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우리정부 "춘양이 보자고했더니 방자" 내보낸 북한

남북이 11일 당국회담 수석대표의 ‘격(格)’을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결국 절충점을 찾지 못함에 따라 12일 열릴 예정이던 회담이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시작단계부터 중심을 벗어나 흔들리고 있다.

남북 당국회담이 결국 시작도 하기전에 좌초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회담 수석대표로 내세운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 국장의 격이 우리 정부의 요구에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한의 책임을 묻지 않을수 없다.이번 당국자 회담의 책임자로 내세운 인물이 북한 스스로 약속한 `상급 당국자` 기준에도 어색할 뿐만 아니라 남북회담 역사에서 그의 존재감 자체가 약하기 때문이다.

이어 청와대는 이날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것과 관련해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는 바람직한 남북관계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동북아에서의 팽 당하고 있는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위해 얼마전 중국에 특사를 파견한 북한은 어렵게 접견을 허락한 시진핑 주석에게 화해무드를 조성했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의 안정과 대화를 주문했고 북한은 백기를 들었다.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나 관계개선없이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될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북한은 판단한 것이다. 결국 통 크게 나오던 북한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수석대표의 자격을 두고  '급' 문제제기를 하면서 찬물을 또 끼어 얹었다.

왜 그랬을까? 국제적 고립 등의 문제로 대화국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이 남북 당국회담을 무산시킨 배경에는 대표단 수석대표의 '급'과 관련해 남북한 치킨게임 양상이 벌어지자 북한 내부에서 다시 군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란 분석이 제일 먼저 나온것으로 보고있다.
 
회담의 무산과 관련, 김형석 통일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측이 대표단 파견을 보류한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해 왔다”며 “정부는 일방적인 북한의 입장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김 대변인은 “우리 정부는 통일부 장관을 회담에 수석대표로 내보낼 생각이었으며 북한 역시 이에 상응하는 수석대표가 나와야 한다고 우리는 요구했다”고 했다. 그러나“북한은 비정상적 관행에 따라 권한과 책임을 인정할 수 없는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장관급이라고 통보해 왔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장관급 인사를 파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 역시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통보했다. 이에 북한은 우리 정부가 제시한 수석대표에 불만을 표시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 정부 역시 북한의 고위층 인사가 수석대표로 참여해야 한다고 원안을 고수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평통에는 위원장과 부위원장 여러 명이 있다. 이보다 하위 직책인 서기국장을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통일부 장관과 같은 급 인사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 북한이 당국회담 수석대표로 내세운 문제의 강지영 조평통 서기국 국장은 1956년생으로 김책공업대학을 졸업한 인물이다. 그의 존재는 1988년 남북 학생회담 북측 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처음으로 모습을 공개됐다. 이어 2004년 6ㆍ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 해외공동행사 북측 준비위원, 이듬해 8ㆍ15 민족대축전 북측 준비위 종교분과위원 등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 본부 의장으로 활동하다 2011년 가을 조평통 서기국 국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남북회담 등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다는 전직 통일부 고위관료 출신 K씨는 "(강지영은) 과거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6ㆍ15 공동선언 행사 등에서 뛰어온 인물"로 안다며 "북한 스스로 포괄적 의제 협의를 주장한 이번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로는 전혀 격이 맞지 않는 인물" 이라고 했다.K씨는 "개인적으로 북한이 이번 회담에 진정성이 있다면 최소한 원동연 통전부 제1부부장을 수석대표로 발탁해야 한다"며 "강지영의 발탁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6ㆍ15 공동행사에만 집중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와같은 지적은 {故}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 장관급을 역임한 한 인사도 "북한이 수석대표 격을 가지고 박근혜정부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존재감이 떨어지는 강지영 국장으로는 과연 남북한 대표급 회담이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 고위직 직급이 베일에 싸인 데다가 당과 군 간의 권력 관계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지영 국장의 실제 직급을 정확히 어떤 수준으로 봐야할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부 관계자들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전직 차관급 통일부 관료는 "지금 북한 김정은 체제에서는 당 비서가 인민군 대장보다 실질적인 서열이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기국 국장을 장관급으로 주장하는 북측 논리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평통 위원장과 복수의 부위원장 밑에 여러 명의 국장이 있는 만큼 우리 정부의 국장급 정도로 봐야한다는 의견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반면 과거 장관급 회담에 수석대표로 나선 내각책임참사가 서기국 부국장을 대동하고 나온 경우가 자주 있었던 만큼, 내각책임참사와 서기국 국장을 비슷한 위상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남북한 간에 동급의 직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대남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은 남한의 통일부장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급이다. 북한이 수석대표로 삼으려던 조평통 서기국 국장은 남한의 통일부 장관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급이지만 남한의 통일부 차관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급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은 이번 당국회담 밀당에서 수석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얼마나 가까운 인물이냐,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냐에 따라 특사 선정에 신경을 썼을 거라는 분석이다.

