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랑부부’의 명창 신영희가 소리를 짠 멜로 창극


선보이는 공연마다 매진사례를 기록하고 있는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이 2014년을 신작 <숙영낭자전>으로 연다.


2월 19일부터 23일까지 달오름극장에 오르는 이 작품은 없어진 판소리 일곱 바탕을 토대로 한 창극을 만들고자 하는 ‘판소리 일곱 바탕 복원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전생에 못다 한 사랑을 이승에서 뜨겁게 나누는 숙영낭자와 선군, 선군을 사랑하지만 수청마저 거절당해 앙심을 품은 노비 매월을 중심으로, 사랑과 욕망의 균형을 잡지 못해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을 함께 이끌어온 25년 예술지기로서 창작뮤지컬 <블루사이공>,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등 한국 공연사에 큰 족적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온 김정숙 작가와 권호성 연출이 참여했다. 특히 두 사람은 ‘숙영낭자’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난해 연극 <숙영낭자전을 읽다>를 초연했고, 세계적 공연축제인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2013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연달아 초청되며 호평을 얻어냈다.

원래 ‘숙영낭자전’은 책도 맘 놓고 읽을 수 없었던 조선후기 부녀자들이 남들 눈을 피해 읽던 연애소설이었는데, 인기가 많아 판소리로도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판소리로 불리지 않으며 창극화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 공연의 소리를 짜는 작창(作唱)은 80년대 개그프로그램 ‘쓰리랑부부’ 출연으로 유명한 신영희 명창이 맡았다.

국악인으로서는 드물게 일찌감치 연극무대에 섰고, 예능활동을 하며 대중적 감각을 뽐내온 데다 지난해에는 판소리 ‘춘향가’의 보유자로 지정되어 그 예술성도 공인받은 터라 이번 창극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보여줄 것이다. 주요 배역은 국립창극단 변화에 앞장서온 젊은 얼굴들이 맡았다. 숙영 역은 김지숙과 박애리, 선군 역은 이광복과 김준수, 매월 역은 정은혜와 이소연이 연기하고, 극중 책 읽는 여인으로 서정금이 출연한다. 창극 <숙영낭자전>은 리모델링한 달오름극장에 올라가는 첫 번째 공연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여인네들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한 멜로

조선시대의 멜로물로 ‘춘향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상계와 인간계를 넘나들며 사랑과 욕망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작자 및 연대 미상의 소설 「숙영낭자전」도 있다. 18세기나 19세기 초에 창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조선후기 평민층과 양반가의 부녀자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던 애정소설이다.

그 인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이 소설에 곡조를 붙인 ‘숙영낭자타령’이란 판소리가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당시의 국창 정정렬이 소리를 만들어 불렀고, 20세기 최고의 명창으로 꼽히는 고 박동진 명창은 1970년대에 완창한 바 있다. 그중 정정렬의 소리를 박녹주 명창이 이어받고, 또 이 소리가 박송희 명창에게 이어졌다.

현재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활약 중인 박송희 명창은 1988년 『박녹주 창본』에 그 ‘숙영낭자타령’의 사설을 기록해 남겼다. 또 박 명창은 1995년 ‘숙영낭자타령’을 완창했고, 그 실황을 녹음해 음반으로 냈다(1997년 발간). 하지만 현재 이 소리는 판소리판에서 불리지 않는다. 게다가 다른 판소리들에 비해 다른 예술장르로 만들어진 적도 거의 없다. 국립창극단이 창극화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창극 <배비장전>에 이어 ‘판소리 일곱 바탕 복원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숙영낭자전>은 작품의 배경인 조선시대에 감히 상상하기 힘들었던 과감한 면모가 있어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본만 71종에 달하지만 대개의 줄거리는 이렇다.

손이 귀하디귀한 양반가의 외아들로 태어난 선군은 선녀 숙영낭자가 나온 꿈을 꾼 뒤에 부모가 정해준 배필을 거부하고 신선이 산다는 옥연동까지 밤길을 달려 숙영낭자를 만난다. 그리고 3년을 기다려달라는 숙영의 청을 거절하고 그녀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러나 유교적 가치관과 봉건적 사고에 젖어있는 선군의 아버지는 숙영낭자를 인정할 마음이 없어 폐백조차 받지 않는다. 집안이 인정하지 않는 며느리인 것이다.

