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동양 사태’의 재발을 막고 대기업 부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지 않는 기업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사실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성실하게 이행한 기업에 대해선 금리 인하나 대출 절차 간소화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은 부실 우려가 있는 주채무계열 기업이 주채권은행과 경영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제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8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어야 하는 기업이 약정 체결을 거부한다면 시장 정보를 공개하는 등 간접적으로 압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약정 체결을 거부한 기업이 회사채 등을 발행할 때 ‘이 회사는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거부한 회사입니다’란 내용을 공시하도록 하고 일반 투자자에 판매할 때는 이런 내용을 알리도록 하는 식이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신용공여액이 많은 그룹을 주채무계열로 선정해 관리한다. 주채권은행은 이들 그룹의 재무구조를 평가해 재무구조가 취약하다고 판단하면 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통해 정상화 방안을 마련한다.

지금은 재무구조 취약 그룹이 주채권은행과 약정 체결을 거부해도 마땅히 대응할 방법이 없다.

지난 2010년 현대그룹은 약정 체결 대상으로 선정됐으나 체결을 거부했다.

당시 주채권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은 산업·신한·농협은행 등 다른 채권은행과 채권은행협의회를 열고 신규 대출 금지, 만기 연장 거부 등 공동제재를 결의했다.

그러나 현대상선등 현대그룹 10개 계열사는 법원에 공동제재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채권단 공동결의가 담합에 해당한다며 현대그룹 손을 들어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지 않는다고 대출을 제한할 수는 없지만 공시는 강제할 수 있다”며 “특히 약정 체결 여부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중요 정보여서 공시에 포함해도 문제 될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성실하게 수행한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의 약정 구조는 은행의 건전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기업이 받는 혜택은 거의 없다.

국책은행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웅진홀딩스나 STX의 사례를 보면 선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중요하다”며 “약정을 잘 이행한 기업에는 금리 인하나 대출 절차 간소화 등의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채무계열에 선정됐던 웅진그룹과 STX그룹이 작년부터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금융당국은 주채무계열 대상 기업을 늘리고 재무구조개선약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 개선을 준비 중이다.

웅진그룹은 주채무계열에 포함됐지만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지 않고 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STX그룹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이행하는 도중에 무너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주채무계열 선정 그룹 수가 많이 줄었는데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닌지, 약정이 실효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선정 기업 수를 늘리는 쪽으로 연말까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주채무계열은 전년 말 기준 금융기관 신용공여 잔액이 그 전년 말 금융기관 전체 신용공여의 0.1% 이상일 경우 선정된다.

금융당국은 이 기준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등 시장성 여신은 주채무계열 선정에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2009년 45개에 달했던 주채무계열 선정 그룹 수는 작년 34개에 이어 올해 30개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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