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금융위기는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및 그와 관련된 파생금융상품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 파장은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가로 확산되면서 세계경제를더욱 깊은 불안과 침체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특히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가에 투자되었던 외국자본이 대규모로 이탈하는 과정에서 이들 나라의 통화가치가 급락하고 금융시장은 붕괴 직전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2008년 하반기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아이슬란드, 파키스탄, 라트비아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Stand-by Arrangement)의 지원을 받았으며, 2009년 들어서는 벨로루시가 이 대열에 새로 합류했다.

이러한 대규모 외자 이탈 흐름에서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2007년 62억 달러 흑자였던 자본수지가 금융위기가 현실화된 2008년에는 국제수지 통계가 작성된 이래 가장 큰 규모인 509억 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이 과정에서 원화 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달러당 1,513원까지 상승했다.더 나아가 금융기관들이 단기외채를 상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함께 국가부도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이번 금융위기는 저금리 및 금융혁신에 기반해서 이루어진 과도한 자산가격 상승과 차입의존 구조가 해소되는 과정으로 볼수 있다. 하지만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에는 외국자본 이탈에 대응하면서 자국 경제 및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글에서는 최근 글로벌금융위기 상황에서 국내 금융시장 안정성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외국자본의 흐름과 그 향방을 살펴보고, 그 부작용을 완충하는 방안으로서 외환보유고의 위상을 검토해 보고자 한다...진석용 책임연구원 , 배민근 선임연구원

외국자본 이탈 양상

자본수지의 구성요소 가운데 주식 및 채권투자와 은행차입의 형태로 국내에 투자된외국자본주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면, 국내시장에서의 외국자본 이탈은 2008년 9월이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2008년 3월의 베어스턴스 매각과 7월 미 국책 모기지 업체의 유동성 위기를 거치면서 점차 고조되어 가던 금융시장불안이 9월 리만 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금융기관의 연쇄파산과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붕괴 위기로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기관의 파산위험이 최고조에 달한 10월에는 월별 기준으로는 가장 큰 규모인 293억 달러 규모의 외자이탈이 발생했다.

금융위기가 현실화된 2008년 9월에서 연말까지만 보더라도 국내 금융시장에서빠져나간 외국자본은 모두 69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2007년 국내총생산(GDP)의10.2%에 해당하는 규모로, 외환위기가 발생하던 당시인 1997년 9월~12월 사이 4개월 동안의 유출액 181억 달러(IMF 구제금융 유입액 제외, GDP의 5.1%에 해당)와 비교하면 절대규모는 약 4배 가까이, 그리고 경제규모 대비 비중은 약 2배로 늘어났다.

내역별로 보면 외환위기 당시에는 차입자금이 외국자본 이탈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2008년 하반기에는 주식과 채권들에 대한 포트폴리오 투자자금의 비중 또한 크게 늘어났다. 외환위기 이후 언제든지 시장에서 즉각 팔 수 있는 유가증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자본의 이동성이 과거에 비해 더욱 높아졌으며, 최근과 같은 금융위기 상황을 맞아 외국자본이 국내시장에서 이탈하는 규모와 속도 또한 더욱 크고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유형별 외국자본 유출입 전망

