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일이다. 공명선거를 내세우고 시민운동을 한다는 일부세력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에 대한 낙선운동을 전개한바 있다.
 
명색이 시민단체라는 허울을 쓰고 낙선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 대상자가 된 사람에 대해서는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다. 실제로 낙선운동의 대상자가 되었던 많은 입후보자들이 변명할 사이도 없이 ‘반민주’ ‘부패’ 등의 누명을 쓰고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낙선운동은 선관위에 의해서 불법운동이라고 유권해석이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선운동은 가랑잎에 불붙듯 천지를 진동시키며 요원의 불길이 되어 퍼져나갔던 것이다. 선거는 끝났고 낙선자들은 자신을 향하여 낙선운동을 벌인 인사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선거법에서는 후보자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용인된다. 그러나 특정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운동하는 일은 불법으로 친다. 그래서 낙선운동자들은 모두 벌금형에 처해졌다. 불법으로 규정된 낙선운동에 대한 강력한 법의 응징이 가해진 것이다.

그 뒤부터 각급선거에서 낙선운동은 눈 녹듯 사라지고 정상적인 선거운동과 공명선거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특정후보자가 인격적으로 모자라거나, 과거에 부패한 경력이 있거나, 반민주 독재정권의 하수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이유로 감정적으로 낙선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선거는 어디까지나 유권자의 참여를 통해서 투표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법치의 원칙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똑같은 투표행위가 벌어지는 8월24일 서울시민의 주민투표는 예외란 말인가.

이번 투표는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책에 대한 주민의 결정을 받는 자리다. 제1안은 “저소득층 50%에 대해서 2014년까지 점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라는 것이고 제2안은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한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복지 포퓰리즘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은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시민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여야당 모두 시민들의 눈 밖에 났기 때문이다. 다만 오세훈이 한나라당 소속으로 있고 당론은 무상급식을 반대한다는 쪽으로 발표되어 약간의 혼동을 줄 뿐이다.

서울시장은 굳세게 무상급식 전면실시를 극력 반대하고 있는데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야당 쪽에서는 이번 주민투표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으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인다. 투표운동의 양상이 이상하게 변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행위는 신성한 것으로 누구나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헌장은 운동경기의 승리에 목적을 두지 않고 ‘참여’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눈이 내리지 않는 열사의 땅인 아프리카의 선수가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트선수로 출전하여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비록 남이 세 바퀴 돌때 한 바퀴도 제대로 돌 수 없었지만 그는 안간힘을 다하여 발을 내딛었다. 페어플레이를 염두에 둔 참여정신이다. 중도기권은 그의 안중에 없다. 이것이 올림픽정신이다. 국민의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결정하고 후보자를 선택하는 투표행위도 민주국민의 소양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참여하는 것이 의무요, 권리다. 이는 어느 누가 간섭해서도 안 되고 침해할 수도 없는 신성불가침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8.24주민투표에서는 공공연하게 투표거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용혹무괴한 것은 선관위가 이를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관위 측에서도 처음에는 투표거부운동을 불법이라는 시각으로 봤다. 그러던 것이 어느 사이에 합법으로 유권해석을 내렸다.
 
대법원 판결도 오락가락하는 수가 있으니 항차 선관위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낙선운동과 투표거부운동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책임이 선관위에는 있다. 낙선운동의 결과 특정후보가 떨어졌다고 하자.

그는 피해자로서 고소나 고발을 한다. 그리고 가해자인 낙선운동자는 처벌을 받는다. 주민투표도 마찬가지다. 투표를 하자고 서울시민 80만이 서명을 했다. 그런데 투표거부운동에 의해서 3분의1이상이 나오지 않으면 서명자 전원은 피해자가 된다. 따라서 투표거부운동을 한 사람은 가해자가 되어 피고소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투표거부운동이 주민투표법상 불법이라는 상황증거다. 불법투표행위를 예방하는 것은 선관위의 고유권한이다. 이를 깨우치지 못하고 스스로 투표거부를 합법운동으로 해석한 것은 딱 소송감이다.
 
사람을 뽑는 선거나, 정책을 결정하는 투표나 모두 국민이 직접 나서서 하는 일이다. 모든 절차와 수속이 한 치의 틀림도 없이 똑같이 진행된다. 법의 규정대로 따라야 한다. 이를 구분하여 선거와 투표를 가르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투표의 진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선관위는 낙선운동과 투표거부운동이 민의를 좀먹고, 불법을 조장하며, 특정세력의 발호를 촉진하는 무법행위라는 사실을 발표해야만 한다. 유권해석을 잘못한 것을 취소하고 주민투표의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올바른 조치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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