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돌아온다. 지난해 이른바 '안철수 현상'으로 정치권과 한국사회 전반에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오는 11일 80여일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다.

18대 대선 투표일인 지난해 12월19일 홀연히 미국행을 택한 안 전 후보가 82일 만에 돌아오면 정치권에는 작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재등장한 안철수, 무슨 말 할까?

안 전 후보는 11일 오후 6시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장에서 취재진을 상대로 30여분간 즉석 기자회견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기자회견이 지난해 9월19일 대선출마 당시만큼의 파괴력을 가질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귀국발언에는 대체로 3가지 내용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지난 대선에서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중도사퇴했던 점에 사죄하고 위로의 말을 건넬 것으로 전해졌다. 또 미국에서 구상하고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새 정치'의 구체적인 지향점과 과제, 목표를 제시할 전망이다. 아울러 노원병 보궐선거에 임하는 각오를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발언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귀국연설 내용을 점칠 수 있는 또 하나의 힌트는 안철수 진심캠프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이다. 안 전 후보 측은 대선 후 홈페이지 운영을 중단하면서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안 전 후보의 자필 서명과 함께 몇줄의 메시지를 남겨뒀다.

지금도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볼 수 있는 이 글의 내용은 '새 정치는 기득권 내려놓기로부터 시작합니다. 정치가 겸손해져야 합니다. 손에 쥔 것들을 국민에게 돌려드려야 합니다. 저도 초심을 잃지 않겠습니다. 저는 계속 이 길을 갈 것이고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이다.

대체로 연설내용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은 신당 창당 내지 정치세력화 여부다.

연설 작성을 맡았던 측근들조차 신당 창당에 관한 내용이 최종연설문에 포함될지는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 진심캠프에서 일했던 이들이 안 전 후보에게 신당 창당과 관련한 자료를 제공하고 조언도 하고 있지만 후보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 전 후보가 '반대세력으로서의 야당'이 아닌 '대안세력으로서의 야당'을 주창하며 전격적으로 신당 창당을 선언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4파전 예상되는 노원병, 안철수의 승부수는?

미국에서 날아온 안 전 후보의 착륙지점은 서울 노원병 지역구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측근인 무소속 송호창 의원을 통해 밝힌 대로 안 전 후보는 귀국 후 노원병 4·24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과 각오, 향후 방침을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도 안 전 후보의 승부수는 트레이드마크인 '새로운 정치'다. 안 전 후보와 측근들은 새로운 정치를 전국적 차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계획 하에 보궐선거 출마지역으로 서울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마시기를 10월 보궐선거가 아닌 4월 보궐선거로 택한 것 역시 정치인으로 살겠다고 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야권연대 내지 후보단일화는 안 전 후보의 이번 선거운동 계획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선과정에서 생긴 소위 '단일화 트라우마' 탓에 또다시 단일화 협상에 함몰되는 일은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침이 야권의 저항을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안 전 후보가 사전 논의 없이 노원병 출마를 선언한 점에 민주통합당은 불쾌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지난 대선과정에서 야권연대의 당사자였던 만큼 노원병 출마를 타진하는 과정에서도 민주당과 미리 논의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미리 논의를 했을 경우 보궐선거가 열리는 서울 노원병, 충남 부여·청양, 부산 영도 등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역구 3곳에 후보를 공천하는 과정에서 야권 차원에서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심 안 전 후보의 입당을 바라고 있던 민주당은 전격적인 노원병 출마선언에 적잖이 마음을 졸이고 있다. 예고 없는 노원병 출마는 곧 신당 창당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철수 신당의 등장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민주당은 당내 비주류의 이탈을 염려하는 듯한 분위기다.

10년째 노원병을 지켜온 이동섭 지역위원장이 일찌감치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공천을 재촉하는 점도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이 밖에 대법원의 삼성 엑스파일 판결로 노원병 지역구를 잃어버린 진보정의당은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의원직을 박탈당한 노회찬 공동대표에게 위로전화를 하긴 했지만 노원병 출마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는 것이 정의당의 주장이다. 아울러 정의당이 올해 초 안 전 후보 측을 향해 우회적으로 불출마를 권유했지만 안 전 후보 측이 이를 일축하고 출마를 선언했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결국 정의당은 노 공동대표의 부인인 김지선씨를 보궐선거 후보로 공천하면서 맞불을 놨다. 정의당은 노동·여성·인권운동가로서 오랜기간 표밭을 갈아온 김씨를 내세워 안철수 바람을 잠재우고 노원병 의석을 탈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의당 관계자는 "최소한 15%는 확보하고 들어가는 선거"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낮으며 조직동원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보궐선거의 특성상 승산이 있다는 것이 정의당의 판단이다.