해가 가고 달이 지며, 둘 사이에 아이가 둘이나 태어나도 숙영을 향한 선군의 사랑은 얼마나 뜨거운지. 숙영을 만나기 전 글공부에 매진했던 선군은 숙영과 떨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과거에 응시할 생각조차 갖지 않는다. 결국 과거를 보긴 하지만 그것도 시부모의 눈치가 보인 숙영의 권고에 마지못해 상경한 것이고, 그 잠깐도 숙영과 떨어지기 싫어 밤중에 몰래 집안으로 월담해 숙영과 동침하기도 한다. 그런 선군과 숙영을 질투한 하인 매월은 숙영이 외간남자와 동침한다는 거짓말을 퍼뜨려, 결국 숙영을 자결하게 한다.

입신양명이나 효의 실천보다 숙영에 대한 사랑만이 중요한 선군은 조선조의 지배적 가치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작품을 두고 ‘양반가의 자제 선군이 천상세계의 존재인 숙영을 빌어서 기성세대의 사회 체제를 섬세하게 비판하는 작품’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작품의 인기요인 또한 새로운 사회체제를 꿈꾸는 이들에게 환상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 이 작품을 바라보는 제작진의 키워드는 ‘사랑과 욕망’이다. 사랑한다고, 그러니 나를 사랑하라고 다그치는 선군이나, 나도 사랑을 갖고 싶다고 몸부림치는 매월이나, 사랑한다고 욕망에 생명을 내어주고야 마는 숙영이나 ‘사랑과 욕망’의 균형추를 잡지 못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균형은 곧 ‘숙영의 자결’이라는 극단적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어느 누가 사랑과 욕망의 선택 앞에서 항상 당당할 수 있으랴. 비극으로 끝나나했던 이 작품은 숙영낭자가 환생해 선군 및 두 자녀와 함께 하늘로 귀향하는 해피엔딩을 통해 그릇된 선택조차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인생의 경험이었다고 보듬어준다.

 “(김)성녀야, (안)숙선아” 부르는 ‘신대빵’ 신영희 명창의 첫 작창

1988년부터 1990년까지 KBS <쇼! 비디오자키> 중 ‘쓰리랑부부’란 코너에 출연해 흥겨운 우리 가락으로 ‘순악질 여사’ 김미화와 김한국의 익살연기에 흥을 더했던 신영희(사진, 1942년생) 명창이 자신의 이름을 건 첫 번째 작창을 한다. 신 명창은 이 시대 최고의 명창으로 이의가 없는 안숙선 명창(현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과 국립창극단의 변화발전을 이끌고 있는 주역 김성녀 예술감독과 함께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맏언니는 신 명창. 특히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후배들과 지내 ‘신대빵 선생’이라 불렸다고 한다.

창극 <숙영낭자전>에 임하는 지금도 “성녀가 말이지, 숙선이가…” 호탕하게 부르는 모습을 통해 그 과거(?)를 짐작케 한다. 이런 면모는 무대 위에서는 존재감으로발휘되었다. 신 명창은 수많은 창극 작품에서 활약했고 연극무대와 방송에도 진출, 특유의 입담과 끼로 그만의 입지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방송활동은 일반인들이 국악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 명창은 지난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의 보유자로 지정되어, 대중적 활동과 동시에 끈질기게 매진해온 60여 년 소리인생의 큰 경사를 맞았다.

국립창극단 단원 시절인 1979년 연극배우 백성희 선생(현 국립극단 원로배우)이 출연한 연극 <무녀도>와 창극 <강릉매화전>의 작창 등을 했지만 본인 이름 석 자를 걸고 국립창극단 공연의 작창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명창은 이번 작품에서 장면별 상황에 맞는 느낌을 담은 소리에 남녀의 음역대에 맞춘 효율적인 작창을 지향한다. 창자도 관객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창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리의 강약과 완급조절에 힘을 써 관객이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방송활동을 통해 쌓은 대중적 감각, 연극 무대에서 익힌 에너지 조절 능력이 발휘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창작’으로만 모십니다! 25년 예술지기 김정숙과 권호성

이 작품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김정숙과 권호성은 30년이 넘은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는 창작극계의 명콤비다. 25년 전인 1989년 극단 ‘모시는 사람들’을 함께 창단한 이들을 번안극이나 번역극은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 수많은 창작 뮤지컬과 창작 연극을 만들었다. 그 결과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백상예술상 대상 ․ 작품상 ․ 희곡상 3관왕 등 총 6개의 수상경력이 그 작품성을 입증하는 창작뮤지컬 <블루사이공>을 만들어냈다. 2005년 초연 이후 33만 명의 관객과 만난 스테디셀러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도 이 둘의 합작품.

