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중국, 친환경차 전환 가속페달 밟아
‘K배터리’에는 ‘호재’…미국 진출 가속화 전망
외국계 3사 대응책 미흡…국내 부품업체 ‘위기’
현대차·기아 전략 수정 불가피…현지화 확대할 듯

글로벌 자동차업계 친환경차 전환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 자동차업계 친환경차 전환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글로벌 자동차업계 친환경차 전환 속도에 가속도가 붙었다. 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도 전환 속도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도 메가톤급이어서 수출 기업과 부품업체에 대한 ‘위기’와 ‘기회’의 향배도 주목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도 기후 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친환경차 전환에 힘을 실으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사업 재편 속도도 한층 빨라진 것.

미국을 중심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는 ‘K배터리’ 3사에는 호재가 될 전망이다.

반면, 자동차 업계의 전동화 추세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내연기관차 판매와 수출에 의존하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급격한 변화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 미국·EU·중국, 친환경차 전환 가속페달 밟아

지난 8월 6일 외신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2030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절반을 친환경차로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관련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다. 이는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의 모회사 스텔란티스는 이날 공동성명에서 2030년까지 자신들이 파는 신차의 40∼50%를 전기차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와 도요타 등도 지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기차 최대 시장인 유럽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는 지난달 14일 2030년까지 유럽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5% 감축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고 2035년부터 EU 내 신규 휘발유·디젤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책 패키지 ‘핏 포 55(Fit for 55)’를 제안했다.

중국은 이미 작년 10월 ‘신에너지자동차로드맵 2.0’을 발표, 2035년부터 일반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순수전기차 50%,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50%로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분석에 따르면 2010∼2020년 중국은 460만대의 전기차를 생산하고 판매해 세계 전기차 생산의 44%를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도 전날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3개 시나리오 초안을 통해 전기·수소차와 같은 무공해차가 전체 차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50년까지 76∼97%로 늘려 수송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88.6∼97.1% 감축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지난 6월 10일 현대차-SK-포스코-효성 4개그룹 수소기업협의회체 설립 추진 논의후 기념촬영 (사진=현대차그룹)
지난 6월 10일 현대차-SK-포스코-효성 4개그룹 수소기업협의회체 설립 추진 논의후 기념촬영 (사진=현대차그룹)

@ 세계적인 전기차 전환 추세 가속화…국내 배터리 3사는 ‘호재’

이번 미국 정부의 발표는 GM·포드 등 완성차 업체와 손잡고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K배터리’ 3사엔 호재다.

그간 국내 3사가 공들여온 미국에서 배터리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될 뿐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시장을 선도해온 미국의 선제 조치로 세계적인 전기차 전환 추세가 가속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공격적인 투자를 벌이며 미국 시장에 뛰어든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손잡고 미국에 2개의 합작사를 건립 중이며, SK이노베이션도 지난 5월 미국에서 포드와 배터리 합작사 계획을 발표했다.

배터리 3사 가운데 아직 유일하게 미국 내 사업장이 없는 삼성SDI 역시 최근 컨퍼런스콜을 통해 미국 현지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공식화한 바 있다.

앞서 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인 리비안의 배터리를 수주한 데 이어 스텔란티스의 미국 물량을 따내며 미국내에 합작사 설립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의 빠른 팽창이 예상되면서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미국 진출은 더욱 가속화 할 전망이다.

유진투자증권 한병화 애널리스트는 "K배터리 기업들은 GM, 포드와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하고 있고, 리비안 등 업체와 이미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은 상태"라며 "이번 발표는 미국을 선점한 K배터리 업체들에 수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이번 결정은 전 세계 배터리 기업에 호재"라면서도 "시장이 커지는 만큼 앞으로 배터리 기업 간 기술·가격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쌍용차 전기차 E100 티저 이미지 (사진=쌍용차)
쌍용차 전기차 E100 티저 이미지 (사진=쌍용차)

@ 내연기관차에 의존한 국내 부품업체 ‘타격’ 불가피

현대차그룹은 연내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 5를 미국 시장에 투입하고 2025년까지 5년간 미국에 전기차 현지 생산 등을 위해 74억달러(약 8조원)를 투자하며 미국 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 미국 시장에서 친환경차만 4만여대를 파는 등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향후 수출보다 현지 생산이 더 중요해진 만큼 이에 대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전동화 전략을 세우고 추진 중인 현대차·기아와 달리 외국계 3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데 있다.

한국GM의 경우 부평2공장의 생산 일정이 내년 7월까지로 잡혀 구조조정 우려가 제기된 상태다. 노조는 내년 4분기부터 내연기관 차량과 전기차 투입을 약속해 달라고 사측에 요구해 왔지만 사측은 현재 차종의 생산 일정을 최대한 연장하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르노삼성차 역시 르노그룹 본사에서 수익성 강화 중심의 새 경영 전략인 '르놀루션'을 진행하며 압박을 받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올해 초부터 ‘서바이벌 플랜’을 가동하고 XM3의 유럽 수출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작년 임금·단체협상을 아직 끝내지 못하는 등 ‘노조 리스크’가 변수다.

기업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쌍용차는 올해 10월 브랜드 첫 전기차인 ‘코란도 이모션’을 유럽에 출시할 계획이지만, 현재 진행 중인 매각 상황에 따라 신차 개발 등 투자금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GM과 르노의 전기차 전략에 우리(한국GM, 르노삼성차)가 포함이 안 돼 있다”며 “자국 내 생산을 우선하고 있어 한국GM과 르노삼성 모두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EU집행위 등에 건의 서한을 보내 “내연기관 판매 금지는 자동차 제작사의 다양한 탄소저감 기술 활용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조치”라며 “‘내연기관차는 공해차’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기술 중립성과 개방성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글로벌 전기차 활성화 그림이 ‘바이 아메리카’와 같은 자국 우선주의로 진행되고 있어 수출 지향성이 큰 우리에게는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국내 공동화 현상이 벌어지고 마이너 3사는 철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부품업체의 줄도산 가능성도 내재돼 있다.

전기차의 부품수는 약 1만8천900개로 내연기관차(약 3만개) 대비 63%이고 작업공수(工數)도 내연기관차의 70∼80%에 불과해 급격한 전기차 전환시 고용 축소, 부품업계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져 자동차 산업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내연기관 부품 산업의 경우 국산화율이 99%에 달하지만, 미래차 부품은 국산화율이 전기차 68%, 수소차 71%,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38% 등으로 낮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향후 10년간 산학연관 협력을 통한 전동화를 일사불란하게 추진하지 못하면 아래로부터의 위기, 즉 중소 부품업체의 도산과 자발적 퇴출에 따라 국내 공급망에 균열이 생기면서 자동차산업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며 “정부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역량을 보유한 기업부터 우선 지원하고, 지원받은 기업들이 동반성장 차원에서 협력업체와 상생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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