이처럼 야권이 내부에서 서로 치고받는 사이 새누리당은 내심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다. 야권이 분열하면서 네거티브 선거를 할 경우 염증을 느낀 노원병 주민들의 표심이 여당 쪽으로 흐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위원장인 허준영 전 경찰청장이 이미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고 지난해 초 비대위원으로 활동한 20대 새내기 정치인 이준석씨도 출마 의향을 밝히고 있다. 대선 때 공을 세운 안대희 전 대법관 역시 물망에 오르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 된 안철수 신당

노원병 보궐선거도 큰 관심사지만 정작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이른바 '안철수 신당'이다. 안 전 후보의 신당 창당 선언은 곧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전 후보 측은 지난 대선 선거운동과정에서 정당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무소속인 탓에 국가로부터 정당에 지원되는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했고 각종 선거사무 측면에서 불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에는 준비가 부족하지 않게, 그리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해나갈 것"이란 측근 금태섭 변호사의 최근 발언대로 안 전 후보가 귀국과 함께 신당 창당 작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신당창당 방식 면에서도 기존과 다른 새로운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창당과정에서부터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이른바 '안철수식 정치'를 보여주는 방안이 내부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신당창당 작업에 가담할 인물로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 정연정 배재대 교수를 비롯한 학계 인사들과 송호창 의원, 금태섭·조광희 변호사, 정기남 전 진심캠프 비서실 부실장, 박인복 전 민원실장, 허영 전 비서팀장, 홍석빈 부대변인 등이 거론된다.

안철수 신당이 등장할 경우 야당 간 경쟁구도가 불가피해진다. 나아가 안 전 후보가 노원병에서 당선되면 야권 세력재편에는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안철수 신당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는 평이다. 안 전 후보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지지율 면에서 제1야당인 민주당을 제칠 것이란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되기도 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4~7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239명을 상대로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안 전 대선 후보가 신당을 창당할 경우 어느 정당을 지지할 것이냐' 문항의 응답비율은 새누리당은 37%, 안철수 신당이 23%, 민주당이 11%, 통합진보당 1%, 진보정의당 1%, 의견유보 28%였다.

이달 첫째 주 기준 정당 지지도와 비교하면 새누리당 지지도는 44%에서 7%포인트, 민주당은 21%에서 10%포인트, 무당파와 의견유보자는 32%에서 5%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민주당 지지자와 무당파 중 상당수가 안철수 신당으로 유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풀이됐다. 이 조사 결과를 통해 안철수 신당이 기존 정당구도 재편에 미칠 영향력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 한국갤럽의 설명이다.

이 같은 여론의 반응에 민주당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줄기차게 안 전 후보를 향해 "신당 창당은 안 된다. 민주당으로 입당하라"고 요구해온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 지도부로선 안철수 신당이 실제로 등장할 경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만약 안 전 후보가 창당을 선언한다면 이는 단순한 창당이 아니라 야권 분열의 시발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다가올 10월 보궐선거와 내년 6월 지방선거 등에서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야권지지자들의 표심을 끌어가기 위해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도 크다.

이 때문에 당내 일각에서는 일단 안철수 신당 창당을 지켜본 뒤 향후 흡수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다만 안 전 후보 측의 신당 창당 작업이 그리 빠르게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가시적인 창당 준비는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리기 위해선 5개 이상의 시도당과 각 시도당 별로 1000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 정강·정책과 당헌·당규도 마련해야 한다. 이 때문에 4·24보궐선거까지 창당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분석이 우세다.

결국 안철수 신당이 본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분수령은 노원병 선거가 될 전망이다. 안 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안철수 신당 창당 작업은 힘을 얻을 테지만 만약 낙선할 경우에는 동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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