이 작품으로 김정숙 연출은 2003년 동아연극상 희곡작가상 등을 받았고, 탄탄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희곡은 지난 2009년 중학교 1학년 및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현재까지 우리의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 이들은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사랑한 콤비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연극 <몽연>은 2008년과 2009년에 영국에 다녀왔고, 지난해 초연한 연극 <숙영낭자전을 읽다>는 같은 해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공연되며 세계에서 몰려든 관객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창극을 만들기는 처음인 두 사람이지만, 그 텍스트가 본인들이 1년 넘게 매달려온 ‘숙영낭자’의 이야기이고, 음악적으로는 뮤지컬 작업을 하며 다져진 내공이 있어 첫 창극 작업에도 공연계 안팎의 기대가 쏠리고 있다.

‘책 읽는 여인’이 들려주는 이야기

「숙영낭자전」이 공연계 안팎에서 자주 언급된 것은 김정숙 작가와 권호성 연출이 연극 <숙영낭자전을 읽다>을 2013년 1월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초연하면서부터다. 이 연극에서는 조선시대 규방의 여인들이 읽는 연애소설로서 「숙영낭자전」이 사용된다. 늦은 밤까지 바느질을 하던 규방 여인들이 「숙영낭자전」의 이야기 밥을 서로 꼭꼭 씹어서 나눠먹는 것.

여인네들이 숙영이가 되어 선군도 만났다가 매월이도 되면서 고단한 심신을 달랜다는 내용의 이 연극은 같은 해 8월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도 다녀왔고, 10월에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도 초청되며 1년 내내 호평받았다. 연극 <숙영낭자전을 읽다>가 「숙영낭자전」의 내용보다 그것을 읽는 공간과 여인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창극 <숙영낭자전>은 소설의 이야기를 극으로 보여준다.

창극에서도 ‘책 읽는 여인’이 등장한다. 통상 창극에는 극의 해설자 역할인 ‘도창(導唱)’이 있는데, 이를 변형한 것이다. 마치 관객에게 책을 읽어주는 조선후기 이야기꾼인 전기수(傳奇叟)에 가깝다. 책 읽는 여인을 통해 관객은 ‘극장에 공연을 보러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며, 고소설의 생경함도 느낄 것이다. 소리를 하면서 책도 읽는 이 여인은 점차 극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면서 관객도 함께 극 속으로 빠져들도록 이끈다.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에게 회자된 이야기가 오늘날의 여자들에게도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했던 극작가 김정숙. 그는 연극 <숙영낭자전을 읽다>를 통해 그 유효함을 확인했고, 그를 바탕으로 창극 작업에 임하고 있다고 한다. 연출 권호성은 ‘소리’를 통해 이 작품에 창극의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하며, 마치 일일연속극처럼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연출해 과거 우리 조상들이 이 작품을 보며 느꼈던 그런 즐거움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엎치락뒤치락 주역 경쟁하는 젊은 피들 총출동

창극 <숙영낭자전> 안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숙영, 선군, 매월 역으로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젊은 배우들이 나섰다. 숙영 역은 지난 15년간 국립창극단의 대표 여배우로 활약해온 김지숙과 박애리가 연기한다. 두 사람은 출중한 소리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남다른 미모까지 겸비해 창극 <춘향>의 춘향, <청>의 심청역 등의 주역을 도맡아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현숙하고 신묘한 여인 숙영낭자였다가 선군에게 사랑받는 아내로, 시부와 하녀 매월로부터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등 굴곡이 큰 인물 숙영낭자 역을 맡았다. 특히 김지숙은 오랜만의 주역에 복귀하는 셈. ‘형 만한 아우 없다’는 속담을 확인시켜 줄지 새삼 기대가 된다. 선군 역으로는 훈남 이광복과 김준수가 나선다.

이광복은 객원 신분으로 국립창극단의 창극 <춘향>의 이도령 역과 창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묘 역 등을 맡으며 안정적인 소리와 연기를 선보였었다. 2013년 국립창극단의 정식 단원으로 입단한 이래 주인공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에 그보다 훨씬 어린 김준수는 같은 때 입단했으나 <메디아>의 이아손, <배비장전>의 배비장 역 등을 맡아 어린 나이에도 묵직한 존재감을 선보여왔다.