외국자본의 흐름이 2009년에는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는 자본이탈을 촉발한 근본 원인의 진행 상황을 통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통상 외국자본의 이탈에 대해서는 한 나라의 거시경제나 금융시장 상황의 악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 왔다. 즉경상수지 적자의 지속이나 국내신용의 과도한 팽창, 통화 및 재정정책 실패 등이 발생하는 경우 그 나라에 유입되었던 외국자본의 일시적인 대량 이탈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08년 하반기 신흥경제권 전반에서 나타난 외자 이탈은 이들 자체의 문제점보다는 선진국 금융시장의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나타난 자산 축소(디레버리지) 및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2007년까지 지속된 세계경제의 호황기에 선진국 금융회사들은 낮은 금리에 투자재원을 조달함으로써 투자규모를 크게 늘리고 자기자본에 대한 수익률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사태로 대규모 투자손실이 발생하면서 이러한 레버리지에 기댄 투자구조는 역으로 금융회사들의 손실과 유동성 부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선진국 금융회사들이 유동성 확보 및 재무건전성 유지를 위한 자산매각과 레버리지비율 조절에 나서면서, 위험자산 보유 비중을 줄이고 현금이나 국채 등 안전자산 보유를 늘렸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에 비해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여겨지는 신흥시장투자자산을 매각하면서 신흥경제권 전반에 걸친대규모 외국자본 이탈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향후 외국자본의 추가 이탈 여부는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 규모의 증가와 그로 인한 전세계 금융기관들의 디레버리지의 진행 정도에 달려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009년 1월을 기준으로 전세계 금융기관들이 입은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은 이미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여기에 최근 IMF가 이번 금융위기 관련 금융기관 손실이 모두 2조2천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어 상당한 규모의 추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들의 디레버리지 또한 더 진행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주식투자자금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는 2005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데,그 원인은 상당히 달라진 것으로 생각된다. 즉 2007년 상반기까지 나타난 주식투자자금 유출의 주된 동기가 투자 차익 회수 차원이었던 것에 반해, 2007년 하반기부터는 현금 확보와 안전자산 비중 확대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이처럼 꾸준한 대규모 이탈에도 불구하고 외국자본의 주식시장 내 영향력은 여전히 큰 편이다. 2008년 약 35조원 규모의 순매도를 기록했지만 시가 총액을 기준으로 한 외국인 비중이 여전히 29%에 달하고 있어 외국자본의 대규모 추가 이탈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주가 하락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반적인 상황으로 볼 때 당분간 외국자본이 국내 주식시장으로의 본격적으로 복귀하리라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안전자산 선호 경향이지속되면서 2008년과 같이 신흥시장에서의 외국자본 이탈, 전세계 주식형 펀드의 자금유입 감소 추세 등이 지속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경기 침체에 따라 수출의존도가 큰 한국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우려되는 점도 외국자본의 국내 복귀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하나이다. 물론 최근 외국자본은 2008년 11월까지 5개월간 지속된 순매도를 마무리하고 12월 이후 2개월 연속 순매수를 기록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최근 움직임은 외국자본 유입의 추세적 전환이라기 보다 단기적인 포트폴리오 재분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외국자본의 추가 이탈이 발생하더라도 그 규모는 2008년에 비해 상당 폭 줄어들 여지가 있다. 우선 수년 간 계속된 외자 유출 결과 외국인의 주식수 기준 보유비중 16%는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 중에는 쉽게 이탈하기 힘든 경영권 보유 목적의 지분투자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2009년에는 세계 주식형 펀드의 투자 비중에 큰 영향을 주는 MSCI(Morgan Stanley CapitalInternational) 지수의 선진국 지수에 한국 주식시장이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외국자본의 추가 유입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국 기업들의 재무적 건전성이나 시장지위 또한 외환위기 당시보다 많이 향상되었다. 투자 수익성 측면에서보더라도 주가 하락과 환율 급등이 동시에 나타나서 한국 주식시장의 수익성이 과도하게 저평가되었다는 의견도 많다. 따라서 2008년 하반기 리만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과격한 국제 금융시장 전반의 붕괴 위험이나 원화 환율의 급변동만 없다면 외국인의 주식자금이 유출되더라도 그 속도나 규모가 2008년보다 완화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채권투자자금
2007년 초까지 5조원(전체 채권시장의 0.5%) 남짓한 규모에 머무르던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가 2007년 중반 이후 크게 늘어난 데에는 국채 및 통화안정채권 같은 안전자산과 통화스왑(CRS) 등 파생금융상품을 결합한 재정거래의 확대가 큰 기여를 했다. 금융위기 발생 이전까지 외국인의 국내채권에 대한 매수세는 CRS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할 때마다 크게 늘어났다. 그 결과 외국인 보유잔액이 2008년 5월말 기준 55조원을 넘어서면서 2007년 초에 비해 무려 10배나 늘어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향후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자금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른바 ‘9월 위기설’이 파문을 일으켰던 2008년 9월에도 외국인은 국내 채권시장에서 순매수를 나타냈다. 하지만 금융시장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던 10월 이후에는 순매도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약 2%p 내외의 무위험 수익률이 보장되어 있는 상황에서 CRS 금리가 다시 한번크게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로부터의 자본조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투자가 크게 위축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향후에도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면서 외국 금융기관 및 투자자들이 레버리지를 축소하고 현금성 자산을 늘리려는 성향을 지속하는 한, 무위험 수익 기회유무와는 관계없이 외국인의 국내채권에 대한투자 또한 추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국내 정책금리 인하 기조가 좀더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과의 금리 차가 점진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도 국내 채권시장에 대한 투자 매력도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요국의 정책금리가 거의 제로 수준으로 인하되고있는 상황에서 현재(2009년 2월 12일 기준)2.0%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또한 최근 경기 및 자금시장 사정에 따라 좀더 낮은 수준으로 인하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재정지출이 상당 폭 확대되는 데다 정부가 재정의 조기집행에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어 국고채 등의 발행물량도 상반기 중에 크게 늘어 국채가격의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차입자금
해외 차입 부문에서는 2006년 이후 만기구조의 단기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왔다. 차입외채 가운데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외환위기를 경험한 직후인 1998년 4분기말의 경우 31.8%까지 낮아졌지만, 그 후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금융위기가가시화된 2008년 3분기 말에는 전체 차입 외채 중 단기 차입금의 비중이 80%를 초과함으로써 향후 금융시장 상황이 악화될 경우 단기적으로 이탈 가능한 자금의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나 있는 상황이다.