앞서 북한의 통전부장이 수석대표로 나왔을 때는 남한의 '실세'가 대표로 나왔기 때문이다. 2000년 9월 김용순 당시 통전부장이 방문했을 때 상대는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인 임동원 국정원장이었다. 김양건 통전부장이 2007년 방문했을 때는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김만복 국정원장의 공동 초청 형식으로 이뤄졌다.이런 것들을 분석해 보면 북한에서 통전부장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 통전부장에 비해 외교안보 부처의 한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류길재 장관은 자신들의 기대에 못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류 장관이 이 정부 '실세'가 아니라고 파악을 했고 또 북한 입장에선 류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과 굉장히 가깝다는 인상도 못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정부가 실무접촉의 미숙했던 점을 지적했다. "통전부장의 위상은 우리 기준으로 따진다면 '부총리급'이라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김양건 통전부장이 회담 단장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을 했다면 그가 이번 당국회담 수석대표로 참여하지 않으면 장관급회담을 개최하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우리의 주장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북한이 그 점에 동의할 때 실무접촉에 나섰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을 의식해 남측에 대화제의를 했는데, 이후 나온 미중의 공통입장 역시 '북한의 비핵화'였다"며 "남측과의 만남에서 다시 한번 비핵화 때문에 목이 졸리는 상황을 맞고 싶지 않았고, 따라서 판을 헝클 필요성을 느꼈을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회담에 참여하는 우리정부의 대표를 두고 회담을 무산시킨점은 어쩌면 그들만의 고도의 전술인지도 모른다. 북한은 과거에도 당국자회담을 추진하면서 실무자들이 이유없이 서류를 내던지고 문을 밖차고 나간적이 있다.

2011년 2월 고위급 군사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그것이다. 당시 북한은 고위급 군사회담을 먼저 제안하며 이와 함께 예비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 이틀간 진행된 협상에서 우리 측은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첫 당국대화인 만큼 북한의 사과와 책임있는 조치를 본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북측 대표단은 예비회담 첫날 별다른 비난 없이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했다. 둘째 날에도 오전회의에 앞서 "오늘은 밤을 새더라도 반드시 결론을 내리자"며 웃으며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태도가 돌변했다. 북측은 서류파일을 회담 테이블에 내던지며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은 남한의 책임"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더니 회담장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로 이번에 무산된 남북당국회담까지 2년 4개월간 남북의 당국자들은 얼굴을 맞대지 못했다.

이번 남북당국자 회담이 무산된것을 두고 북한은 모든 책임을 우리 정부에게 공을 돌리려 할 것이다.남북회담이 결렬된것은 박근혜 정부의 강경한 대북 정책에 기인(起因)한다고 할수 있다. 이는 과거 굽힐줄 몰랐던 34년전 아버지 故박정희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닮은점이 많다. 아버지 故박정희 대통령은 남북회담을 추진할때 대표자 선정과 관련해 실무자들에게“당당히 格 따져라”고 지시했다.

1979년 2월 15일. 故박정희 전 대통령은 남북 당국회담을 이틀 앞두고 관련자 준비 회의에서 “한마디 성명서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당당히 대좌(對坐·마주 앉음)해 조리 있게 따지라.”며 이같이 지시했다.