이 두 훈남 배우가 부모에게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독립적 면모가 있으면서도 숙영에게는 사랑을 넘어 의존적인 모습까지도 공존하는 선군 역을 각자 어떻게 해석해 내놓을지 기대가 커진다. 매월 역 캐스팅도 볼거리다. 각자 매우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정은혜와 이소연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정은혜는 2013년 창극 <메디아>에서 기립박수를 이끌어낸 ‘센’ 배우다.

그러면서도 국가브랜드공연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의 뮤즈 베아트리체 역도 너끈히 소화해 그 가능성을 한층 더 열어보였다. 이소연은 맑은 소리와 참한 외모가 특징. <서편제>의 송화, <배비장전>의 애랑, <춘향>의 춘향 등 여성스러운 역을 주로 맡아왔다. 각자 다른 색깔을 가진 국립창극단의 대표 신예 두 명이 숙영에 대한 질투와 사랑에 대한 욕망에 가득 찬 매월을 어떻게 소화할지 흥미진진하다.

줄거리 / 조선판 사랑과 전쟁

북을 메고 책을 든 한 여인이 책을 펼친다. 관객에게 책을 읽어주겠다는 이 여인이 꺼내든 이야기는 조선시대의 애정소설 「숙영낭자전」이다.


안동에 살던 선비 백상공과 부인 정씨는 천지신명에 빌어 어렵게 외아들 선군을 낳는다. 이때 선녀가 나타나 선군은 본래 하늘의 선관(仙官, 선경(仙境)에서 벼슬살이를 하는 신선)으로 선녀 숙영낭자와 사랑을 나누다가 죄를 얻어 인간 세상에 귀양 오게 된 것이며, 숙영낭자와 삼생연분(三生緣分,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깊은 인연)이 있음을 알린다.

선군이 자라고 선군의 꿈에 숙영이 나타나 선군에게 자신과 천상인연이니 3년만 기다려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선군은 숙영을 그리워하다 병이 나고, 상공 부부는 치료약을 구하나 백약이 무효하다. 상공 부부는 몸종 매월을 시첩(侍妾)으로 삼게 하지만 선군은 오로지 숙영만 떠올리며 매월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숙영낭자가 선군의 꿈에 나타나 위로해도 차도가 없다.

결국 숙영낭자는 선군에게 옥연동으로 오라고 하고, 급기야 선군은 옥연동에서 숙영을 만나고, 3년만 참아달라는 숙영의 간청을 뒤로하고 동침한 뒤에 함께 귀가한다. 이후 8년간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던 숙영과 선군. 하지만 백상공은 못마땅하다.

과거에 급제하여 세상에 나서라고 아들에게 말하지만 선군은 출세할 필요를 못 느낀다며 반항한다. 어찌어찌 숙영의 설득에 과것길에 오르는 선군이지만 그 잠시의 이별에도 숙영이 그리운 선군은 수십 리를 달려와 부모 몰래 숙영과 밤을 보낸다. 하지만 아들이 없는 집, 집안단속을 하던 아버지 상공에게 목소리를 들키고, 선군이 꾸중을 들을까 걱정한 숙영은 매월과 담소 중이었다고 상공에게 둘러댄다.

하지만 매월에게서 숙영 방에 간 일이 없는 사실을 확인한 상공은 숙영의 정절을 의심, 매월로 하여금 숙영을 감시하게 한다. 선군을 사랑했고, 숙영을 대신한 하룻밤마저 거절당해 앙심을 품은 매월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음모를 꾸민다. 다른 노비와 공모하여 숙영의 방에 외간남자가 드나드는 것처럼 누명을 씌운 것. 이를 모르는 상공은 분노하여 숙영을 가혹하게 매질하며 모욕을 준다. 결국 숙영은 가슴에 스스로 칼을 꽂고 마는데….

작가 김정숙의 글

옛날 소설을 읽으며, 오늘의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에 대해 묻다
옛날 소설을 읽다.

우연히 숙영낭자전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에든버러에서 ‘숙영낭자전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로열마일 거리를 나부끼는 우리 ‘로맨스’의 환상을 보았고
그 행복한 꿈은 2013년 로열마일에서 멋지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2014년 신년작 창극 <숙영낭자전>을 위해 다시 읽는다.
옛날 여인의 마음으로도 읽고, 신영희 선생님의 소리로도 읽었다.

