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하 시집 / 파랑의 파란
이강하 시집 / 파랑의 파란

 

낙화

이강하

 

저물녘, 송이송이 절벽이 내리네

숨이 멎을 만큼 싸한 파란이

 

흙에 닿기까지

몸부림이 멈출 때까지

얼마만큼의 우주를 구부려야했을까

 

잠깐 피었다지만

그 잠깐은 얼마만큼의 태양이었을까

얼마만큼의 달이었을까

 

오래전 우리가 만났던 그 자리

꿈의 바다가 하늘 머금고

붉게 타네

 

지극히 아름다운 피안, 나도

동백꽃처럼 편안해지고 싶네

 

먼 나라 낯선 섬에서

오래오래

 

- 이강하 시집 『파랑의 파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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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한 가운데를 걷는다. 낙화에 관한 시인의 깊은 사유가 절벽보다 뜨겁다. 꽃들이 도열한 여름날의 나들길에는 수많은 절벽들의 호흡소리가 뜨겁다. 꽃은 어쩌면 지기위해 화려한 일생을 바치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 맡아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꽃들의 파란, 그 길을 바라보니 짧지만 불꽃같은 生의 뒷모습이 보인다. 꽃이 떨어져야 진자리에 열매가 맺히고 마디가 생기고 나무들의 눈이 밝아지는 법, 혼신의 연기를 다하고 퇴장하는 배우처럼 꽃은 떨어질 때 웃는다. 아팠던 삶, 꽃처럼 살다간 한 친구의 뒷모습이 찌르며 아른거린다. 이제 이별이나 슬픔이라고 명명하지 않으련다. 스러져간 길 너머 저 피안! ‘지극히 아름다운 피안’ 나도 가야할 저기, 편안한 그 곳!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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