우리 금융시장에서 해외 차입자금의 본격 이탈이 발생한 것이 작년 10월부터였기 때문에 아직 충분히 진행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향후에도 사전에 정해진 만기 일정에 따라 차입자금의 이탈이 좀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해외로부터의 차입자금의 유입 추이를 분기별로 살펴보면, 2008년 1분기와 3분기에 순유입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09년에도 1분기와 3분기에 차입자금에 대한 상환압력이 다른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06년 이후 급증했던 조선업체 등의 환위험 헤지 과정에서 유입되었던 대외채무는 수출대금이 유입되면서 점진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는 최근 들어 미국 외에유럽이나 일본 금융기관들의 위험도가 더욱 부각되면서, 이 지역으로부터유입된 차입자금에 대한 만기연장이 상대적으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외국자본 유출 완화되겠지만, 추세 전환은 아직 일러

최근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순매수 경향이 나타나는 등 그간의 기록적인 외국자본이탈 국면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외국자본의 유입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금융위기가 2008년 10월을 정점으로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 아니냐는 시각과 함께 특히 작년 하반기 이후 나타났던 원화환율의 가파른 절하가 향후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강력한 투자유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기지 및 관련 파생상품에서 투자손실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실물경제침체 또한 더욱 심화되고 있어 국제 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단기간 내에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외국자본의 이탈 또한 추세적으로 중단된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게다가 러시아 및 동유럽 국가들의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데다, 전세계 교역감소의 영향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향 조정되는 등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가의 경제여건이 계속 악화되고 있어 신흥시장 전반으로의 본격적인 자본유입을 낙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이동성이 가장 빠른 주식 부문이 2008년 말 이후 최근으로 접어들면서 이탈 추세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채권이나 차입부문에서는 당분간 자본이탈이 좀 더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주식 부문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난 2007년 하반기부터 큰 폭의 유출이 발생하면서 자본이탈 현상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일어난 데 반해, 채권이나 차입 부문은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현실화된 작년 4분기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자본이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투자 유형에 따른 이러한 속도 차이로 인해 최근 주식시장에서는 자본 이탈이 완화되고 있는반면, 채권 및 차입 부문을 통한 자본이탈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디레버리지가 진행되는 한 외국자본의 추가 이탈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그 규모는 향후 미국 등 주요국 정부가 마련하는 구제금융안과 제로금리 및 양적 완화 정책의 효과에 의해 상당 부분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시사점

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많은 신흥시장 및 개발도상국가들이 외국자본의 급격한 이탈로 인한 금융시장 및 경제 전반에 걸친 불안정성의 확대를 경험했다. 이로 인해일부 국가의 외채위기가 현실화되고 선진국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도 위축됨으로써,신흥경제권의 불안이 다시 세계경제 전반의 침체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물론 신흥경제권 국가들이 지닌 구조적 불안요인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2000년대 들어 세계경제가 경기침체 없는 호황을 지속하고, 저금리에 기반해 풍부한 유동성이 국제금융시장에 공급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나라에서 경상수지 적자의 지속, 국내 신용의 과도한 팽창, 투자과열로 인한 외국자본 유입의 과다 등의 불안요인들이 형성되어 왔다.

외환보유액에 대한 의존에는 한계
이러한 상황에서 대외여건의 악화에 대한 안전판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은 외환보유액이다. 일반적으로 외환보유액을 축적하는 동기에 관해서는 정치인 및 정책담당자의 중상주의적 성향이나 수출경쟁력 제고 노력 등 다양한 설명이 이루어져 왔다. 아울러 근래에는 국가간 자본이동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경상수지 악화나 자본이탈로부터 자국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험’으로서의 성격 또한 크게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사상 초유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이번 금융위기 상황을 자국의 외환보유액만으로 방어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중국이나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가용 외환보유액만으로 자본이탈에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경상수지 적자와 외국자본 이탈을 동시에 겪는 경우에는 외환보유액이 충분한 수준인가를 둘러싼 우려와 불안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또 위기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짧은 시간 내에 늘리는 일 또한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1980년 이후 월별 외국자본 이탈 규모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2008년 10월과 11월, 12월에 발생한 외국자본 이탈의 규모는 경험적 확률을 기준으로 발생 가능성 5% 이하에 해당하는 극히 드문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자본이탈 상황까지 대비한 외환보유액 축적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상당한 비용을 초래할 것으로 생각된다.

자본이동 급변에 대응하는 장치와 국제협력 필요
이러한 측면에서 향후에는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가 처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처럼 국가간 자본이동의 규모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상황에서 외환 및 외화자금 부문을 통한 외부충격의 확대는 향후에도 재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영미식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되면서 금융 부문의 개방과 자유화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금융시장의 이러한 급속한 개방화가 금융위기 상황에서는 우리 경제를 펀더멘탈 이상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EU 가입 등을 통해 서유럽의 선진권 자본시장에 빠르게 접근해 간 동유럽 국가들이 최근에는 신흥경제권 국가들 가운데 외국자본 이탈 문제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외국자본의 이탈 속도나 규모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국가간 협의를 거쳐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외환보유액의 일부 공동 운용, 통화스왑 상시화 등 개도국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국가간 협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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