궁금하다.
사랑한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고독하다.
진짜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정말 너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잘 생각해 보면 다 나를 위해서이다.

 

타인을 향한 삶이 이러할 진데 자신을 사랑하기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랑해 본 적이 없으니 자신에게도 사랑보다는 학대에 가깝다.

굶기고, 채찍을 들고, 잣대를 들이대기를 반복하니
마음이 견딜 수 없어 종내는 가출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똑같은 이야기를 옛날이야기 속에서 만나니 신기하다.

하늘에서 사랑해서 죄를 지은 선관과 선녀가
이승에서 귀양살이를 통해 다시 사랑할 기회를 갖게 되지만 결말은 숙영의 자살이다.
숙영은 사랑이라는 폭력아래 자신을 살해하는 것으로 저항한다.

옛날 여인들이 만든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에는 오늘날에도 지극히 유효한 사랑에 대한 절대절명의 진실을 묻고 있다.

“우리가 진정 사랑이냐고?”
우리 소리로 만나는 창극 <숙영낭자전>이 기다려진다.

연출 권호성의 글

그리운 옛날, 그리워질 숙영낭자전

참으로 옛날, 무선호출기는커녕 일반 전화기도 귀하던 그 시절! 컬러 TV는 고사하고 흑백 TV도 보기 힘들던 그 시절!

박동진 선생이며, 조상현 선생이며, 오정숙 선생이며, 이은관 선생이며, 안비취 선생이며, 묵계월 선생이며, 김뻑꾹 선생이며, 지금도 기억하는 그 수많은 명인들의 소리와 재담들을 그 당시엔 매우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TV 채널이 기껏 3개밖에 되지 않았지만 국악에 대한 편성이 지금보다 몇 배나 많았기에 그때 우리들은 재미난 유행가 가락은 물론이요 매일 무차별적으로 울려 퍼지던 새마을 노래와 군가 이상으로 늘 국악을 접할 수 있었고 자주 흥얼거렸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은관 선생의 ‘배뱅이굿’과 김뻑꾹 선생의 콧바람 퉁소가 참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골목마다 “왔구나 왔어~ 배뱅이가 왔구나~”하는 소리를 하며 콧바람으로 퉁소 부는 흉내를 내던 아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어린 나는 조상현 선생이 정말 멋져보였습니다. 그분만 나오면 TV를 넋 놓고 보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남자다운 풍채와 우렁우렁 뿜어져 나오는 소리는 어린 내가 듣고 보기에도 매우 흡족하였습니다. 덕분에 가당치도 않게 “화초장 화초장”하며 조 명창 흉내를 내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덕분에 우리 음악이 가진 흥과 멋을 힘들이지 않고 터득(?)할 수 있었고, 지금도 흥이 도도해지면 간단한 추임새 정도는 그나마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러한 유년의 기억으로 인하여 지금도 난 우리의 소리를 듣노라면 어릴 적 큰 잔치 때마다 커다란 교자상에 놓여 늘 미각과 시각을 자극하던 ‘옥춘’을 조금씩 녹여 먹는 듯 하는 느낌입니다. 또 선 고운 한복을 입은 여인네들의 일렁거리는 어지럼증 같은 춤사위 같기도 합니다. 우리 어머니 그 옛날 부엌에서 가마솥 뚜껑 열면 무럭무럭 꿈처럼 피어나는 황홀하고도 아련한 그리움과 두근거림 같은 행복함을 느끼곤 합니다.

창극 <숙영낭자전>!

소리하시는 조상현 선생이 서부영화 속 존 웨인보다 멋지게 보이던 그 시절 그 느낌으로, 관객의 가슴을 두드리는 그런 행복한 공연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많은 관객님들! 숙영낭자와 선군의 이별과 만남에 울고 웃으며, 숙영낭자의 억울함에 모두 아파하고, 매월의 간계와 음모에 분노하는 그런 구성지고 재미난 공연이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내 어릴 적 또 다른 전설인 신영희 선생님과 우리 어머니를 영원한 팬으로 두신 김성녀 선생님, 이 두 분과 함께하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2014년 창극 <숙영낭자전>입니다.

벌써부터 저는 <숙영낭자전>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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