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그리운 사람들..

 

[서울구치소 교정위원 김필연] 날이 밝으면 해가 뜨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우리는 날이밝고 해가뜨면 누구나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그러나 우리들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어느 누구에게는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조차 너무나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자의든 타의든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와 격리된채 하얀집이라고 불리는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햇빛조차도 하루에 한시간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하루에 허락된 단 한시간! 그것도 운동을 통해 햇빛을 바라보고 햇볕을 쬐면서 빛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번쯤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를 묻고싶다.

 

필자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자유란 무엇일까? 를 두고 그 의미를 짚어보기로 한다.자유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이다.

범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자유를 국가에 반납하고 자기 죄의 댓가를 치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당연히 죄의 댓가를 받야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들을 했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그렇게 해야만 했고 또 왜? 그럴수밖에 없었냐고 물어보고 싶다. 필자는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불행을 안고 태어난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친엄마가 아닌 의붓 엄마로부터 매질을 당하고 때로는 가난과 싸우며 한끼의 식사를 해결해야만 하는 그들은 정말 불행을 안고 태어난 걸까?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죄인처럼 살수 밖에 없는 이들의 삶! 부모의 빛(돈)때문에 눈만 뜨면 찾아오는 빚쟁이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때론 거짖말에 길들여져 가면서 이들은 가정에서부터 버림받고 서서히 사회속 공공의 적이 되어간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가지못해 학교 주변을 배회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몰리면서 젊음의 내리막길을 타는 그들.. 환경이 비슷한 또래들과의 만남을 통해 학교가 아닌 뒷골목에서 한번더 이들의 젊음은 무너져 간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형편, 자신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부모도, 형제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결국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범죄를 경험한다.아무렇지도 않게 가게에 가서 빵도 훔쳐 먹고 뒷 골목 건달 형님들의 손발이 되어 심부름도 해주면서 얼마의 용돈 얻어 살아가는 것이 집보다 훨씬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 그들!

 

성인으로 성장 하면서 가정에서는 자녀로서의 대우,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의 대우, 사회에 나와서는 사회인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냉대속에 버림받고 살아온 그들에게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고 물어보자!

 

그들 스스로의 책임이 있다고 질책하는 일부 논객도 있겠지만 가정과 학교와 사회는 물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이들이 이처럼 희망도 없이 삶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이유가 무었일까? 눈을돌려 공동묘지를 한번 가보자.그곳에 가면 헤아릴수도 없을만큼 수많은 묘지를 볼수있다.묘지속에 있는 이들이

말을 할수만 있다고 한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죽음에 대하여 여러가지 괴변을 늘어 놓을 것이다.어느누구하나 이유없이 죽은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여기 햇살이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속에서 돈은 늘 부족했고 사랑은 메말랐으며 보살핌과 관심은 어느 누구도 단 한순간도 가져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죄를짖고 범죄의 소굴에서 살아가지는 않는다.다만 일부의 잘못된 인연에서 죄를 범할뿐이다.

 

불교쪽에서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모두를 통 털어 전생의 업(業) 이라고 한다.업(業)은 무섭다. 업(業)이란 자기가 잘못 살아온 죄의 댓가를 받는 것이다. 

햇살이 그리운 사람들중에는 특히 무기수나 사형수들이 많다.그들중 어느 한 사형수는 자신이 샐활하는 좁은 공간에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낸다.7~8명이 함께 생활하는 좁은 공간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로 부딪치고 뒹군다.24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게 너무 짜증이 나서 같은 방 동료들을 이유없이 괴롭히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보낸다.

 

감방안 동료들의 좋은 물건은 다 뺏앗는다.사형수의 행동을 저지하거나 말릴 정도로 배짱좋은 동료가 없다보니 사형수는 독불장군이다. 그러다보니 어느날은 자신이 동료들에게 뺏어놓은 물건이 차고 넘쳐서 더이상 보관 할 곳이 없었다. 이 친구는 결국 고민에 빠지지만 순간 천사의 마음을 품는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형수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 친구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죽을날도 얼마 안남았기에 스스로가 한번 좋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을 갖는다.그리곤 자신이 그동안 동료들에게 뺏어놓은 물건들을 하나둘씪 다 나누어주었다.

 

이 친구는 그때 자신이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무언가를 경험했고 베푸는 행위가 자신도 모르는사이 강한 전율같은 짜릿함을 느꼈고 기분이 좋았다고 고백했다.자신이 갖고 있던 물건들을 다 나누어준뒤 더 이상 동료들에게 아무것도 줄수 없다는 것 때문에 이 친구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동료들을 위해서 또 무엇을 할수 있을까?하는 행복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그 좁은 공간에서 자신이 더이상 해줄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돈도 안들고 힘도 안드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동료들을 괴롭히지 않는것이 사형수인 자신이 마지막으로 동료들에게 해줄수 있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친구는 곧 동료들에게 웃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스마일 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어색했던 동료들간의 분위기가 사형수인 친구의 진심을 알고난뒤 동료들은 하나둘씪 마음을 열고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서로 도와주는 배려와 더 나아가 아껴주기까지 하는 관계가 되었다.이 친구는 결국 자신 스스로가 마음을 비우고 천사가 된 것이다.

