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은 2년9개월만…가계부채·집값·물가 억제에 초점

올해 실질 GDP 성장률 4.0% 유지…소비자물가 2.1% 올려
내년 물가 상승률도 1.4%→1.5%, 내년 성장률 3.0% 그대로
4차유행 타격, ‘수출·온라인소비·재정지출로 상쇄’ 판단한 듯

경제계 “금리인상에 소상공인 타격 불가피…추가 인상 신중해야”
중기중앙회·상의 “대출만기 추가 연장, 재난지원금 지급 서둘러야”
이주열, 추가 금리인상 시사…“코로나19 영향, 美연준 변화 봐야”

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인상했다. (사진=김상미 기자)
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인상했다. (사진=김상미 기자)

[중앙뉴스=김상미 기자] 한국은행이 26일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인상했다. 지난해 코로나19의 여파로 사상 최저 수준(0.5%)까지 낮아진 기준금리가 15개월 만에 처음 0.25%포인트(p) 오른 것.

경기 방어 차원에서 돈을 풀기 위해 한은이 1년 반 동안 주도한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뜻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26일 통화정책방향회의에서 현재 연 0.5%인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3월 16일 금통위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기준금리 0.5%포인트를 한 번에 낮추는 이른바 ‘빅컷’(1.25%→0.75%)을 단행했고, 5월 28일 추가 인하(0.75%→0.5%)를 통해 2개월 만에 0.75%포인트나 금리를 빠르게 내렸다. 이후 기준금리는 작년 7, 8, 10, 11월과 올해 1, 2, 4, 5, 7월 무려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마침내 이날 15개월 만에 인상됐다.

더구나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 의결은 2018년 11월(1.50→1.75%) 이후 2년 9개월(33개월) 내 처음이다.

금통위가 이처럼 통화정책 기조를 바꾼 것은 그동안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부작용으로 가계대출 증가, 자산 가격 상승 등 ‘금융 불균형’ 현상이 심해진데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 5월 금통위 이후 여러 차례 이런 이유를 들어 금리 인상 논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달 15일 금통위 회의 직후 “최근 경제 주체들의 위험 선호, 차입에 의한 자산투자가 이어졌다”며 “건전성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저금리가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한 거시건전성 규제도 한계가 있다. 금융 불균형 문제를 거시건전성 정책과 함께 거시경제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통화 정상화로 대처해 나갈 필요성이 커졌다”고 사실상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아울러 기준금리 인상에는 이제 시중의 돈을 거둬도 좋을 만큼 경기 회복세가 탄탄하다는 한은의 인식과 전망도 반영됐다.

경제 전문가들이 이날 한은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4.0%에서 낮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7월 초 이후 두 달 가까이 코로나19 4차 유행과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수출과 온라인 소비 호조, 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재정 지출이 대면 서비스 위축을 상쇄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의 성장률 전망(4.0%)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며 “코로나 4차 유행의 영향이 학습효과 등으로 이전보다 적고, 타격을 받는 대면 서비스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그렇게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날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기준금리(0.00∼0.25%)와 격차는 0.5∼0.75%포인트(p)로 커졌다.

