수 없는 안보 자산이고 또 미래이다.

(사진=삼성전자)
(사진=삼성전자)

@ 세계 각국의 반도체 경쟁력 확보와 육성

이런 가운데 세계 각국은 반도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퍼붓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2조2천500억달러를 투입하는 SOC 부양책 가운데 500억달러를 반도체 산업 육성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PC용 중앙처리장치(CPU) 글로벌 지배자인 인텔은 200억 달러를 들여 애리조나주에 2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중국은 2015년 자국 제조업을 2025년까지 10년간 독일과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는데 반도체에만 170조원을 쏟아 붓기로 했다. 동시에 중국은 전문 인력 확보와 미국과 일본, 유럽 반도체 업체 인수합병(M&A)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유럽도 아시아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이 최대 500억 유로(67조5천억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현재 10% 수준인 세계시장 점유율을 20%로 높인다는 목표다.

TSMC는 향후 3년간 생산 확대를 위해 1천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글로벌 수요 폭발에 대응하면서 파운드리 분야의 주도권을 더욱 확고히 다지겠다는 포석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분야에서는 압도적 점유율로 세계 최강자이지만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약자다.

비메모리 반도체 위탁생산은 대만의 TSMC가 55% 점유율로 압도적 1위이며 삼성전자는 16%대로 2위다. 시스템반도체인 자동차용 반도체 점유율은 2%에 불과하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1위 자리를 수성하면서 미래 먹거리인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과제다.

우리도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반도체 시설 투자에 30조원 안팎을 쏟아붓고 있는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연구개발에 133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도 시스템 반도체 등 차세대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 노력에 비해 국가 차원의 장기전략이나 투자가 경쟁국과 비교해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반도체 수출 (사진=연합)
반도체 수출 (사진=연합)

@ 美‧中의 반도체 내재화 선언과 공급 압박

미국 백악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체와 자동차회사 등 글로벌 기업들을 불러들여 개최한 ‘반도체 화상회의’는 상당히 노골적이고 충격적이다.

이 회의는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함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인사말을 했다.

백악관이 반도체를 단순한 상품이나 산업을 넘어 안보 자산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를 “인프라”라고 규정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배하려는 공격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데,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반도체가 상하수도나 도로처럼 국민 생활과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국가의 핵심 인프라인 동시에 안보 자산이기 때문에 중국의 굴기를 막아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 간 한미일 3국 안보실장 회의에서도 핵심 의제는 북핵 문제와 함께 반도체였다.

미국은 안보와 산업의 토대인 반도체 생산력의 72%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과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에 편중된 것을 우려한다. 미국의 생산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국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는 전량 자국 내에서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각각 세계 메모리와 파운드리 1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를 백악관 회의에 부른 것도 공장을 지으라는 압박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파운드리 공장 증설을 위해 170억 달러 규모 투자를 검토 중인데 서두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도 자국이 가장 큰 고객이라며 공급망 유지를 압박한다. 지난 3일 중국 푸젠성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기술 분야에 대한 협력을 요청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화웨이의 칼 송 사장(글로벌 대외협력 및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지난 13일 서울서 열린 한국기자 간담회에서 자국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했다.

그는 작금의 글로벌 반도체 수급난이 화웨이를 제재한 미국 탓이라고 비난하면서 “한국, 일본, 유럽 등 반도체 선진국과 협력해 글로벌 공급사슬을 다시 형성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또 손루원 한국화웨이 사장은 지난 5년간 한국에서의 반도체 누적 구매액이 약 40조원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 업체들이 자국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물량에서 중국 비중은 39.6%에 달했다. 비즈니스 측면서만 보자면 중국이 사실상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들의 목줄을 잡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낸드플래시와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돌리고 있다. 중국도 언제든 삼성에 생산력 확충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로서는 미국과 중국 어느 나라도 포기할 수 없어 두 나라의 패권 경쟁이 심화할수록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한편,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로 이틀간 멈췄던 아산공장에 반도체 부품이 재공급됨에 따라 생산을 재개했다고 14일 공시했다.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는 현대차 아산공장은 파워트레인 컨트롤 유닛(PCU) 부품의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지난 12∼13일 가동을 중단했다. 이 기간 공장이 가동됐다면 이틀간 약 2천50대가 생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 울산1공장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과 아이오닉 5 PE모듈 수급 차질로 지난 7일부터 이날까지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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