당시 회담은 그해 1월 19일, 박 전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사실상 중단됐던 남북 대화의 복원을 통해 시기, 장소와 같은 조건이 없는 남북 당국자회담을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동훈 당시 국토통일원 차관이 11일 동아일보에 제공한 회의 자료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이 공식 채널인 남북조절위원회가 아닌 정체불명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 대표를 회담 파트너로 참석시킨 데 대해 강력히 문제제기를 하라고 지시했다. 회담 파트너의 ‘격(格)’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현 인식과도 비슷한 면으로 보인다.

故박 전 대통령은 “조국전선이 무슨 단체인가를 따지고 이는 북한이 7·4성명을 무효화하겠다는 속셈이 아닌지를 중점적으로 추궁하라”며 “그들(조국전선)은 책임 있는 대화의 상대가 아님을 공개 석상인 대좌에서 야무지게 따져 내외에 분명히 알리라”고 지시했다. 그는 “춘향이(조절위 부위원장)를 나오라고 했는데 방자(조국전선 대표)가 나온 꼴인 그들의 무책임한 기만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공박(攻駁)하라”며 “성명은 그 뒤에 내도 늦지 않다”고 지시했다. 박 전 대통령은 얼토당토않은 상대가 나오는 것을 향단이도 아닌 방자에 빗댄 것으로 보여 대북에 관해서는 단호하고 강경한 입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기본 입장은 당국 간이라면 언제 어디든지 갈 용의가 있음을 밝히라. 회담 장소에는 너무 구애될 것이 없다”며 “중립국감독위원회에 우리 측이 가서 대좌를 할 수도 있다”고 대화 의지를 비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실무진에게 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당부한 점도 눈에 띈다. 그는 “대좌 후 처음부터 시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 포용성 있게 대하며 우리의 우위와 자신감을 최대한 보이도록 하라”면서 “악수도 하고 담배도 권하며 (북측이) 욕설을 하더라도 점잖게 대응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 열흘 뒤인 1월 29일 “북한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며 유의해야 할 북측의 함정 7가지를 친필로 정리해 회담 실무진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역시 동 전 차관이 제공한 친필 문서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이 회담에서 미군 철수나 연방제 채택을 결의하는 등의 통일전선전략을 시도할 것이며, 우리 측의 전력을 증강하는 계획을 중단시키거나 미군 철수를 촉진하는 평화 공세를 펼 수 있다고 여겼다. 또 7·4공동성명 합의기구인 남북조절위를 무력화하고 무리한 요구를 통해 향후 대화가 중단될 때 책임을 전가할 것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계속해서 동 전 차관은 “시대가 많이 흘렀지만 그시절 우리정부가 대응했던 전략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대북정책에 대해 참조할 만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실제 1979년 북한이 보인 행태는 34년이 지난 지금과 비슷한 점들을 발견할수 있다.

북한은 박 전 대통령이 조건 없는 남북 대화를 제안한 지 나흘 뒤인 1월 23일 당국 간 회담이 아니라 정당과 사회단체 대표로 구성된 ‘전민족대회’ 소집을 역제안했다. 이어 2월 5일 ‘조국전선 중앙위’의 명의로 남한에 ‘민족통일준비위’의 발족을 제의했다. 조국전선이라는 단체와 민족통일준비위는 정체불명의 단체와 회의체였다. 북한은 민족통일준비위에 당국과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국내외 정당, 단체 대표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2월 12일 7·4공동성명 발표 이후 당국 간 공식 협의기구로 운영 중이던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여하는 회담을 다시 제안했다. 북한의 조국전선을 책임 있는 당국으로 인정할 수 없으니 남북조절위 회의를 판문점에서 갖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인 13일 북한은 일방적으로 “민족통일준비위 협의를 위해 17일 판문점에 조국전선 대표를 파견할 것이며 남한에서 어떤 명의의 대표가 나오든 민족통일준비위의 연락대표로 간주한다”고 발표했다.

그후로부터 34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1일 정부 간 대화를 제의했으나 북한은 남측 민간 대표들을 개성에 초청하거나 개성공단 기업인들을 방북 초청하는 등 정부 간 대화는 회피하고 민간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이는 북한에 우호적인 민간 기업이나 단체를 활용해 남남갈등을 유발하거나 선전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형적인 행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북한이 회담 대표의 급을 놓고 장난을 치는 것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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