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EU지식재산청, 뱅크시 작품 4점, 상표권을 박탈...이유가?

[중앙뉴스=윤장섭 기자]국내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 영국의 얼굴 없는 미술 작가로 잘 알려진 아티스트 '뱅크시'가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 여러 개의 상표권을 박탈당했다. 뱅크시가 신원 공개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뱅크시는 자신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으면 작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국내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 영국의 얼굴 없는 아티스트 '뱅크시'가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 여러 개의 상표권을 박탈당했다.(사진=국내에서 공개한 뱅크시 작품,풍선날리는 소녀)
국내에서도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 영국의 얼굴 없는 아티스트 '뱅크시'가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 여러 개의 상표권을 박탈당했다.(사진=국내에서 공개한 뱅크시 작품,풍선날리는 소녀)

지난 20일(현지 시각)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유럽연합 EU지식재산청(EUIPO)은 뱅크시 작품 2점에 대한 상표권을 추가로 박탈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EUIPO가 상표권을 추가로 박탈한 뱅크시 대상 작품은 2004년 런던에서 선보인 ‘레이더 쥐’(Radar Rat)와 2008년 뉴올리언스에 등장한 ‘우산을 든 소녀’(Girl with Umbrella)다.

이번에 상표권을 추가로 박탈한 것 외에, EUIPO는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사람'(Flower Bomber)과 '지금 웃어라'(Laugh now) 등에 대한 상표 등록도 지난달에 취소한 바 있다.

사진= 국내에서 전시된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사람'(Flower Bomber)
사진= 국내에서 전시된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사람'(Flower Bomber)

EUIPO가 뱅크시의 네 가지 작품에 대해 상표권을 박탈함에 따라 뱅크시는 이 네 가지 작품에 대한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됐다.

뱅크시 작품에 대한 상표권 분쟁은 2018년, 영국 연하장 업체인 '풀 컬러 블랙'이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사람'(시위자)을 자사 카드에 인쇄해 사용하면서 시작됐다. 2018년 영국의 한 연하장 회사가 뱅크시의 ‘꽃을 던지는 시위자’를 그대로 인쇄한 카드를 제작하면서 상표 등록 취소를 청구한 게 시작이었다.

당시 해당사는 뱅크시의 상표 출원이 악의적이라며 취소를 요구했다. 상표의 목적은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의 상업적 출처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뱅크시는 단순히 타인의 상표 등록 또는 사용을 막기 위한 ‘악의’를 가지고 상표를 등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당사는 익명성 뒤에 숨은 뱅크시가 저작권법 원칙에 반하여 무기한으로 이미지를 독점하려는 속셈으로 상표권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뱅크시가 익명의 인물이기 때문에 상표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뱅크시 측은 작품의 무단 도용을 막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 악의는 없었다고 항변했다. 영리 목적으로 상표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EU지식재산청은 연하장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뱅크시가 익명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상표권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또 상표권 취하 신청이 제기되기 전까지 뱅크시가 자신의 상표를 판매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EU지식재산청은 또 뱅크시가 상품을 제작 및 판매할 목적으로 상표 등록을 한 게 아니며, 오로지 상표권을 지키키 위한 임시방편으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했다고 결론내렸다. 게다가 불법 그라피티는 저작권법 보호 대상도 아니며,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장소에 설치되었기에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봤다.

뱅크시의 익명성도 자충수가 됐다. 작가 신원도 모르는데 저작권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국 뱅크시는 지난달 ‘꽃을 던지는 사람’과 ‘지금 웃어라’에 이어 ‘레이더 쥐’와 ‘우산을 든 소녀’의 상표권까지 빼앗기게 됐다.

뱅크시는 그간 “저작권은 실패자들이나 주장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혀왔다. 특히 성명을 통해 "비상업적, 개인적으로 뱅크시의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지만 상업적 목적으로는 사용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뱅크시측은 재차 상업적 목적만 아니면 자신의 작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며, 저작권을 주장하는 대신 상표를 출원하고 작품의 출처를 밝히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뱅크시는 상표 등록이 연이어 취소되면서 활동 자체에 빨간불이 켜졌다. ‘얼굴 없는 예술가’로 전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뱅크시의 입장에서 익명성은 곧 작품이나 마찬가지다.따라서,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신원을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뱅크시는 익명성을 포기하지 않으면, 상표로 등록한 다른 여러 작품의 권리마저 잃을 가능성이 높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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