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구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 소설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 소설가

[중앙뉴스=이재인] 필자가 쓴 시 가운데 “내 고향 봄날은 황소 왈기는 소리로 시작된다”는 구절이 있다. 황소, 즉 수소가 쟁기를 끌고 가는 보폭이 느리면 뒤에서 쟁기를 잡은 사내는 소의 고삐로 거칠게 엉덩짝을 후려친다. 사뭇 후려치는 말을 “왈패스럽다”하여 쓴 사투리이다.

역사적으로 쟁기는 8,000년 전,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2000년경 이집트에서 나무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이어 로마인들이 쟁기에다 철로 제작한 날을 보습에 덧대는 발전이 있었다.

16세기에 이르러 쟁기의 볏, 즉 보습 위에 달린 둥그런 금속판을 대어 땅을 갈아엎는데 아주 효율적인 기구로 발전하였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존 디어가 1837년 대초원을 일구는 강철 쟁기로 농업 발전에 혁명적인 기구가 되었다.

이런 쟁기는 선사 시대의 사람이나 수소가 끌다가 지금은 전동으로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오늘의 트랙터이다. 이 트랙터의 등장으로 우리 선조들이 사용해오던 보습이 달린 쟁기는 지금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민속박물관의 문화재 도록으로나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농사는 쟁기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쟁기는 머슴과 소, 이 셋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을에서 전해진 ‘순이 이야기’의 한 장면은 이 세 요소를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 소를 왈기는 머슴은 한 시 바삐 식모로 있는 주인집 식모로 살고 있는 순이가 보고 싶다.

얼른 재 너머 양지 밭을 갈았으니 짝사랑으로 숨겨둔 순이의 얼굴이 보고프다. 눈짓을 여러 차례 보냈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어디서 매파가 나타나 중매선을 보게 되는 신세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마음이 바쁜데 소는 꾸물꾸물, 아주 천천히 쟁기를 끌어간다. 입가에서는 힘겨운 침이 질질 흐르는데 머슴은 아랑곳 않고 엉덩짝을 후들겨 팬다.

소에게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부려도 쟁기를 끄는 속도가 달라지지 않으니 머슴은 성난 악머구리처럼 소리를 친다. “때리지 말고 말로 하려므나…….” 아무도 머슴의 암호스럽게 내지르는 목청을 모른다. 하지만 숲 속의 요정만이 숨겨진 머슴의 짝사랑을 다 알고 있지나 않았을까 싶다. 이런 습작 시 하나 떠오른다.

숨겨둔
비밀 하나
길고 긴 댕기머리
출렁이는 내 가슴
숨 막히는 점심 무렵
너는 왜 그리
느림보 걸음이냐
내 사랑 보고 싶은 마음
2,000와트 전류로 흐르고 있다

또 하나, 싸리비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지게에 싸리나무로 엮어 설치한 것을 꼴 바지게라 일컫는다. 이 꼴 바지게가 넓고 큰 형태를 이른 바 “덕산 깔바지게”라 불렀는데, 튼튼한 싸리나무를 덕산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산의 주산은 가야산이다.

그곳은 명산이라 불리는데, 산자락이 후육하고 겹산인데다가, 토질이 황토라 모든 나무들이 바위 너덜 사이에서도 잘 자랐다. 싸리나무도 그랬다. 나무가 웃자란 덕에 바지게를 만들면 자연히 깊고 넓었다. 이런 바지게는 국내 농부들에게 인기였다.

바지게에는 박물장수나 소금 장수, 엿장수에게도 선호된다. 물물교환에는 많은 짐이 담겨져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인 싸리비는 눈 내린 마당을 쓸어내는데 아주 요긴한 물건으로 사용되었다.

싸리로 만든 바지게, 싸리로 엮은 싸리비. 눈이 겨우내 쌓이는 강원 전방 경험이 있는 예비군에게 싸리비는 지겨운 추억의 산물일 것이다. 몽당 싸리 빗자루를 태우다보면 연기가 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홍길동전 주인공 길동이가 산 속에서 숨어서 밥을 짓던 싸리나무 몽당비도 지금은 중국산 싸구려 대나무에 맥을 못 추고, 역사의 뒤안길로 서글픈 퇴장을 했다. 싸리나무가 사람이라면 바윗등에다 유언 한마디 남길 듯하다. 서투른 전서체로 만물우상, 인생무상…

지금쯤 가야산 기슭에 임자 없는 싸리나무에 한창 물오르는 봄 밤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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