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재개 뜻 없다…내가 맡은 사건 돈 되는 사건 있나”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저는 정치에서, 현실정치에서 제가 왕따 당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이 나이에 무슨 노림수가 있겠습니까? 후배 정치가들이 잘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찬종 변호사는 15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BBK의 김경준 사건, 미네르바 사건에 이어 박연차 회장까지 매번 정치적으로 뜨거운 사건을 맡는 것이 정치재개를 위한 도약대로 삼는 게 아니냐”라는 질문에 이 같이 일축했다.

▲ 인터넷 경제 논객 미네르바를 변호하기 위한 박찬종 변호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상문 기자
    
박 변호사는 “박찬종에 대해 일부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말문을 풀어갔다. 그는 “저는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 9월에 3년6개월 동안 변호사 업무정지를 당했는데 왜 당했느냐, 정부를 반대하는 시국사건 변론을 가장 많이 맡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민주당 최고위원 송영길 위원이 연세대 학생회장 당시 구속됐을 때 변론을 맡았고, 또 김민석 최고위원이 서울대 학생회장 때 농성점거 사건으로 국가보호법 위반으로 20명과 함께 구속됐을 때도 변론을 맡는 등 수십 건의 변론을 맡다보니까 정권이 눈에 가시처럼 생각해 사건을 조작해가지고 저를 기소하고 변호사 업무를 정지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박 변호사는 1985년 9월 ‘고대앞시위사건’으로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기소되고, 3년6개월 동안 변호사 업무를 정지당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저는 평생 소외되고 가난하고 또 정치적으로 눈치봐가지고 돈 안 되는 사건, 변호사가 달려 붙지 못하는 사건, 이런 사건을 내가 변론을 맡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화시대가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유권무죄ㆍ유전무죄 풍토가 있고 법조계가 불신 받고 있고, 아니 BBK 김경준, 석궁습격의 김명호 교수, 미네르바 사건 그게 돈 생기는 사건입니까? 아무 변호사나 함부로 나설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며 “그런 몫이 제 몫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변호사는 가난한 자를 위해 변론을 하고 무죄를 이끌어 낸 사연도 소개했다. 여인숙을 하는 할머니가 풍속사범으로 벌금 300만원 약식 형을 받았는데 벌금을 물면 영업정지가 돼 정식재판을 청구해 무죄를 이끌어 냈는데 이런 것은 언론에 안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최소한 하는 것을 호사가들이 뭘 말하기 좋아가지고 이러는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주목받은 사건을 자진해 맡아 언론에 자주 비추는 것이 정치재개를 위한 발판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일부 시선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또한 박 변호사는 후배 변호사들에게 “꼭 돈만 쫓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는 “대형 로펌에서 돈만 쫓지 말란 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물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같은 우리 후배변호사들이 좋은 일도 하지만, 그렇게 대형로펌에서 돈도 많이 받고 또 억울하고 가난하고 돈 없는 사람들 일도 자기들 하는 일의 5~10%는 좀 무료로도 해 주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변호사 신분으로 재판 기간 중에 언론 접촉 빈도가 높은 게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도 “오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검찰이나 경찰은 수사상황, 피해자에 대한 심문 상황을 매일 브리핑을 한다. 피해자도 브리핑을 해야 되는데 그 통로가 막혀 있다. 구치소에서 (브리핑을) 할 수도 없고, 편지를 보낼 수도 없고, 그게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박 변호사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를 모두 합격하고, 공인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박 변호사는 검사생활을 하다가 1971년 변호사로 개업했고, 이후 정계에 입문해 제9ㆍ1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나, 11대 국회에서는 정치규제에 묶여 출마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그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운동권 학생들을 변호하며 인권변호사로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이후 제12ㆍ13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는데, 당시 돈 안 드는 유세를 펼쳐 ‘깨끗한 정치인’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실제로 ‘무균질우유’ 광고에 출연하며 ‘무균질 정치인’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정치적 행보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으며 정치권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e중앙뉴스 기사제휴사=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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