 

늦었지만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고, 왜 진작 자기 자신이 이런 생활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를 많이 했다. 이제 이 친구는 항상 웃으면서 살아간다.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형수인 죄인이
왜 저렇게 웃을수 있을까라며 의아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햇살이 그리운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요 부모들에게 있어서는 귀하고 사랑스런 존재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우리 헌법이 허락한 최고의 형량을 받고 사형수란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그들은 어쩌면 내 형제요 친구요,이웃일수도 있다.그런 그들의 삶은 고단 그 자체다.자신의 의지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사형수란 이름만이 공포감만 줄 뿐이다.

 

우리나라는 사형수가 되면 하루 종일 방에 갇혀 산다.최근 교도소 법이 바뀌면서 2010년도부터 사형수도 자신의 공간을 벗어나 출역을 나갈수가 있게 되었다. 하루종일 방안에 있는것보다는 교도소안 공장에 가서 일하면 모든 잡념을 좀 잊어버릴수 있기때문이다.

여기에 필자가 상담을 하고있는 사형수 한 친구를 소개한다. 이 친구는 중학교는 다녔지만 가정형편상 중퇴를 했기 때문에 공부에는 관심도 없는 친구였다.

 

사형수란 꼬리표를 달고 지내던 이 친구는 어떻게하면 이곳에서 어느 누구에게든지 관심을 받을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늘 앞섰다.그러던중 우연한 기회에 교정위원인 교수님의 눈에들어 그림을 한번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이 들었던 이 친구는 교수님의 제안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이 들었고 결국 그 교수님의 지도를 받기로 했다.

처음에는 선하나 긋는 것조차도 힘들었고,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어서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수도없이 했던 이 친구는 많은 갈등속에서 그림을 시작 시작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기로 작정한 이 사형수는 13년동안 눈만 뜨면 그림을 그렸다. 밤에도, 낮에도  온갖 그림에만 정신을 쏟으면서 수용생활을 견뎌냈다.이 친구가 13년동안 그린것이 오로지 계란이다.

이 친구가 계란을 그리는 이유는 분명했다.계란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으면 알에서 새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계란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하고 싶었으며 가까이서 관찰하기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가지 일에 매달리면 전문가가 될수 있다는 사실을 이 친구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사이 전국교정 작품전시회가 1년에 한번씩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됐다.이 친구는 지금까지 자신이 그려왔던 작품을 출품을 해 보고 싶었다.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것도 사형수가 전문적인 지식이나 학문을 받지않고 그린 작품을 선듯 출품 하기가 두려웠다.지금까지 전국교정 작품전시회에 사형수의 작품을 출품한 경우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용기를 냈고 교도소 관계자의 도움으로  어렵게 어렵게 자신의 작품이 출품 되었다.

 

하늘도 감동을 했다.이친구가 13년동안 얼마나 정성과 열정을 쏟아서 그림을 그렸는지 이 작품에서 심사위원들 모두의 추천으로 대상을 받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결과는 너무나도 벅찼다.법무부 장관상과 상금 100만원이 수여됐다.

 

세상에 이런일이 라는 TV프로가 있다.상식을 뒤없는 일들을 소개하는 프로다.정말 상식을 뒤업는, 사형수에게는 정말 일어날수 없는일이 일어났다. 이 친구는 그때의 마음은 정말 이 종이위에 다 표현할길이 없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얼마나 좋았으면 상금중 50만원을 모 단체에 건립자금으로 보시까지 했다.

이때부터 이 친구는 자신의 소질을 발견했고 그림을 그리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고 지금은 솔방울을 그리고 있다.

이 친구가 그림을 시작한 동기는 이 세상 사람들한테 버림받았지만 그래도 어느 누군가에게든지 관심을  받고 싶어서 시작한 그림이었다.13년동안 그렸던 계란이 결국 사형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는 이 사형수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림 하나로 인해 삶의 목표가 정해졌다고 했다.
 
그러나 이 친구가 그림에 소질을 발견하고 장관의 상장을 받았다고 해서 사형수 꼬리표가 붙은 자기의 죄가 소멸 될 수는 없다.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모든 것을 다 포기했던 무기력한 삶이 이젠 그림을 통해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기 자신 역시 더 참회하는 마음으로 수형생활을 더 모범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 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친구뿐만 아니라 사형수들 모두에게 출가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수행하라고 만날때마다 늘 말한다. 만약에 계란그림을 그린 사형수가 속세에 있었다면 이 사형수는 자기의 그림의소질을 계발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허덕이면서 더 많은 죄를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통해 삶이바뀐 이 사형수는 이제 불자가 됐다. 통신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포교사 자격증도 받았다.아침에 일어나서 108배로 시작하면서, 항상 참회기도하고 자기로 인해서 피해본 영혼과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정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사형수 상담을 13년동안 하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다. 때로는 내가 교화하려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가 교화가 되어서 나오는 느낌을 받고 오기도 한다.이 혼탁한 사회에서 조금이나마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면 힘 닿는데까지 봉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그들을 만나서 삶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상대적으로 내 자신도 나의삶 또한 값지게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전생에 필자는 그들과 보통 인연이 아니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여년동안 교화활동을 하면서 외국에 나갈 때, 병원에 입원했을때를 제외하고는 그들과의 약속을 꼭 지켰다.

속세의 사람과의 약속은 다음으로 미루면 되지만 이들과 약속은 어떠한 경우라도 실수를 범해서는 안된다.이들이 오직 나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약속을 지키지 않을수가 없다.

이렇게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시간과 경제적으로 교화활동을 할수 있는 것이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앞으로도 남은 생을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값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희망을 품고 햇살을 그리워하는 친구들을 만나기위해 교도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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