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법'너머엔 무엇이 있을지 불안하다.

‘대중교통’이란 기차·자동차·배·비행기 등을 이용해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수단이며, 정해진 일정과 노선에 따른 연결편이 마련되어 있을 때 그 이동수단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에너지 효율성과 교통비 절감의 경제적 효과와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교통수단을 말한다. 그래서 버스의 경우 정부의 보조금을 받고 있으며, 서울·부산 등 대도시에서는 준공영제를 도입하고 있다. 준공영제가 도입되면 노선, 배차간격, 요금 등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독점 관리하여 적자가 날 경우 시에서 보전하고 흑자가 나면 시내버스 인프라에 재투자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하지만 택시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대량 수송이 가능한 버스나 지하철 등과 달리 정해진 일정과 노선이 없다 보니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공급과잉의 논란을 겪고 있다.

LPG 가격폭등과 대비되는 택시요금의 고정화 문제에다 대리운전 이용의 급증에 따른 승객 감소로 수요마저 급격히 줄고 있다. 더군다나 외국에서도 택시가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 이런 문제를 대중교통법을 통과시켜 택시 역시 대중교통으로 인정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근본을 도외시하고 택시를 버스와 대등한 위치로 보고 정책을 펴는 것은 ‘고식지계’(姑息之計)일 뿐이다. 오히려 별도의 택시특별법을 만들어 공급을 줄이고 그에 따른 감차 보상과 운영 시스템 개선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이 더 급하다.

집단의 힘을 의식한 정치적 포퓰리즘이 더이상 되풀이되어선 안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택시법'통과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정치권에서 표를 의식해 무리하게 법 개정을 추진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국회는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일명 ‘택시법’)을 통과시켰다. 1조9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 지원 문제와 함께 택시가 대중교통이냐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도급택시와 같은 불법 행태가 사라지지 않으면 ‘택시법’을 통한 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 지원으로 인한 혜택이 기사나 승객에게 돌아가기보다 이런 불법을 저지르는 택시 업주들 배만 불리는 꼴이 될 수 있어서다. 택시업계 지원에 앞서 불법 관행 단절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A씨는 법인택시 회사를 14개나 운영하며 1400여 대의 차를 굴리는 '택시 재벌'이다. 서울시는 최근 A씨 회사를 포함해 5개 택시회사가 불법 도급택시 140여 대를 운영하는 사실을 적발했다. 특별사법경찰을 동원해 수개월 동안 압수수색 등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결과다.

도급택시는 회사가 정식 직원이 아닌 개인에게 일정액을 받고 택시를 빌려줘 영업하도록 하는 것으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불법이다.

적발된 회사들은 ‘이중장부’도 모자라 ‘삼중장부’까지 만든 사실도 확인됐다. 진짜 회계장부와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기사 수를 부풀려 놓은 지자체 제출용 장부, 매출을 줄여놓은 세무서용 장부 등 용도별로 장부를 따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당국은 세제·유류보조금 등 혜택을 더 누리거나 탈세를 위해 이런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택시법에 따라 막대한 지원이 이뤄지면 불법 도급 택시가 이를 빼먹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도급 택시와 관련해 국토해양부와 각 지자체 택시담당자들은 현재 서울에는 적어도 5000여 대(법인택시 2만2000여 대 중 23%에 해당)의 도급택시가 운행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지방까지 합하면 전국에 수만 대의 불법 도급택시가 운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가장 시급한 사안은 기사 임금 처리 문제 등 택시회사의 불투명 경영 역시 ‘택시법’ 시행에 앞서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건강보험과 관련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10월 전국 1432개 택시업체에 2009~2010년 건강보험료로 총 53억여원을 더 내라고 통보했다. 이유는 업체들이 택시기사 보수를 낮게 신고해 그만큼 보험료를 덜 냈다는 것이다.

대부분 택시회사는 기사에게 매일 입금할 돈(사납금)을 정해놓고 있다. 서울은 평균 10만5000원꼴이다. 사납금을 채우고 남는 돈(초과운송수입)은 기사 몫이다. 공식 임금으로 잡히지 않는 돈이라 이에 대해선 회사도 기사도 세금을 비롯, 4대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다.

공단은 업계 반발로 현장 실사 대신 지역별 평균보수(서울 기준 2010년 101만3807원) 미달분에 대해서만 차액만큼 보험료를 더 내도록 했다. 이에'전두현 건보공단' 사업장관리부 파트장은 “기사 한 달 보수로 200만원 이상 신고한 곳이 있는가 하면 25만원이라고 써낸 곳도 있어 기사 보수료에대한 규정과 근거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고 말했다.

찬성해야할 업계 내부에서도 ‘택시법’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서울의 일진운수 박철영(73) 전무는 “택시는 고급 교통수단”이라며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당당하게 요금을 올려달라고 해야하는 것 아닌가? 왜 국민 혈세로 지원해 달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투명 경영을 위해 회계기준을 통일해야 한다”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택시법은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택시법은 이제 국회가 ‘포퓰리즘 입법’의 포로가 됐음을 확인시키고 드러내는 징후인지도 모른다. 보수-진보를 넘어 국민 대다수가 반대했음에도 특정 대중을 위해 복무했다. 발의자 명단엔 법을 안다는 율사 출신도 있었다.

법의 정신이 빠진 법과 만능주의 사고는 가치 갈등에든, 이익 갈등에든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국회에 핸들을 맡긴 지금, 택시법 너머엔 무엇이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어느 특정 집단을 위한 살찌우기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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