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안에서 추악한 싸움질을 하면
청와대 안에서 추악한 싸움질을 하면
  • 전대열 大記者
  • 승인 2014.12.08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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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옛날에는 정무를 주관하는 곳을 궁궐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지금 서울에 남아있는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등이 크고 작은 궁궐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오랜 세월 왕이 자리 잡았던 곳이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조선 초에 건립된 이후 임진왜란으로 전소, 대원군 때 복원하면서 엄청난 상납전을 받아 국정문란, 일제 총독부를 짓기 위해서 이건, 6.25사변으로 문루 소실 등 험난한 질곡의 세월을 겪었다. 광복 후 조선 총독부 건물을 중앙청으로 사용하면서 역사 정통성 문제로 논란을 거듭하다가 결국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친일잔재청산’의 명분으로 허물어버렸다.

 

그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역사를 재현하여 화려한 왕궁으로 재탄생시켰다. 현재 경복궁은 수많은 내외 관광객들의 걸음이 그치지 않고 있으며 중국의 자금성과 함께 아름답고 웅장한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광복과 함께 왕조를 버리고 공화국제를 선택하여 대통령을 국가원수(國家元首)로 국민이 직접 뽑는 국가가 되었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곳이 청와대다.

 

현재 청와대 자리는 일제 식민지통치를 강행했던 ‘조선총독’ 관저였다. 그 뒷산이 북악산이다. 정기가 솟아오르는 산으로 명성이 높다. 이성계가 이곳에 도읍을 정할 때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이 풍수지리를 내세워 현재의 경복궁 터와 연대, 이대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안산 밑 신촌일대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결국 무학의 주장대로 북악산 밑으로 결정되었는데 “북악산 정기로 왕조 500년을 지탱할 수 있다”는 풍수설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다만 산세의 혈(穴)이 골육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고 하는데 조선역사는 그 경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방원의 형제의 난, 연산군 폭정, 사도세자의 죽음,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궐내 암투가 계속되었다.

 

공화국이 된 오늘날에도 그 전통은 연면히 계속된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부정선거를 저질러 4.19혁명으로 쫓겨났고, 제2대 윤보선은 5.16쿠데타군에게 밀려났다. 제3대 박정희는 영부인이 암살되고 자신마저 부하의 손에 시해되었다. 제4대 최규하는 5.18신군부의 압력으로 중도 사퇴했다. 제5대 전두환과 제6대 노태우는 퇴임 후 군사반란죄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제7대 김영삼과 제8대 김대중은 아버지 권력을 이용하여 뇌물을 챙긴 아들들이 줄줄이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제9대 노무현은 재직 시 부정부패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렸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제10대 이명박과 관련해서는 국정원장 등의 범법행위가 형사처벌로 이어졌지만 본인에게는 야당 측이 ‘4대강 의혹’등으로 부풀리고 있는 것들을 빼면 아직 이렇다 할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위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초대에서 제9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말년을 겪고 있음을 ‘사실’이 보여준다.

 

정도전이 말했다는 대로(과문의 탓으로 실제 그런 기록이 있는지 여부는 모르지만) 북악산의 산혈(山穴)과 지세(地勢)가 최고 권력자의 신상과 정책수행 과정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권력을 둘러싼 내부싸움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느 때나 흔히 있었던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36년 동안 조선독립 운동을 억압하고 수많은 애국 열사들을 감옥에 처넣으며 사형을 집행하거나 고문으로 죽였던 최고원흉 ‘조선총독’이 살던 곳을 광복 후 역대 대통령들이 어째서 옮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떨쳐내기 힘들다. 생때같은 서울을 충청도로 천도하자는 발상을 내놨던 사람들도 청와대 이전은 입도 뻥긋 하지 못했다.

 

수도이전은 이석연변호사의 탁월한 반대이론에 힘입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았지만 결국 얼빠진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세종시가 행정수도로 탈바꿈하는 것만은 막지 못했다. 통째로 수도를 옮긴 것도 아니고 서울청사, 세종청사, 대전청사 등으로 갈래갈래 찢긴 정부청사는 효율적 일 처리와는 거리가 먼 낭비행정의 본보기로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시중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가 청와대 비서관 갈등이다. 그 정점에 정윤회가 있지만 그가 과거 박근혜 비서실장을 역임한 최측근이었다는 것뿐이지 드러난 행적은 아직 뚜렷한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현직 비서관들의 회동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가닥을 꽉 부여잡고, 눈을 부릅뜨고 보지 않고서는 자칫 오판을 할 수 밖에 없게끔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더구나 청와대에서 퇴출된 비서관이 앞장서고 있어 호사가들의 흥미를 돋운다.

 

국민은 여기서 냉철해져야만 한다. 비서관들을 십상시로 비칭하며 그들이 만났느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그들의 영향력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실질적으로 작용했느냐 여부가 더 중요하다. 박근혜는 취임 이후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고위공직을 발탁하면서 커다란 시행착오를 겪었다. 정책시행은 상당한 시간이 경과해야만 호불호(好不好)가 나타나지만 인사문제는 즉석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대통령의 인사는 고하위직을 막론하고 갈등이 없어야 한다.

 

수첩에 있는 인물, 과거에 알던 사람, 군 고위 장성, 판검사 출신, 고위관료 등으로 국한하다 보면 무슨 새로운 사람이 발탁될 것이며 감동을 줄만한 멋들어진 인재를 등용시킬 수 있을 것인가. 비서관들의 추악한 내부 싸움이 대통령의 현명을 가리는 구름이 되어서는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다.

 

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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