또한 한은은 이날 수정된 경제전망을 발표했다. 한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에도 불구,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유지했다. 수출 호조와 온라인 소비 증가, 정부의 재난지원금 등 재정 정책 효과를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경우 원유·원자재 가격 상승, 소비 회복 등을 반영해 2.1%로 올려 잡았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실질 GDP 성장률은 4.0%로, 지난 5월 전망치와 같았다. 7월 초 이후 약 두 달 가까이 코로나19 4차 유행과 강화된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경제 회복세에 큰 타격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관련 최신 지표들을 보면, 코로나19 대유행에도 7월 신용카드 승인액(14조517억원)은 6월보다 2.3%, 작년 같은 달보다 7% 각각 늘어 내수 회복세가 이어졌다. 백신 접종 확대와 온라인 구매 증가 등이 소비 위축을 막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수출금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9%나 늘었고, 4차 대유행 속에서도 7월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54만명 이상 증가했다.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에서도 제조업 업황 BSI(95)는 7월보다 2포인트 떨어졌지만,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81)은 휴가철 특수 등으로 오히려 2포인트 높아졌다.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집행될 34조9천억원 규모의 2차 추경(추가경정예산)도 한은이 경제 전망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코로나 4차 유행으로 자영업자 대면서비스 소비 등이 줄어 하반기 성장률이 상반기보다 낮아질 수 있지만, 재난지원금 등 정부 재정 효과로 4.0%의 성장률은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3.0%였던 내년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에도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는 1.8%에서 2.1%로 0.3% 포인트 높아졌다.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 연속 2%를 웃돌고 있는 월간 소비자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지난해 11월 이후 9개월 연속 오른 생산자물가지수 등을 한은이 확인하고 예상보다 강한 물가 상승세를 인정한 셈이다.

향후 인플레이션 압력도 큰 편이다. 8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기대인플레이션율(2.4%)은 2018년 12월(2.4%) 후 2년 8개월 내 가장 높았다. 커진 물가 상승 기대는 생산자의 가격 결정 등에 영향을 미쳐 결국 실제 물가 상승을 이끌 수 있다.

이에 따라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기존 1.4%에서 1.5%로 0.1%포인트 상향조정됐다.

한국은행이 1년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경제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 문제 등 정부의 불가피한 상황은 이해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가뜩이나 어려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다.

대한상공회의소 이경상 경제조사본부장은 논평을 통해 “이번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대출 증가 완화, 부동산가격 안정, 물가 상승 억제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이해하지만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경기 회복 기운이 약화되고 있는 점,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비롯한 취약계층의 고통이 장기화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서는 최대한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아직 매출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은 유동성 위기로 쓰러지고 은행도 동반 부실화되는 악순환을 유발할 수 있다”며 “정부와 금융계는 금리 인상의 충격이 완화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금리와 자금 공급 상황을 면밀하게 점검해 일시적 자금난으로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사상 최저 수준(0.5%)까지 낮아진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처음으로 0.25%p(포인트) 인상했다.

이에 따라 초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며 가계 대출은 물론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경영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도 이날 배포한 보고서에서 가계대출 금리가 1%p 높아지면 가계대출 연체율이 0.32%p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특히 가계 대출금리가 1%p 오르고 이례적 사건(블랙스완)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에는 가계대출 연체율은 0.62%p 높아지고, 연체액은 5조4천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한경연은 “가계 대출금리 인상과 함께 주택가격하락, 경제성장률 둔화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경우 가계 부실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단체에서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9월 말로 종료되는 대출 만기 연장도 추가 연장되도록 후속 조치를 마련해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경상 대한상의 본부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일부 소상공인은 폐업 위기에 몰리고 있다면서 “정부는 취약계층의 금융비용 부담 등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중기·소상공인 피해 지원, 재난지원금 지급 등을 서둘러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한국은행)

한편,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두고 “누적된 금융불균형을 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첫발을 뗀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추가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금통위의 이번 기준금리 인상 배경에는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 등에 따른 금융불균형 심화가 우선 꼽힌다.

이 총재는 “금융불균형이라는 게 이번 조치(기준금리 인상) 하나로 해소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며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제 주체들의 차입 비용이 높아지고, 위험 선호 성향을 낮추게 되기 때문에 가계부채 증가세나 주택가격 오름세를 둔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0.25%포인트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여전히 금리 수준은 완화적”이라며 “실질금리는 여전히 큰 폭의 마이너스(-)를 나타내고 있고, 실물경기에 제약을 주는 수준은 아닌 데다 중립금리보다도 기준금리는 여전히 낮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또 “추가 (금리) 조정의 시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경제에 줄 영향,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의 정책 변화 등을 봐야 한다"며 "늘 그렇듯 서두르지도, 지체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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