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건은 전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처음 사고가 보도될 때만 하더라도 6,800톤급의 거대한 여객선에서 이처럼 큰 사건으로 번질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배가 기울어 침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승객들이 빠져나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되었고 실제로 침몰하기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에 제대로 대처를 했더라면 많은 승객이 구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 사고 초기에 보여준 당국의 발표와 언론보도는 국민을 안심시키고도 남았다. 사고 수습의 제일책임기관인 해경에서도 좌왕우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승선자 명부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구조자수는 터무니없이 부풀어 올랐다.

사고가 발생한 4월16일 오후에 벌써 400명 가까운 승객이 구조되었다는 발표가 잇달았고 이런 구조 속도라면 몇 사람 정도의 희생으로 사태가 수습될 것으로 낙관하는 분위기가 완연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다음날부터 말이 달라졌다. 구조본부를 구성한 각 기관들이 경쟁적으로 구조자수를 발표하면서 서로 중복된 숫자를 발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구조자의 실제 숫자는 애초에 발표한 것에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전 국민은 분노했으며 실종자 가족들은 넋을 놓았다. 박근혜대통령은 전격적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사고 수습의 방만한 운영체계를 질책했다. 이번 사고의 대책본부는 진도군, 전남도, 해경, 소방방재청, 해수부, 안행부, 경찰, 해군, 해운사 등 명분을 붙일 수 있는 기관은 총동원되어 각자 본부를 운영했으며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도 끼어들었다.

한마디로 대사고가 났을 때 국가기관의 일원화된 지휘체계가 가동되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의 재난 대비 수준이 아직도 미개한 상태에 있음을 전 세계에 홍보한 셈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구조현황을 파악하면서 드러난 일인데 선박운영의 핵심인 선원들은 29명 중 20명이 생존했다. 무려 69%가 구조된 것이다. 그러나 승객의 대부분은 아직까지 22% 구조에 그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20일은 벌써 사고 발생 닷새째다.

방정맞은 생각이긴 하지만 실종자 생환가능성은 점차 희미해진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단 한 명이라도 생환하기를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지만 선원들이 먼저 빠져나왔으니 누가 승객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함께 한다고 배워 온 우리들의 상식과는 다르게 선장이 맨 처음 배에서 탈출했다는 사실 앞에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이지만 선원법과 해운법에는 선장이 지켜야 할 규정이 명백하게 적시되어 있다. “선장은 맨 마지막까지 배와 함께 있어야 한다.”

100년 전 타이타닉호와 20년 전 전북 부안에서 발생한 서해 훼리호 사건 때에도 선장과 선원은 한사람도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순직했다. 필자는 이번 사건이 터진 4월16일과 18일 4.19혁명 54주년 기념강연을 하기 위해서 전북대학교와 진주고등학교를 연달아 찾았다.

여기서 나는 6.25사변이 터졌던 1950년 6월27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라디오 생방송을 예로 들면서 ‘지도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승만은 TV가 없던 당시 라디오를 통하여 ‘서울시민은 안심하라. 6월25일 남침을 감행한 북한괴뢰군은 용감한 국군의 반격으로 38선 너머로 쫓겨나고 있으며 국군은 38선을 굳세게 지키고 있다.

국군을 믿고 자리를 지키라.’ 대통령의 방송을 누가 믿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방송은 대전방송국에서 행해졌으며 대통령은 이미 하루 전 서울을 빠져나갔던 것이다. 서울시민은 안심하고 있다가 6월28일 새벽 하나 밖에 없던 한강다리가 폭파되는 굉음을 들어야했고 그날 서울은 북한괴뢰군에게 함락되어 지옥 같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위해야 할 대통령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 보여줘야 할 용기는 생명을 함께 하겠다는 결연한 태도다. 감복한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떠밀어 안전지대로 먼저 보낸다. 지도자의 책임감은 나라를 살리고 국민을 살린다.

나 먼저 살겠다고 먼저 내빼는 지도자는 결국 부정부패를 자초하여 쫓겨날 수밖에 없게 된다. 세월호 선장 역시 죽기를 다했으면 살았을 텐데 이제는 살았어도 죽은 목숨이다. 새삼스럽게 지도자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역사 앞에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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