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대기자

[중앙뉴스 칼럼기고=전대열 대기자]대한민국 행정부는 공무원만 100만이 넘는 거대기구다. 일본이나 독일에 비교하면 인구수는 훨씬 적은데 공무원 수는 단연 많다. 가까운데 있는 동사무소, 요즘은 주민 센터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서류를 뗄 일이 있어 들러보면 웬 직원들이 그렇게 많은지 어리벙벙해진다.

창구 앞에는 담당업무가 표시된 명패가 있는데 등본이나 초본, 인감 등 비슷한 업무를 따로따로 담당자를 뒀다. 공무원 수를 한정 없이 늘리는 정책을 내걸었으니 일거리를 쪼개서라도 분담을 시켜야 하는 실정에서일 게다. 이것은 우리가 목격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국민의 눈에 띄지 않는 중앙부처에 가면 얼마나 많은 인력과잉이 있는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번에 문제된 세종시 유령청사의 주인공은 약칭 ‘관평원’이다. 정식이름은 관세평가분류원. 관세청 소속인데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국민에게는 생소하기만 하다. 정부에서 꼭 필요한 기구로 인정하고 있으니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발생한 말썽은 존재의 필요성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정부부처나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수도권의 과밀(過密)현상을 바로잡자는데 있다.

처음에는 서울에 남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었으나 정부방침이 워낙 강경해지면서 어쩔 수없이 지방이전은 강행되었으며 이제는 제 자리를 잡은 듯하다. 행정부처는 대부분 세종시로 이전했다. 용이 꿈틀대는 형상의 세종정부청사는 그것 자체로 명성을 날리며 공무원들의 긍지를 살린다.

노무현정부에서는 수도이전으로 계획했으나 헌재의 위헌판결을 이끌어낸 이석연변호사의 노력으로 행정수도 정도로 낙착된 셈이다. 더구나 문재인정부에서는 국회이전과 청와대이전까지도 은근슬쩍 거론하는 경지에 들어가 있어 세종시의 주가는 초창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드높다. 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이 수만 명인데 아직도 서울등지에 가족을 둔 이산가정도 수두룩하다. 이들에게는 세종시에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를 정부에서 특별공급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했다.

처음에는 심드렁했으나 날이 갈수록 아파트의 인기는 높아졌다. 일반분양의 경우에는 평균 183대1이었으며 어떤 평형수는 2000대1이 넘었다고 하니 또 하나의 로또였다. 공무원들은 경쟁대수도 약하고 특공이라는 예외대접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양을 받았다.

여기에 슬그머니 끼어든 것이 관평원으로 대전 유성구에 있는 대전세관의 일부를 쓰고 있는 처음부터 세종시 이전대상이 될 수 없는 기관이다. 자동차로 20분 거리여서 설혹 이전이 되더라도 아파트 특별공급까지 받을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이미 2005년도의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계획 고시’에 이전 제외기관으로 명시되었다. 관세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평원 청사 건축예산을 편성하여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기획재정부는 예산을 지출했다. 2018년에서야 행안부가 알아차리고 불가 통보를 냈지만 관세청은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했다.

행안부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지만 “정책적 문제가 결부됐으므로 관계기관이 협의해 결정할 사안”이란 엉뚱한 이유로 반려했다. 이미 171억원의 국민혈세가 투입되었으며 번듯한 건물이 완공되었다. 그러나 주인이 들어올 수 없다. 유령의 집처럼 텅 빈 집이다. 그 사이에 관평원 직원 82명은 아파트 특공으로 49명이 수혜자가 되었다. 분양가는 2억4400만~4억5400만 원. 그 가운데 98.3㎡ 한 채가 지난 2월 14억9500만원에 팔렸다. 무려 10억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지난 서울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유 중의 하나가 LH 직원들의 땅 투기였다. 국민과의 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세종시 공무원들의 특공 아파트는 재테크의 근본이 되었다. 아파트 분양을 받은 사람만 2만5000명인데 그 중에서 4000명은 이미 집을 팔았다. 평균 차익이 4억원이다. 전체물량을 따지면 천문학적인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관평원이 이전기관이 아니면서도 유령청사를 짓고 이를 눈감아준 국회와 기재부, 행안부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 특히 감사청구를 반려한 감사원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최첨단 기법으로 무장한 정부기관들이 초등학생들도 잘하는 컴퓨터 클릭 한번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안을 10년 안팎의 세월동안 어느 누구도 챙겨보지 않았다는 것은 공무원이기를 포기한 것이며 형사상 직무유기죄에 해당된다.

이런 정부 밑에서 세금을 납부하며 살아야 하는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새로 부임한 김부겸 총리가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특공 당첨을 취소할 수 있는지 법적 검토와 위법을 따져 수사의뢰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이전할 수 없는 기관을 건축한 관세청의 위법과 세종시에 전입하지 않은 관평원 직원들의 특공수혜는 원인무효다. 구멍가게도 이렇게 운영하지는 않는다. 행정부가 이를 어떻게 바로 잡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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