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이사장
박근종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기고=박근종 이사장]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가 1805조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3%로 국제결제은행(BIS)이 집계한 43개국 중 7위로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는 임계치(80%)를 이미 추월한 것은 물론, 경제 규모를 이미 넘어선 데 이어 한국은행이 지난 8월 24일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가계신용 잔액은 1년 새 168조 원이나 폭증한 1805조9000억 원으로, 전 분기 말보다 41조2000억 원(2.3%)이나 늘었다.

이 수치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도 이래 가장 많은 수치로 1분기에 늘어난 36조7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더 커졌다. 그야말로 ‘가계부채 폭탄’이 빛의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불어나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 전체 규모를 나타내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지난해 1836조8811억 원)에 육박(98.3%)하고 있다. 가계신용이란 가계가 은행이나 보험사, 대부업체 등에서 받은 가계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인 판매신용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부채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가계신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계대출은 1,705조3000억 원으로 전 분기 말 대비 38조6000억 원 증가하였고, 판매신용은 100조6000억 원으로 2조7000억 원 증가한 것이다.

가계부채는 7월에만 10조 원 가까이 늘어 월간 증가 폭이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당국이 돈줄 죄기에 나서면서 금리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은행들이 봉급생활자의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고 전세자금 대출도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더 가팔라진 것은 치솟는 집값, 주식, 암호화폐 등 자산 가격의 상승 기대감이 이어짐에 따른 투자 자금을 마련하려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 등이 계속된 영향이 크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은 6월 말 현재 757조 원으로 1년 전보다 84조 원(12.5%)이나 늘어 증가액과 증가율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948조3000억 원)도 전 년 동기 대비 75조2000억 원(8.6%) 늘어 3개 분기 연속 8% 넘는 증가율을 이어갔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한 생활고 가중 영향에 이어 은행 대출 규제의 ‘풍선 효과’까지 겹쳐 서민들이 많이 찾는 제2금융권의 부채도 큰 폭으로 늘었다. 저축은행, 지역농협 등 비은행권 가계대출은 338조5000억 원으로 전 분기에 비해 2.8% 늘었다. 은행 가계대출 증가율(1.4%)의 2배에 이른 것이다. 특히, 비은행권 기타대출은 2분기에만 7조5000억 원이 늘어 은행권 증가액(7조6000억 원)에 맞먹는다. 그러나, 이러한 가계부채의 가파른 증가는 속도뿐 아니라 질마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여기에다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가계의 이자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사정이 이러니 금융당국은 가계 빚 증가세를 잡기 위해 하반기 전방위적인 대출 조이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가계부채 관리가 최우선 과제”라고 밝히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대출을 억제하겠다.”라고 강조하며, “곧 추가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라고 예고한 가운데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택담보·신용 등 개인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이자는 총 11조8000억 원 증가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7월 고용 동향’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2856만8000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인당 41만3050원의 대출이자가 늘어나는 셈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연내 자산매입 축소(Tapering) 등 돈줄 죄기를 가시화하고 있다. 글로벌 금리 인상 추세에 맞춰 빚을 억제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임에 틀림이 없다. 문제는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 증가는 집값 폭등의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이후 풀린 돈이 정책 실패와 맞물려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몰렸고, 이는 ‘미친 집값’을 만들었고, 결국 가계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투기와 무관한 서민들까지 생활자금이 막히고 이자 부담에 짓눌리고 있는 셈이다. 집값 폭등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에게 부채 증가의 책임까지 떠넘겨선 안 된다.

집값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대출 규제는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결론은 투기적 대출 수요를 억제하면서도 취약계층이 자금난에 몰리지 않도록 면밀한 관리를 해야 한다. 가계부채 안정화는 절대적으로 시급한 사안이지만 서민과 취약계층의 희생만 강요하는 것은 결단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가계도 스스로 빚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음은 당연하다.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이 오는 11월 말까지 신규 주택담보대출 취급을 전면 중단한 데 이어 우리은행은 9월 말까지 전세자금대출을, SC제일은행은 일부 주택담보대출을 한시적으로 중단키로 하는 등 가계의 자금조달 여건이 급변하고 있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이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에도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제한하라고 요구하면서 제2금융권의 대출길도 좁아졌다. 또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와 국내 1위의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도 올해 가계대출 총량을 넘어서면서 대출 규제 대열에 합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들이 주로 쓰는 마이너스통장 한도도 급속히 줄고 있다. 이 통장을 연장하려면 줄어든 한도만큼 돈을 갚아야 할 처지다. 가계부채가 급증한 근본적 원인이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비롯됐음에도, 책임을 투기 세력에게 돌려 대출 규제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잘못된 처방을 남발하며 실수요자들의 손발마저 묶고 있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전세나 생활자금이 필요한 서민들이 가계부채를 늘린 ‘빚투’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은행들은 이자 장사로 사상 최대 수익을 내면서 서민 고통을 외면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금융당국도 획일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대출 총량 관리가 서민금융만 압박하지 않도록 챙겨봐야 한다.

급증한 가계부채를 철저하게 관리할 필요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무조건 대출을 옥죄는 총량 관리보다 내 집 마련 수요나 서민·취약계층에게 타격을 덜 줄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관리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대출, 신용대출까지 모두 전방위로 쪼일 경우, 정작 자금이 꼭 필요한 실수요자들만 애꿎은 유탄을 맞게 된다.

따라서 원인은 그대로 두고 증가율만 억제하면 실수요자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 만큼 금융권은 대출 중단보다는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만 한다. 금리는 그대로 두고 규제만 강화하면 제2금융권이나 제도권 밖으로 옮겨가는 풍선 효과가 오히려 심해지기 때문에 코로나19 상황도 지켜봐야 하겠지만 기준금리를 올리는 방안도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차주 단위로 세분해서 대출 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가계대출 조이기가 피할 수 없는 유일한 선택지라면 꼭 필요한 실수요자인 서민이나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도 함께 나와야만 한다. 위기를 맞아 정작 자금이 절실히 필요한 대출자로부터 ‘비 올 때 우산 뺏기’가 되어선 안 되며, 더는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실제 대출 창구에서 무리한 대출 차단이 빚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함께 자금 용도별 구제심사 등 섬세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금융당국의 치밀하고 정교한 ‘핀셋대책’이 나오길 바란다.

자영업자들도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자금난에 시달리는 것은 매 마찬가지다. 여기에 이자 부담까지 늘어나면 버티기가 더욱 힘들고 어려워진다. 올해 들어 개인 파산이 급증했는데 상당수는 자영업자들이다. 시장 불안만 가중하고 심지어 역효과마저 우려되는 ‘대출중단’이란 대증요법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정교한 처방이 필요하다. 따라서 부채 억제만 강조할 게 아니라 자영업자들의 폐업과 재취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확대하여 적극적으로 챙겨보아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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